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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기타 서신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예전에 '후탁 교인'이란 말이 나돌던 적이 있습니다. 한 주 내내 성경책을 한 구석에 "냅두었"다가 주일날 아침에야 비로소 표지에 쌓인 먼지를 후~ 불고 탁! 쳐서 들고 교회로 가는 교인이라는 조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지퍼 교인'들이라고 해야 시의적절할 거 같습니다. 한 주 내내 성경을 지퍼로 닫아둔 채 놓아뒀다가 주일날 들고 가는 교인 말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날마다 수시로 가까이 해야 할, 삶의 동반자, 생명의 바탕입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바탕본문 말씀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얼마나 놀랍고 권능적인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생명력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여느 글이나 책과는 달리, 본질상 살아 있습니다.
생명,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지요! 결코 무생명체, 무생물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우선적으로 늘 인쇄 매체의 까만 활자로만 대하는 성경책 자체는 가죽 겉장에 둘러싸인 종이묶음이고 따라서 무생물이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눈으로 받아 들이고, 귀로 듣고, 혼에 새기고, 우리 속(영)에 머물게 할 때, 생명작용이 시작됩니다.

마치 죽은 듯 잠자던 씨앗이 파종기에 땅 속에 심겨, 무생명체인 햇볕과 역시 무생물인 물과 다양한 광물질로 구성된 땅 속의 영양을 흡수하면, 뿌리가 생기고 파아란 싹이 돋고, 잎과 가지가 나고 무럭무럭 자라나, 화려한 꽃이 피고 마침내 찬란한 열매를 맺듯, 우리의 마음이 옥토밭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며 성장할 때, 우리의 삶은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결실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말씀이 내 삶 속에 날마다 살아있기 위해서는 거기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믿음을 섞고 수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물이 많고 땅이 비옥해도 뿌리가 끊겼거나 짧은 나무는 금방 말라 죽을 수 밖에 없듯, 믿음 없는 심령은 말씀의 생명력을 받지 못해 금방 시들고 죽어 갑니다.

사도 페트로(베드로)는,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가 아닌 썩지 않는 씨로 된 것이라고, 곧 살아 있고 늘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페트로A=벧전 1'23). 


우리가 살기 위해, 참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예' 또는 '아멘'으로 응해야 합니다. 화답(和答)해야 합니다. 말씀의 잘못된 해석에는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하나님 말씀 자체엔 부정적으로 반응해선 안됩니다.
사람들은 거짓되나 하나님은 참되시며..따라서 그 말씀도 참되기 때문이죠. 
 
씨가 심긴 옥토에서 싹이 돋고 자라 큰 나무를 이루고 풍요로운 열매를 잔뜩 맺듯, 우리는 옥토가 되어 말씀의 씨앗을 챙기고 믿음으로 가꾸며 무럭무럭 자라나, 마침내 알찬 결실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려면 열심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정/의로 고루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나..이것은 순수하게 있는 대로의 하나님 말씀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온갖 불순한 외부 요소가 가미되어 변질된 씨앗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야채나 과일을 잘 씻거나 더 나아가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오개닠(무공해) 식물이어야 건강 생활에 더 도움 되듯, 하나님의 말씀도 순수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수시로 하나님 말씀을 읽기/듣기/읊조리기로 늘 접하고 대해야 하며, 뜻을 잘 모를 때는 그 저자이신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되도록 원문으로 해석해야 좋은 것입니다.
해석의 도움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온갖 이상영성이 판 치는 요즘이어서 성경 해석은 정말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존재와 삶을 신선하게 합니다.
날마다 새 힘을 줍니다! 우리의 혼(soul)을 소생시킵니다(시편 19'7; 23'3a).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엔 동력(활력)이 있습니다.

동력의 그리스어 낱말은 '에네르기아'. 에너지의 어원이죠. 움직이는 힘이란 뜻입니다. 자연계와 우주엔 만유인력 등 물리적인 힘이 있어 사물을 움직입니다만..하나님의 말씀도 움직이는 힘! 그것도 초강력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핵무기보다 더 강력하며, 5년 내로 폭발하기 쉽고 아이슬란드의 '에야피야틀라쿠틀' 화산보다 열 배나 강력하리라는 백두산의 폭발력보다 더 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어렵지 않은 추론이지요. 창조 때의 그 말씀/로고스가 바로 성자님 곧 지금의 예수 크리스토이셨습니다(창세기 1장; 요한복음서 1'1,2; 요한A서(요일) 1'1,2 참조)!


주께서는 일찍이 대언자(선지자/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불 같지 않니? 바위를 깨부수는 쇠망치 같지 않니?" (예렘 23'29)

이와 함께 하나님은 거짓 대언자들의 말은 겨/쭉정이로, 참 대언자들의 말은 밀/알곡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과연 주님의 말씀은 그러합니다! 그 말씀은 불길이 되어 죄와 악을 태우고, 의혹과 불신으로 무디고 둔해져 차돌처럼 단단해진 마음의 벽을 깨 부수고, 이성과 철학과 이론, 편견과 선입견의 높은 담을 헐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코린토B=고후 10'4). 모든 이론을 허물어 버립니다. 마치 난공불락의 철옹성 예리코(여리고)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예수야(여호수아) 및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으로 한 순간 푸수수 내려앉은 것 같이 말이죠. 아무리 강퍅한 죄인도 하나님 말씀 앞에 마음문을 열 때, 거기 고꾸라져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섞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웅변하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땅의 뽕나무를 바다로 옮길 수 있다고!
   믿음의 말씀 선포로, 무화과나무도 뿌리째 말라 버릴 수 있다고!
   산이 냉큼 들려져 바다에 풍덩 빠질 수도 있다고!

오늘날 세상이 '변화'를 말하고 '새 것'을 말하지만, 참된 변화와 새로워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함을 역사가 입증해 줍니다! 역사상에 오고 간 수십 억 아니 수 백억의 심령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지고 녹아져 변화됐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젖먹이와 어린이의 입으로도 '호산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권능을 발할 수 있게 하십니다. 또 길 가의 돌들이라도 입을 열어 소리질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로고스 곧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크리스토님은 오늘도 하늘의 뭇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이 질서있게 운행하도록 붙드시고 지탱하시는 힘입니다(히브리서 1'3).

슬기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깨닫고 영안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권능과 권세 그리고 권력을 지닙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통해 권능을 발생하려면, 우리가 믿음으로,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 속에 늘 머물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고, 그 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머물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고도 말씀하십니다(요한복음서 15'7).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도 믿음의 근거가 되는 말씀을 속에 품고 있어야 유리합니다.

또한 그 말씀을 고백/선언/선포할 때, 응답과 성취가 빠릅니다.
우리 혀와 입술엔 놀라운 권능이 있는데..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을 때에야 오죽하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발산되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양날검보다 더 날카로워, 찌르고, 쪼개어 나누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좌우를 모두 치고 갈아서 예리하게 만든 양날검(two-edged sword)은 고대 로마군을 그 어느 군대보다 강력하게 해 준 당대 첨단 무기의 하나입니다. 적군을 찌르기와 베기, 빼내기가 모두 쉽고 빠른, 가공할 병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상/지상의 그 어떤 양날검보다 더 날카롭고 현대의 수술도보다 더 예리하고 정교합니다! 왜냐고요? 영과 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나누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처럼 죄인의 심령을 찔러 양심의 아픔을 주고,  눈물로 통회 자복 하게 합니다. 구석구석에 깊이 숨은 모든 죄를 송두리째 드러내며, 때로는 주마등처럼 전시하여 보여 주기도 합니다.

   지도자 예슈아(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칸(아간)의 도둑질을 드러냈고..  
   대언자 나탄(나단)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몰래 밭쉐바(밧세바)와 통간을 한 다빋(다윗) 왕의 심령을 찔렀습니다.
   사도 페트로(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나니아와 사피라(삽비라)의 거짓말을 드러내어 결국 둘을 죽게 함으로써, 뭇 심령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큰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역사해, 그 말씀을 순수히 받아들인 그곳 교인들의 깊고 은밀한 죄, 아무도 몰랐던 놀라운 죄상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스스로 낱낱이 폭로하며 회개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흙도가니 속에서 일곱 번 정련한 은보다 더 순결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편 12'6).


또..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파고 들면, 영과 혼의 구분이 확연해집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 영언(방언)을 하게 되지요.
이 영언은 영과 혼을 구분해 주는 구실을 합니다. 영언을 할 때 내 혼은 내 혀로 영언을 하는 사실만 느낄 뿐, 그 뜻을 모릅니다. 내 영이 내 속 비밀을 하나님께 아뢰기 때문이죠. 영언통역을 하기 전에는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영과 혼, 몸의 서로 다른 차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 파울의 말(코A 14'14) 뜻이 바로 그렇습니다.

영언자는 또 때에 따라 영적인 노래(구역: '신령한 노래') 곧 영언노래를 합니다. 가사를 잘 아는 노래도 하지만 말입니다.

사도 파울의 말처럼(코A 14'15)..

내 맘으로는, 찬송가와 가사가 있는 노래를..
내 영으로는, 뜻 모를 영언 노래를 합니다.

 
예호바 라파이신 그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우리의 오장육부, 사지백체 속으로 메스처럼, 레이저 광선처럼 예리하게 파고 들어, 구석구석 치유합니다. 어떤 수술도보다 어떤 외과의보다 더 정교하게 말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믿음만 있다면 말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감찰하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기념칭호들 중 하나가 '예호바 샤팥'(판단하시는 하나님, 판사/심판관이신 하나님)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영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슬기를 제공합니다(). 역대 판관(判官!=사사)들, 지혜왕 슐로모(솔로몬)을 비롯한 왕들에게 판단의 슬기를 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빋 왕은 늘 하나님의 슬기와 바른 판단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여쭈어 그 말씀을 받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책의 형태로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고 간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밝은 판단의 슬기가 우리 곁에 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판단의 슬기의 보고를 그냥 곁에만 둘 뿐 아니라 우리 속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은 우리를 세상의 뛰어난 현인과 학자들보다 더 슬기롭게 해 줍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 슬기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 수 밖에 없지요.

티엘티가 늘 분별과 검증을 강조하지만, 이 분별/검증의 바탕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전, 먼저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는 모두 176절이나 되는, 성경에서 가장 긴 장, 가장 긴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와 권능, 그 아름다움과 슬기를 끝도 없이 예찬하고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여 우리 맘 속에 영감의 '샛별'이 뜨게 해야 합니다(펱B 1'19). 성령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오직 성경 말씀의 원저자이신 그 분만이 주실 수 있는 영감이지요.
샛별은 새벽별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또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새벽부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함이 바람직하다는 암시를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입니다(시 1'2). "이것이 과연 그런가?"하고 열심히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들이 "신사적"이고 폭이 넓은 사람입니다(행전 17'11).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력을 지녀 살아 있고,
만물을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있으며,
그 어떤 양날검보다 날카로워 찔러 쪼개고,
모든 것을 감찰하고 판단하고 모든 비밀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이 말씀을 사랑하고
나날이 더욱 가까이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