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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카톨맄(천주교)

카톨릭 미사 대(對) 십자가




카톨릭 미사 대(對/vs) 십자가


롸저 오클런드 (김삼 역)



카톨맄 교회의 새복음주의화(New Evangelization) 계획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추려 설명해 보면, 카톨맄교는 땅에 신국(神國: '하느님의 나라')을 세우려고 세상을 천주교적 예수, 곧 성체성사적인 크리스토(그리스도 the Eucharistic Christ)로 이끌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의 이 신국은 (분리된 형제들*을 포함한)온 세상이 로마 바티칸과 이 성체성사적 예수의 통치 아래 속할 때 성취된다는 것이다.


성체성사적인 예수는 천주교 사제가 화체(化體: 빵이 실제로 크리스토의 '살'로 바뀐다는 그들만의 주장)의 힘을 통해 불러올린다고 믿는 크리스토의 '현존'으로서 미사의 핵심이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성만찬의 기독교 전통은 천주교의 성체성사와 동일하고들 믿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성체성사 곧 화체는 빵과 포도주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한다는 천주교 식 성만찬이지, 신교의 성찬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 교리문답을 보자:


   "유카리스트라는 가장 복된 성사에는 우리 주 예수 크리스토님의 몸과 피가 영혼 및 신성과 함께-따라서 온 크리스토님이-참으로, 실제로, 본질적으로 들어있다." 



성체성사에 쓰이는 호스티아(빵/면병)는 몬스트란스(성체 현시대=顯示臺/안치기)* 속에 놓여져 신도들로 하여금 실제 예수님을 경배하듯 경배하게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천주교 성체성사가 그들 나름의 구원 자체와도 연계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유카리스트를 통해 구원이 성사화(의식참여) 된다는 개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의롭게 된다(갈라티아서 2'16)는 성경 진리에 어긋난다. 이 신비체험은 천주교의 핵심이자 우상숭배의 한 형태이지만, 놀랍게도 최근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를 비롯한 신교 교회와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점차 흥미를 갖는 사안이기도 하다.  


바티칸 지도층은 근래 카톨맄교 자체 내에서 발생해온 성체성사에 대한 무관심을 우려하여 '새복음주의화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성체성사에 대한 "경외감의 불꽃 되돋우기(다시 피워내기)"를 바라고 있다. 


천주교 지도층은 현재의 신도들을 지키고 복음주의자들을 천주교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중목적을 갖고 천주교 신앙의 핵심으로서의 성체성사를 재강조하려는 플랜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경외감 되돋우기"라는 말은 성사성체의 신비주의적, 초자연주의적 요소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천주교도들은 모두 이 (성체로 변하는 '경배' 대상인) 호스티아를 경배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가르침을 배격할 경우 '아나테마'(anathema=저주대상/혐오물)가 된다. 트렌토 종교회의는 이에 대한 천주교의 공식 입장을 다음과 같이 굳혔다. 


누구라도 이 가장 신성한 성체성사에 우리 주님 예수 크리스토의 영혼과 신성이 함께-따라서 온 크리스토님이-참으로, 실제로, 본질적으로 들어있음을 부인하고 단지 그 분이 표징 또는 상징, 힘으로만 계신다고 할 경우 그는 아나테마이다. 


만약 누가 성체성사를 통해 모신 크리스토님은 영적으로만 받아들였을 뿐 성사적, 실제적으로 모셔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아나테마이다. 


개혁시대와 반개혁시대 때 화체설을 믿기 거부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처형을 당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이것을 잊어버리는 시대가 돼 가고 있다. 2003년 4월, 전 로마 교황 요한 파울로('바오로') 2세는 성체성사를 위한 "경외감 되살리기" 목적의 '새복음주의화' 프로그램을 증진하는 칙서를 내더니, 이듬해인 2004년 10월엔 전세계에 성체성사의 크리스토를 전파하려는 야심찬 '복음화' 플랜의 일부인 '성체성사의 해'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그가 죽자, 차기 교황 베데딕토16세가 이를 즉각 이어받아 교도들에게 성체적 예수 크리스토께 대한 헌신을 다지도록 요청하고 성체성사는 '크리스천의 삶의 중심(heart)'이라고 주장했다. 


베네딕토는 또, 직전 교황이 뜬 바로 그 자리에다 자신의 교황권을 고정하기를 희망했다.

다음 기사를 보자: 


   베네딕토 교황은 신도들에게 "앞으로 성체적 예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더욱 강화해주기를, 그리고 그 주님의 실재 현존으로 향하는 담대하고 명료한 길을 표현해 주길" 주문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또한 "모든 신도들을 성체적 크리스토께로 더욱 가까이 가도록" 도와줄 '성모님'께 기도할 것을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마리아님은 '성체적 여인'이십니다...우리 모두 정녀님께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한 신앙을 더욱 깊이 갖도록,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과 지속적인 친교 속에 살면서 그 분의 강한 증인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카톨맄 미사의 총체적인 전제가 흠집 투성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를 할 동안 성체 예수는 피없는 희생물로 드려진다. 미사 때마다 반복되는 이 희생은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새 언약의 희생을 말한 히브리서 9:28에 어긋난다. 


   "크리스토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번에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그 분을 바라는 그들에게 두번 째로 나타나실 터입니다." (이하 성구는 사역) 


여기서 단 번의 희생이지 여러 번의 희생들이 아님을 유의해 보라.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 어떤 제사이든지 그 본질상 수난, 고통 또는 손실 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이미 희생되셨고, 하나님은 이것을 죄를 위한 한 번의 제사로 받으셨다. 예샤야후(이사야)서 53:10은 "그러나 그 상하심은 예호봐님(아버지)을 만족시켜 드렸네", 그리고 "그 분은 그에게 고통을 겪게 하시니 곧 그 영혼을 속건제로 삼으실 때라"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크리스토)의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하실 것이라고 했다(11절). 


예수님의 골고타 십자가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희생이었다. 그 분의 아드님의 수고로 이뤄진 유일한 제사였기에. 카톨맄 변증가들이 공공연히 주장하는 미사는 크리스토님의 희생이 포함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샤야후 53장의 컨텍스트에 맞지 않기에 희생제사로 제시될 수가 없다. 


더욱이 히브리서 12:2은 "크리스토님은 수치를 무릅쓰고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했다. 예수님을 계속 수치 상태로 내모는 천주교 미사는 십자가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미사는 텅빈 것이나 다름없다. 공허한 그것으로는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즉 신교나 성공회,정교회 등을 포함한..

* 몬스트런스.중간 사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