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비평/교회력과 교회명절

크리스마스의 빛과 어둠


 


김삼 ㆍ 2007/12/10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화려한 추억과 색상, 카드나 선물, 이벤트와 프로그램, 헤어져 있던 가족 친지의 만남, 연말 대목과 휴가를 뜻한다. 전통 교계에선 '대강절'(=대림절/강림절)로부터 지켜지는 연례 전통으로 자리잡혀 있다. 카톨맄에서 유래된 '교회력'에서는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에게 흔히 성탄절은 교회 연극과 캐럴, 흰 옷 천사들과 빨강 옷의 싼타, 하늘을 나는 반짝이는 빨간 코의 '루돌프'를 비롯한 순록들, 벽 난로에 걸쳐진 긴 양말들, 성탄절 새벽 추리 아래의 선물꾸러미 등을 시사한다. 낭만적인 사춘기 틴에이저들은 '겨우살이 아래서의 짜릿한 첫 키스'를 꿈꾸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상당수 사회인들에겐 성탄절이 망년파티로 이어지는 술파티, 음주운전의 요인도 된다.

각 교회는 이맘 때쯤 많은 예산을 들여 연중 최대 규모의 음악예배 등 성탄축하 행사를 벌이는 동시, 최다 규모(?)의 헌금을 받아 들인다. 아울러 각 부서의 시상식과 송구영신 행사들로 이어진다. 구세군, 자선단체 등은 홈리스와 빈민들에게 온정을 베푼다. 또 비신자들이 교회를 접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긍정적인 면모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한 1990년대 후반부터 웹의 각종 연구자료들에 의해 성탄절의 의미가 퇴색돼 가고 있다. 반 기독교 감정에 곁들여 '반 성탄절파'인 사람들도 있다. 타운 몰 중앙에 자리잡곤 하던 '마구간 씬' 디오라마 같은 성탄장식도 '일방적 종교 증진'이란 누명을 쓰고 구석으로 슬며시 밀려나거나 상록수와 미니 전구 불빛만 남기고 사라지기도 한다.

미국은 다양한 국적/종교 출신의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비슷한 기간의 다양한 절기를 양성화 내지 평준화 하려는 노력도 있어 왔다. 그래서 유대교의 '하누카', 아프리칸 계의 비종교 명절인 '콴자'도 적극 즐긴다. 그러다 보니 특히 12월은 흡사 명절 백화점 같은 기분도 든다. 더욱이 명절들은 상혼과 맞물려 중요한 경제 유동의 윤활유가 돼 왔다.

성탄절 전통 특히 크리스마스캐럴 중심의 성탄 찬송가 가사들은 퍽 오래 전부터 필자에게 의혹을 던져 주곤 했다. 많은 부분들이 "이건 아닌데.."란 의문부호를 남긴다. 생각과 묵상을 거쳐 마침내 어느 해 부턴가 성탄절 축하 전통을 탈피하게 됐다.

우선,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위기/기분을 위해 매년 빠짐없이 해 온 상록수 추리 세우기를 몇 년 전부터 중단했다. 교우들에게도 애써 절기 의식을 강조하지 않게 됐다. 이것은 잠재의식으로부터 탈출 등 어떤 의미의 희생과 고통이기도 했다. 나 자신, 어려서부터 해마다 성탄절을 무척 즐겼고, 그리운 수많은 추억들을 오래 간직해 왔기 때문이다. 문학을 좋아했던 시절, 나의 첫 단편소설도 성탄절을 주 배경으로 했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이 글은 독자들에게 모종의 율법적 압박감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서로들 한 번 쯤 생각해 볼 기회를 갖자는 것 뿐. 해석과 판단은 독자 재량에 맡긴다.]

왜 계절의 보람-Reason for the Season-을 찾으러 애쓰지 않냐고? 글쎄다..예수님의 성육신 사실과 구원 말고는 허구 투성이인 명절에서 무슨 보람을 그리 찾겠는가? [Christ+mass=Christmas]란 공식에서 알듯 크리스마스는 엄격히/엄연히 카톨맄이 만들어 낸 제전이다.

생각해 보자. 신자에겐 몸의 생일보다 더 중요한 게 예수님을 바로 믿고 거듭난 날, 즉 중생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날을 매년 축하하고 '축하 파티'를 여는가..오히려 거듭난 후 점차 성숙해 가는 것이 더 축하할 일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생일이 거듭되면서 점점 자라는 자녀의 모습을 흐뭇해 하지, 갓난아기 장식을 해 놓고 출생 당시로 되돌아 가 그때를 애써 다시 기억해 내어 갓난아기의 태어남을 거듭거듭 축하하진 않는다.

그런데 유독 신/구 교회는 늘 아기 예수의 나심을 해마다 꼬박꼬박 거듭 축하하고들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숙한 신자들이라면 그 속사람 속의 예수님의 현존을 기뻐할 뿐, 마리아에게서 갓 태어난 아기의 탄생을 매 년 반복 축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인류사의 분수령이고, 택함 받은 죄인들의 구원과 지복의 모멘텀이었음을 신자이면 누구나 시인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건의 절기적/의례적 기념에 관해, 행전 속 초기교회는 일체 침묵을 지킨다.
교회의 원조인 예루살렘교회나 성경 기자들은 '성탄축하' 관습에 관해 아무런 실천도, "매년 성탄절을 지키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주님 탄신일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인지조차 캐 내지도, 알려줄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성탄절'이란 것을 지켰던 흔적이 도무지 없다. 다만 탄생 당시를 기뻐했던 복음서의 탄생 기록 뿐.

반면 16세기 개혁가들은 성탄절 전통을 개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더구나 성탄절을 기해 강조되는 마리아 숭상/신격화에 함께 "놀아났던" 흔적이 있다. [필자의 글, '개혁가들이 오해한 마리아' 참조. http://truthnlove.tistory.com ]

카톨맄교는 유난히도 마리아 곁에 딸린 듯한 '베이비 지저스'를 선호하여 성장한 어른 예수가 아닌 갓난아기의 탄생을 연례행사로 매년 꼬박꼬박 기린다. [그와 비스름한 이치로 미사 때마다 성체성사로써 매 번 감실과 면병 속 예수를 '체화'시켜 영수한다. 이미 죽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가 그들에겐 성체성사 때마다 면병 속 '작은 예수'로 다시 죽음 당해야 한다. 그래선지 그들의 '성상' 십자가엔 예수님의 몸이 늘 매달려 있다.]

개혁가들은 크리스마스의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전수했다. 중대한 실수의 하나로 포착된다.

성탄절은 카톨맄 측이 '영원한 정녀' 마리아를 한층 더 높이는 중요한 기회다. 사실 카톨맄식 성탄 요람은 마리아 신격화의 틀 내지 모종밭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변별/비평가들의 말마따나 마리아 흠숭은 고대 미쯔라임/카나안/바빌론 등의 신화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아기를 안은 여신' 숭배 사상에 매우 근접해 있다. 더구나 성탄절과 연계된 많은 관습들은 온갖 이교 전통에서도 불거진다. 공통 요소들이 흔하다.

한 번 둘러 보자. 여기선 상록수를 장식하는 크리스마스추리 전통에 관해서만 생각해 보련다.

크리스마스추리의 황당한 기원

크리스마스추리는 대다수 국가에서 성탄절의 심벌로 쓰인다. 이 관습은 본래 '성탄절'과 같은 날인 고대 로마의 농신/태양신인 사투르나의 겨울 축제일인 사투르날리아를 기독교 절기로 '흡수통일'하는 과정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 축제를 기독교화하고자 했다.

로마인들은 이날 집 안팎을 상록수와 등불로 장식하고 선물교환을 했다. 그러나 3세기 교회는 이 관행을 엄금했다. 초기 기독교 지도자 테르툴리아누스(160년?~230년)는 당대 신자들이 이교 전통을 답습하여 등불과 상록수 화환으로 자기 집안을 장식한다고 나무랐다.

상록수는 미신과도 직결된다. 얼마 전 세상을 뜬 파바로티가 영어 캐럴을 부르면서 '미슬레토'라고 발음하여 웃긴 mistletoe 즉 겨우살이 나무 가지 아래서 키스하는 전설적 습관은 지금도 주로 각종 미디어에서 강조되곤 한다.

켈팈 숲의 사제들인 드루이드들은 동짓날 제식에 상록수를 썼는데 특히 호랑가시나무(holly)와 겨우살이를 해독제 또는 다산생식/영생불사의 상징으로 여겼고 악령 쫓기 용 부적 삼아 상록수 가지로 문 앞을 장식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겨우살이를 사랑의 여신 프릭가(Frigga)의 상징, 호랑가시나무를 봄과 희망의 상징으로 집 안팎에 모셔 들였다. 아울러 상록수는 북구 태양신 '발데르'(Balder)의 부활을 상징했다. 집 앞에 늘어 뜨린 상록수 가지가 마녀/유령/악령들을 멀리해 준다고 믿었다.

한 편으로, 독일의 '성 보니파체' 뷘프레드(675?~755)는 이교로부터 갓 개종한 신자들이 과거에 신으로 섬기던 참나무를 도끼로 찍자 넷으로 쪼개진 둥지의 뿌리 부근에서 어린 상록수가 자라난 것을 발견, 이교 신앙의 사멸, '기독교신앙의 승리'로 해석했다는 야화가 전해진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인가?

확인 안 된 일화에 따르면,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상록수 장식의 취미를 지녔었다. 1500년대 어느 성탄절 이브에 눈 덮인 숲속을 걷다가 눈 가지가 달빛을 반사하는 작은 상록수들의 모습에 반해 잣나무 한 그루를 집안에 들여 놓고 크리스토의 탄생을 기리는 촛불로 장식한 다음, 아이들을 위한 예화로 썼다고 한다. 촛불로 별빛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고.
16세기 후반에 이르자 상록수는 매년 독일 아담/이브 축제 때 '파라다이스바움'(낙원나무)으로 불리며 애용된다. 바로 이 독일 관습이 훗날 미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측 독일 외인부대 '헤시안'들에 의해 전수된다.

그러나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은 추리는 물론 심지어 크리스마스 캐럴까지도 '이교도의 관습'으로 단죄하는 설교를 했다. 미 건국 초 뉴잉글랜드의 필그림들이나 청교도들은 성탄절 전통과 추리 장식 등을 금지했다. 플리머스의 제2대 총독 윌리엄 브랟포드는 성탄절에 붙은 이교관습의 추방에 힘썼다.

1776년 성탄절 이브날 뉴저지 트렌튼의 한 추리는 미 독립혁명의 일대 전기를 이뤘다고 한다. 영국군에 투입된 '헤시안'들이 불 켜진 상록수를 보고 향수에 빠져 파수대를 버리고 밤새 먹고 마시고 즐기다 워싱턴 독립군에 패배했다.

1851년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의 목회자 헨리 슈완은 교회당 안에 세운 최초의 추리로 이 방면의 테이프를 끊은 사람. 그러나 교구민들이 이를 단죄해 왔기에 슈완은 한때 해임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편 1870년까지만 해도 보스턴 학교들은 성탄절에도 문을 열었고, 시즌 중에 집에서 노는 학생들을 퇴학시키기도 했다.

미국에서 추리 겨울 장이 선 시초는 1851년 겨울. 뉴욕주 캐츠킬 농부 마크 카(Carr) 씨가 두 황소가 끄는 썰매에다 가득 실어 뉴욕시에 갖다가 몽땅 판 것이 최초다. 미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에 최초로 크리스마스추리를 세운 것은 제14대 프랭클린 피어스(프리메이슨) 대통령 당시. 1900년까지는 미국민 5분의1이 추리장식을 했고 그 20년 뒤 가정마다 퍼졌다. 현재 추리 시장은 거대한 수입원을 형성하고 있다.

상록수 전통은 기원 훨씬 전 고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교 전통과 깊은 연결고리를 이뤘다. 미쯔라임(애굽) 사람들은 일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이 다가 오면 늘푸른 대추야자나무 잎을 집안에 들였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라는 뜻으로.
고대 카나안 잡신 숭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그들과 근접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점에 늘 경고를 받았다(신 12:2, 왕들A 14:23, 왕들B 16:4, 17:10, 연대기B 28:4, 이 57:5, 예렘 2:20, 3:6,13, 에제키엘 6:13).

설령 우리가 현재 푸른나무들 아래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통의 뿌리가 심상치 않고 좋지가 않다. 세속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 드높이 세워진 휘황찬란한 불빛과 장식의 '푸른나무', 신자 집안에 우뚝 선 상록수들..이교적 연원이 명백한 이 관습이 과연 하나님의 선한 뜻일까, 기쁜 뜻일까, 온전한 뜻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꺼림 또는 혐오의 대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