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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저런 글

중국계, 한국계


많은 한국인들처럼 나도 중국과 과히 무관하지 않다.
우리네 문화 자체가 중국 문자인 한자 없이는 존재하기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나의 조부모/부모 세대는 한국 전쟁 전인 일정(=일본 통치) 당시 대륙에 오래 살았기에, 친척들이 중국인 "뺨 칠" 정도로 중국어에 다들 능통했고, 거기서 태어나 한국이나 미국에 귀화한 고종 친척들도 그랬다. 이를 테면 '조선족' 출신이다. 요즘 한국에선 '조선족'이란 말이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퇴색했지만, 그들 다수가 독립운동가들의 후예다.

비록 중국어는 못하고 아직 중국에 가 본 적도 없지만 초청 받은 일은 있으며, 최근까지도 중국과의 간접적인 인연은 계속 이어져 왔다. 여러 중국 신학교에 고루 거액의 장학금을 대어, 그 곳 신학생들의 '싼타 할아버지'로 통하던 미국의 모 원로 목회자와도 다년간 친교를 나눈 바 있다. 그밖에도 가장 존중했던 은사 한 분을 비롯해 내가 아는 수많은 친지, 명사들이 중국 거주민 출신이다.   
  
더욱이 미국에 살다 보니, 중국인 랜로드(건물주), 아이 친구의 학부모, 교계 인사 등 끊임 없이 중국계와 교류하게 된다. 타이완(대만)계 교회도 그래서 몇 번 가 봤다. 내가 말하는 '중국계'란, 대륙/타이완/홍콩/마카오 출신자들과 해외 화교 및 후손들을 통칭한다. 


중국계가 한국계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면, 어디든 가는 곳마다 상권과 동족 중심으로 타운을 이루고 산다는 것.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이 그것이다. 뉴욕 중심가인 맨해튼에도, 퀸즈 카운티의 중심지인 플러슁에도 중국인/한인 타운들이 있다.

대륙 출신 중국인들은 중남미계의 느긋한 '마냐나' 근성과 닮은 '만만디' 근성이 있어 어떨지 모르지만, 유대계, 한국계나 다름 없이 근면하고 성실한데도, 어울려 지내다 보면 당혹스런 점도 한 둘이 아니다.
타이완 인들은 대체로 대륙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족인 대륙인들보다는 일본인들에게 더 호감을 갖는다는 타이완계의 최신 여론조사도 있었다.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이다. 타이완계 친구에게 대륙 얘기를 자주 하면 안색이 흐려지고 말수가 줄어든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그만큼 그들에겐 '콴시'(관계)가 중요하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가는 곳마다 식당을 열고, 일본인들은 기업을 세우고, 한국인들은 교회를 세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본국들은 판도가 많이 달라져, 중국 교회는 금세기 내로 최대급 기독교 강세국이 된다는 학설이 있고, 일본도 기독교가 조금씩이나마 증강세를 타고 있다.

미국의 중국계는 19세기 전반기에 이미 이민을 왔고, 대륙횡단 철도 건설, 금광 캐기 등에 적극 참여해 훗날 미국에서의 지위와 신분이 확고해졌다. 비록 한때나마 대륙출신들의 이민금지도 행해졌지만. 수많은 중국인 명사들이 정계와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광둥어(Cantonese)는 현재 미국서 3번째로 널리 통용되는 외국어(영어 제외)다.  
스티븐 추(현 연방 동력자원부 장관)를 비롯한 6명의 중국계 미국인들이 노벨 수상자다. 


각설하고..요즘 내가 사는 동네에선 해 묵고 골치 아픈 문제가 재발되고 있다. 퀸즈 카운티의 수도 격인 플러슁의 공용주차장을 중국계가 개발하겠다고 또 다시 나섰다.

중국어로 '皇后区'(퀸즈)의 '法拉盛'이라고 표기돼 온 플러슁은 본래 1645년 네덜란드 식민단이 개발하면서 모국 도시 이름을 따 '플리싱겐'이라고 부른 것을, 나중 영국계가 차지하면서 이름이 영어식으로 변개됐다. 지금은 국내 최대급 아시안계 집합 사회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동양종교 신전/사원들이 신구교 등 기독교 계열의 온갖 교파와 나란히, 즐비하게 공존하고 있다.
 
중국계의 상권 확장술은 소위 '인해전술'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대동단결 정신이 강하다. 상권과 주거지가 같거나 가깝고, 그곳을 중심으로 정치력을 신장해 왔고, 식당끼리 콩나물 따위 야채 등 재료도 싸게 나누고, 모든 물품 판매에서 동시 가격 경쟁력을 길러 최대 시너지 효과를 누린다. 대륙에서 온갖 물품을 왕창 수입해 팔다 보니, 중국계 수퍼와 식품점 등의 가격은 월등히 낮다. 일본계, 한국계 상품보다 싸다. 참고로, 인도계 물품 값도 대체로 저렴하다.

플러슁의 번화가인 메인스츠맅은 지난 1970년대 이전부터 중국인들이 차지해 와, 80년대 즈음 이미 차이나타운화 돼 그들 특유의 붉은 색과 한자 간판이 현란하다. 필자가 이민 올 당시 이곳엔 한인 상점들도 상당수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완전 철수했다.
그후 플러슁 최대의 한인 상권은 메인스츠맅에서 1 블렄 위인 유니온 스츠맅으로부터 그 북쪽인 베이사이드, 리틀넼 등에 주로 형성돼 있지만, 그나마도 서서히 중국계에 잠식돼 왔다. 한국 출신 화교들과 조선족은 적극 또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한인 상권에 자리잡거나 개입돼 있다.

한인 상권은 교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사실 플러슁에 한인교회가 가장 밀집돼 있기에 한인 상권의 안보/평화/번영은 교회와 직결돼 있다.  

플러슁 공용주차장을 중국계가 개발해 거대 건물로 바꾼다면, 유니언 한인상가는 과거 메인스츠맅처럼 중국계 상권에 밀려 사장돼 갈 게 단지 '시간 문제'라는 건 강 건너 불 보듯 너무나 뻔하다. '인해전술'적 가격경쟁에서 그네들을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자주 한인상가/한인식당에서 물품을 구입하지만, 한결같이 "한국 물건은 넘 비싸다"고 놀란다. 필자도 중국인 마켓을 가끔 가 보지만, 같은 계통의 상품 값이 현저히 헐하다. 물론 인력시장이 넓고 인건비가 싸서 당연하겠지만. 단, 물건이나 서비스의 품질만은 일일이 조사해 보기 전엔 알기 어려운 사안이다. 잘 모르는 대륙 회사 물건을 맘 놓고 믿기도 그렇다. 내 조국 상품보다는 선뜻 신뢰가 덜 가는 게 인지상정이랄까.


아무튼..공용주차장은 이곳 상권과 관공서 등의 수 천 대 차량을 주차하는 곳인데, 그나마 이곳을 중심으로 지난 수십년간 한인 상권이 발달해온 것도 사통팔달한 주차장 때문이다. 비록 중국계가 세운다는 대형건물의 지하와 아래층에 대형 주차장이 마련된다 해도 막힌 담벼락 속의 주차장이 4통8달 옥외 주차장과 같은 차원일 리는 없다.
안 그래도 메인스츠맅, 유니언 스츠맅 등 플러슁 중심가는 맨해튼과 대동소이하게 '주차지옥'이다. 손님이 애써 찾아와도 도무지 잠시 차 세울 데가 없다.


문제는..일심 단결해 공영주차장 재개발을 외치며 3번이나 프로젴트 추진을 적극 시도해 온 중국계와는 달리, 한국계는 이 문제에 있어 과거부터 거의 언제나 단합이 잘 안 된다는 데 있다. 한국계가 모두 합심한다 해도 수적 열세인 판국에 지금 자체 내에서 재개발 찬반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정치계를 드나드는 일부 한인 명사들은 자신의 출세 영달을 위함인지 영향력이 강한 중국계에 들러 붙어 그쪽 편을 거들고 있다. 의견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짧은 앞일도 못 내다 보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나라도 흔히 그렇지만, 미국은 어느 모로 보든 숫자와 목청이 이기는 나라다. 힘을 모으지 못하면, 지고 밀리고 몰리고 눌리기 마련이다. 민족공동체가 연방기금 혜택을 더 받는 길도 숫자와 목청을 모아야 하는 길이다.

단결하지 못해 플러슁 주차장 재개발을 허용하고 나면, 한인들은 그동안의 보루 격인 유니언 상가를 오래 지키기 어렵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가 손님들이 주차할 곳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교회건 상가건 주차장이 없으면 '비즈니스'가 안 된다. 다들 집에서 상가까지 걸어다니란 말인가?

 
비록..중국인들의 영혼은 사랑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한인 상권이 잘 돼야 한인 교회도 잘 되며, 그래야 전도도 더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일치 단결 없이 계속 상권을 중국계에 '양보'만 하다간, 한국계는 '인해'에 밀려 이익과 발판이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역사가 말해 주는 결과다. 함께 버틸 때는 버텨야 한다.

필자로서 이번 플러슁 공용주차장 문제를 향한 최대 관심사는, 딴 요소들보다 퀸즈 한국인들의 단합 여부인 거 같다. 이건 '기 싸움'이 아닌 '단합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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