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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마 11:12] 천국은 난폭한 침공자들의 것?






들풀님이 해석을 부탁해 오신 마태복음서 11'12 말씀을 갖고 묵상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전에도 여러 번 묵상해 봤지만, 성령께서 좀 더 새로운 뜻을 깨닫게 해 주시길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와 연계된 중요 사안인 천국 입국 관련 성구여서 정식 글로 올리게 됐습니다.


(마태복음서 11'12 번역 시도)

     ἀπὸ δὲ τῶν ἡμερῶν Ἰωάννου τοῦ βαπτιστοῦ ἕως ἄρτι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βιάζεται καὶ βιασταὶ ἁρπάζουσιν αὐτήν      

     (아포 데 톤 헤메론 이오안누 투 밮티스투 헤오스 아르티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비아제타이 카이 비아스타이 하르파주신 아우텐)

    사역: (또) 침례자/세례자 요한의 날들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들)의 왕국이 침공 당해 왔으니, 침공자들이 그것을 차지한다오. 


다음은, 대체로 기존 성경에서 오역에 가까운 부분들입니다. (굵은 글씨 부분 유의)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공동성서)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표준새번역)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있게 성장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쉬운성경)    


마 11'12은 쉽게 생각하면 쉬운데, 어렵게 생각하면 한껏 어려워집니다^^.
가장 공통된 물음은 주님께서 왜 과격한 용어, "부정적"인 용어를 썼느냐..
사실, 원어 '비아제타이'(침공 당하다), '비아스타이'(침공자들), '하르파주신'(빼앗는다) 등이 모두 강세를 띠고 있지요.
그래서 혹시 다른 뜻이 있느냐,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그리고 과연 천국이 힘/폭력으로 뺏을 수 있는 성격이냐고 묻게 됩니다. 

우선 한 가지 결론적 전제를 말한다면, 이 성구에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주장이라면.. 마귀가 폭력으로 천국 길을 침범하려 든다는 해석이 있고..또 젤롵 애국당원들 같은 과격파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왕국을 침노하려던 게 아니겠냐는 것이지요. 주님의 12제자들 중 한 명인 시몬도 젤롵 당원이었기에 주님이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육적/신체적/물리적 폭력으로는 영적 왕국에 근접할 수도 없고, 그래서가 전혀 아닙니다.  


마태복음 11'12은 맨 먼저 관련 성구인 루카복음서 16'16과 연계시켜야 합니다. 두 성구의 원문을 대조해 보면 알겠지만, 마태와 루카는 다 같이 '비아제타이'라는 수동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 동사의 원형 '비아조'의 능동형은 좀체 쓰이지 않고 거의 시적으로만 쓰입니다.

그러나 한글판이나 영문판으로 봐서 알지만, 여기서(루카복음) 이 동일한 수동태의 직역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선지 대다수의 번역들이 마태 11'12과 뤀 16'16의 '비아제타이'를 동일하게 번역하지 않고 좀 다르게, 특히 후자를 더 부드럽게 옮겼지요. 

반면, 저의 사역은 일단 두 성구의 공통된 낱말 '비아제타이'를 동일하게 옮겨 봤습니다. 왜냐 하면 문제의 성구 뒤에 이어지는 마 11'13와 합하면 뤀 16'16과 거의 동일하게 조화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굳이 더 부드럽게 의역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관련성구 (루카복음서=눅 16'16) 번역 시도

 ὁ νόμος καὶ οἱ προφῆται μέχρι Ἰωάννου ἀπὸ τότε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εὐαγγελίζεται καὶ πᾶς εἰς αὐτὴν βιάζεται
(호 노모스 카이 호이 프로페타이 메ㅋ흐리 이오안누 아포 토테 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 유앙겔리제타이 카이 파스 에이스 아우텐 비아제타이)

사역: 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왕국이 전파되니 저마다 그것을 침공하려 든다오. 


왜 과격한 표현을 쓰셨나?

주님은 왜 여기서 천국과 관련하여 격한 표현을 쓰셨을까요? 천국은 과격하지 않고 보드라운 어린이 같은 마음에 더 걸맞지 않나요?
우선 우리는 어린이도 때로는 과격할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린아기도 배냇 시절 자궁 벽을 발로 차기도 하고, 엄마 젖꼭지를 꽉 깨물기도 합니다. 에사브-야콥 형제는 엄마 리브카의 뱃속에서부터 서로 티격태격 싸웠고, 에사후가 먼저 나가자 야콥은 그의 발뒤꿈치를 움켜 쥐고 나왔지요.

그 뿐입니까?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가 유다를 통해 얻은 쌍둥이 아들은, 본래 제라(자라)가 손을 내밀어 먼저 나오려다가 페레즈(파레즈)가 먼저 태를 터뜨리고 나옵니다. 페레즈란 이름의 뜻이 "터뜨리다"입니다.  

어린아기의 주먹쥐기 힘은 대단하며 철봉에 매달리기도 한답니다. 하물며 자란 아이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뭘 시사합니까? 어린이도 쟁취욕이 있다는 말이지요.
성부님과 함께 창조주이셨던 주님이 이것을 모르셨거나 무시하셨을 리 없을 터입니다.


과격한 표현들의 문화적 뿌리는?

마 11'12에 표현된 과격한 어휘들의 히브리-아람어권적 문화 배경적 뿌리를 본다면, 먼저 양떼와 목자의 관계가 떠오릅니다. 과연 주님은 이 말씀을 히브리-아람어적 맥락에서 어떻게 하셨고, 어떤 의미였으며, 어떻게 번역해야 하냐가 과제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당신이 선한 목자이면서 동시에 '양문'(羊門)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는 밤새 울타리 안에 양떼를 넣어 둡니다. 들짐승들이 타 넘거나 침입하지 못하는 가시 울타리입니다. 아침이면 목자는 울타리에 구멍을 뚫어 작은 문을 냅니다. 이 구멍 뚫기-문 열기가 자칫 폭력적으로 시사됩니다.
이 작은 문으로 양이 한 마리씩 '탈출'합니다. 좁은 문이라서 첫 양은 힘들지만 한 마리씩 양들이 뒤이어 나올수록 문은 점점 넓어집니다.

주님은 천국과 진리에의 길을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늘 비유하시지요. 부자에겐 바늘 귀와도 같은 이 좁은 문을 저마다 목표 삼고 온갖 죄인들이 회개하고 들어섭니다. 죄인/세리/창녀 등입니다.

겉으로 점잔을 빼며 허식/가식을 부리는 당대의 종교인들이 보기엔 다 불법/폭력적인 무리입니다.
"헑~! 아니 우리 같은 경건한 무리가 아닌 더럽고 잡된 죄인의 무리가 천국엘 간다고?"가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가히 불법/폭력단의 천국 강제입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천국은 그런 침공자들이 차지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진짜 불법자들은 따로 있지요. 바로 싸탄과 거기 준한 길도둑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천국에 갈 수 있을 줄 믿는 사람들이지요. 예수 크리스토를 유일한 구주로 믿지 않고도 저마다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놀랍게도 교계 사람들이 존중해 온 명사들인 C.S. 루이스, 헨리 나웬, 테레사 수녀, 빌리 그래엄, 라벝 슐러, 리처드 포스터, 맄 워런 등이 그런 사람의 예들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포장들을 잘 하지만 말입니다.


미카 2'13 예언

미카 2'13은 메시아적 예언의 하나입니다.
여기에도 얼핏 과격하게 보이는 표현들이 나타납니다.

직역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파괴자가 그들 앞서 올라가니
     그들이 성문을 깨부수고 통과하리
     그들의 왕이 그들 앞서 지나가시리
     그들의 주/야웨님이 그들의 선두에서!  

그러나 여기서 파괴자(포레즈)의 동사원형 '파라즈'는 "부수다", "터뜨리다", "길을 열어 통과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유다의 쌍둥이 아들의 첫째의 이름 페레즈와 같은 어원이지요.

그러므로 이 '파괴자'는 앞서 길을 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길을 여는 사람은 침례자 요한으로 비유될 수 있고,
앞장 서신 왕은 곧 예수 크리스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침공을 앞서 예비할 사람은 바로 침례자 요한이었고, 침공자들은 곧 예수 크리스토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기 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직 구약기에 살았기에 앞으로 전성기를 이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간 사람은 성령님/하나님을 속에 모신 사람들이기에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침례 요한보다는 큰 사람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왜 요한의 때부터인가?

침례자(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시오. 천국이 가까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구약 때부터 예언된 길라잡이/앞잡이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대언자, 새 '엘리야'로 부각된 인물이지요.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고 바로 예수 크리스토와는 가까운 친척 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요르단 강변에서 침례(세례)를 베풀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죄를 뉘우치며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독사 새끼들' 같은 당대의 종교인/위선자들은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이상 침례를 받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독사의 특징 하나가 뭡니까? 어디나 미끌어지듯 슬며시, 스며 들 듯 숨어 들고 파고 듭니다. 그래서 천국 길도 슬쩍 새치기로 숨어 들 수 있을 줄 믿지요.

하지만 천국은 전심으로 강렬히 열망하고 애타게 찾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즉 어린이들처럼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갈망하고 '침공'하는 사람들이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한 이전에는 천국 계시의 비밀이 가려졌었습니다.
아무 대언자도 구체적으로 하나님 왕국에 관한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길을 직접 예비한 요한이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믿음의 사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천국 길로, 좁은 문을 찾아 몰려 들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경쟁, 선의의 경쟁입니다.


그러므로 실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천국은 침공자들의 것입니다. 즉 믿음의 열정이 있고 애쓰고 힘써 말씀을 순종하여 행하는, 도전적인 사람들이 차지하는 곳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은 행위구원론을 뜻하진 않습니다.
믿음엔 응당 거기 걸맞은 행위가 따른다는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