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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카톨맄(천주교)

현대 사제제도는 성경적일까?

루마니아 정교회 사제들(Source: Romania Insider)




현대 사제제도는 성경적일까?




로마 천주교나 동방정교회, 성공회와 루터교 등에서는 사제주의(sacerdotalism)를 고수한다. 그래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성체성사(성찬)를 '봉행'하고, 아울러 고백성사나 종부성사 따위를 맡는 사제들을 두고 있다. 


로마 카톨맄 제2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사제들의 사목(司牧)을 통한 신도들의 영적 희생/제사가, 유일한 중재자 크리스토(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가 되어 완전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우선 논리에 있어 모순이다. 


말인즉슨 크리스토가 유일한 중재자라곤 하나, 실은 유일한 중재자의 희생만으로는 완전하지 않고 일종의 다른 중재자/매개인 사제들의 사목을 통한 신도들의 영적 희생(제사)과 합해져야 완전해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크리스토님의 희생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고 추가적으로 사제들을 통한 또 다른 희생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돼 버린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크리스토님의 희생과 중재가 천주교에선 아직 미완성인 셈이다. 


사제들이 성체성사(Eucharist, sacrament)를 통해 크리스토의 희생을 거듭 다시 봉행한다는 주장은 그러므로 짐승의 피를 흘린 구약시대의 제사와 별 다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비록 천주교에서는 성체성사를 '피 없는 제사'라곤 하나, 성체 속에 크리스토가 현존한다는 유의 실재론(substantialism)과 소위 성체의 '성변화'(聖變化. 일명 화체설/化體設/transubstantiation)를 믿기 때문에 실상 그들 나름의 이 '피 없음'이 별 의미가 없어지므로, 모순이다. 


사실, "피 흘림 없이는 죄 용서도 없습니다"[각주:1]라고 명언한 히브리서 말씀(히 9'22)을 볼 때, 천주교가 강조하는 '피 없는 제사'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본디 피 없이는 용서가 안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님의 희생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넘친 제사였지만, 단번에 다 이루시고 끝내셨고(! 참고: 요한복음서 19'30; 로마서 6'10; 히 9'12,26,28a; 10'10) 그 자체로 영원한 완성이었기 때문에, 더 반복할 이유와 필요가 없고, '피 없는 제사'라고 해서 더/또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천주교는 성경의 저런 증언들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무시한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토님의 영원한 희생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사제로서 '피 없는 제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온전하지 못한 중재자, 완전한 희생을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크리스토를 믿는 셈이다. 그래서 더더구나 그들은 중재자/중보 크리스토님 외에 마리아나 천사들, '성인'들과 사제들의 중재가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그런 매개들의 특권과 권위 같은 것도 덩달아 강조될 터이다. 



사제들이 매번 성체성사를 반복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큰 모순이고, 역행이다.[각주:2] 왜냐 하면, 신약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제가 자신의 것 아닌 다른 것의 피를 갖고 해마다 성소에 들어갔듯, 그렇게 그 분이 거듭 자신을 바치실 까닭이 없었습니다...만약 그래야 한다면, 크리스토님은 세상 창조 이후 자주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분은 자신의 희생제사로써 죄를 없애려고 (이) 말세에 단번에 나타나신 것입니다."(히 9'25,26 사역)  


그런데 현대 사제들은 성체성사를 봉행함으로써 크리스토님으로 하여금 거듭 거듭 더 바치게 만들고 있는 격이다. 비록 언필칭 '피 없는 제사'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만약 그런 봉행이 계속 필요했다면, 왜 주님께서 진작 창세 이래 계속 자주 수난하시지 않았겠는가? 구약 사제들이 했던 것처럼? 

이 엄연한 기초적 모순을 왜 카톨맄 사제 및 신도들은 깨닫지를 못하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반면, 성경은 크리스토님의 십자가 희생 하나로 모든 제사가 완성됐다고 밝혀 준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사제가 필요 없이, 각자 믿음으로 크리스토님이 이미 흘리신 보혈과 그 이름을 의존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다(히 4'16). 



둘째로, 개념상 역사적인 도치(倒置)요, 따라서 역행이다. 


지금은 신약시대이지 구약시대가 아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인 구약 때는 잦은 동물 제사가 필요했지만, 구세주께서 모든 제사를 단번에 완성하신 후로는 우리의 죄를 사(赦)하기 위해 그런 반복제사가 필요 없고, 대신하여 제사를 드려 줄 구약 시대와 같은 사제들이 필요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언약이 아닌, 더 나은 새 언약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히 7'22, 8'6)!   

그런데 카톨맄교는 다시금 사제제를 기용함으로써 도로 구약 시대로 되돌아간 셈이며, 그 신도들에게 새로운 언약이 아닌, 낡은 언약을 다시 소개하고 권장하고 있는 것이나 진 배 없다. 옛날처럼 사제의 도움으로라야 사죄와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백성사'도 있는 게 아닌가. 천국 가려면 반드시 사제라는 도우미가 평생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 구태의연한 생각이 아니랴! 


성경은 분명 신약의 성도들은 모두 새 언약의 사람들이므로, 예수 크리스토의 단번의(!) 희생으로, 그리고 오직 그 희생으로만 속죄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예수 없는 유대인의 '희생'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반복적 성체성사 개념은 '단번'이라는 어휘와도 모순된다. 


그러므로 사제주의는 단번에 영원히 완성하신 예수 크리스토의 대속사역을 사람들에게 바로 전달하기보다 오히려 헷갈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훼방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성찬 곧 주님의 만찬은 이미 수난하시고 대속사역을 완성하신 그 분의 몸을 그 분이 다시 오시기까지 영구적으로 기념하고 그 죽음을 전하는 데 본질적인 의의가 있다(참고: 루카복음서/눅 22'19, 코린토A서/고전 11'24). 



사제주의는 자동적으로, 교인들('평신도')보다는 사제들에게 더 큰 책임을 부과한다. 


바꿔 말하면, 장차 받을 심판의 무게도 한결 더 무겁다는 말이다. 교인들의 도우미이므로 여차여차한 관련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모면할 길이 없다! 교인들을 통괄/통제하고, 그들의 죄악을 모두(?) 고백 받고[각주:3], 성체성사를 통해 크리스토의 대속을 '완성'시키면서 죄를 용서 받게 해 주고, 종부성사로써 천국길까지 보장(?)해 준다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과연 천국은 무슨 성사, 무슨 성사 등 그런 과정을 거친 천주교인들만 가서 사는 곳일까? 글쎄다. 그보다도 천국은 성경대로 믿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닐까?



성경은 사제와 평신도를 나누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이나 교회는 '지배계층'인 사제/목회자와 '피지배계층'인 소위 '평신도'라는, 양대 계급사회 같은 것으로 나뉜 줄로 착각하곤 한다. 성경은 그런 이원론적으로 분류된 상하계층 내지 '계급' 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 

크리스토님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은 하나여야 한다! 목회자나 성도나 다 한 지체일 뿐이다. 성도는 서로를 섬기게 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를 무턱대고 섬기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목회자가 아닌 예수 크리스토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제 제도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는 신약 성경의 초기 교회와 달리, 천주교 등 이들 의식적 교파들은 타임 머쉰처럼 구약 시대로 되돌아가 사제제를 두고 귀족화 함으로써, 사제/수사/수녀 등과 '평신도'와의 사이가 본질상 서로 하나될 수 없는 사회쯤으로 나뉘어 있다. 그들의 성가대도 그런 성격을 띠었다.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사제독신주의(Clerical Celibacy)의 문제점


사제독신제는 로마 카톨맄 사회만의 하나의 밈(meme)이다. 


정교회도,[각주:4] 성공회도, 루터교도 모두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해 놓고 있다. 구약 사제들도 모두 결혼을 했다. 그래야 사제 제도가 영구히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예루샬렘 성전이 사라진 지 약 2천년이 지나갔건만, 유대인들 가운데 아직 '코헨'(사제의 후예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천주교는 사제/수사/수녀들의 독신을 요구한다. 


성경은 그런 의무조항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스스로 고자된 이들과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들은 제도가 아닌 자발적 자의에 의한 것이다. 심지어는 천주교에서 '초대 교황'으로 추대한 페트로(베드로)마저도 독신은커녕 엄연히 아내를 두었을 뿐더러 데리고 다니며 선교활동을 한 기혼남이었다! 거기 대해 아무도 이의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사도 파울은 "우리인들 딴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 케파(게바 즉 쉬몬 페트로)처럼 믿는 아내와 함께 다닐 권리가 없을까요?"(코린토A 9'5)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파울의 말은 딴 사도들, 야코보나 유다 같은 주님의 아우들, 페트로와 다름 없이 아내를 둘 권리가 있지만, 일부러 그 권리를 안 쓰고 있다는 뜻이다. 

무슨 뜻일까? 일부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 주님의 아우들, 페트로 등이 다들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럴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로마 카톨맄 사제/수사/수녀들은 그런 권리가 없다. 그 점에서 모든 사도들과 주님의 아우들, 당대 성도들과는 부류가 다르다. 심지어 카톨맄교가 첫 '교황'으로 받들어온 페트로조차 그런 권리가 있어 아내를 데리고 다녔는데도 말이다. 



  천주교 수사였다가 탈퇴한 루터와 탈출한 수녀 폰 보라의 결혼예식 광경



바로 그래선지는 몰라도, 본디 아우구스투스 수도회에 소속된 천주교 수사였던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그가 수녀원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운 '성모보좌(Marienthron)' 시토수녀회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 양과 결혼해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면서, 한스 (요하네스), 엘리자벹, 막달레나, 마르틴, 파울, 마르가레테 등 6 자녀를 낳아 양육했다. 함께 탈출한 다른 여러 여성들도 앞서 루터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했다! 폰 보라는 그 중 짝이 없어 맨 나중까지 남아있던 여성이어서 결국 루터와 맺어졌다. 

카톨맄 측에서 볼 때 배교사제 루터와 카타리나 등 이 수녀들은 엄청난 이단아였겠지만, 그들은 사실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아우들, 페트로와 똑 같은 권리를 잘 활용한 것 뿐이었다! 



로마 천주교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딴 사도들과 주님의 아우들, 페트로 사도까지도 모두 그(결혼할) 권리를 사용해서 결혼했지만, 우리 사제/수사/수녀들만은 안 된다."


Well, suit yourself(글쎄...알아서들 하시길~).

사도 파울은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나?:


"그러나 절제할 수 없을 바에야 결혼하게 하세요. 욕정에 불타기보다는 결혼하는 쪽이 더 낫거든요."(코A 7:9)


무슨 말인가? 소위 '성소'에 응해, 사제/수사/수녀가 되어 살다가도 강한 유혹을 받고 정욕이 불타오르면,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천주교 성추행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로마 카톨맄 교엔 그런 센스가 없다. 그들에게 성소와 독신은 영원히 함께 가는 것이다. 이 다음 천국에 가도 독신자들을 위한 더 큰 상급과 더 고등인 낙원이 따로 있으려나 모르겠다. 물론 정욕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독신생활을 하며 헌신한 파울 같은 사람들은 "당근", 상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더 원점으로 돌아가, 창조주 하나님은 첫 여자 창조 당시 이런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예호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것, 좋지 않다. 내가 그에게 걸맞은 도우미를 만들어 주련다.'"(창 2'18) 


그런데 천주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되도록 혼자 지내는 게 좋다. 특히 사목할 사람들은 말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나날이 '성소'가 줄어들고, 사목 지원자도 감소하는 건 아닐까?  


천주교 초기 사람들은 코린토A서 7'1,7,8,26~40 등을 독신제의 근거로 삼았을 법하다. 그런데 그것이 사목자 종신독신 내지 강압성 미혼 유지의 정당한 사유일까?

누구나 파울 같은 '독신의 은사'를 다 받아 누리는 건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하는 법이다. 

사제/수사/수녀 성소를 지닌 사람들이 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루터와 폰 보라 등이 이미 그 지경에서 파계하지 않았는가?



이상을 볼 때, 이래저래 천주교식 독신 사제제도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골라 빼신 바 된 세대, 왕 같은 사제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것인 백성입니다..."(페트로A서 2'9a). 


우리에게는 별도의 사제가 필요없다. 오직 하늘 대사제(대제사장)님으로만 족하다(히 7'26). 




  1. 이하 성경구절은 사역임. [본문으로]
  2. 신교 교회는 성찬으로써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지, 또 다른 희생이나 성체봉헌을 하는 게 아니다. [본문으로]
  3. 물론 사제가 신도의 죄악을 "모두" 깡그리 고백받을 순 없는 노릇이다. 신자의 속을 누가 알랴?! [본문으로]
  4. 단, 정교 수사들은 독신이어야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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