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리뷰/뉴스단평

16년전 그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점 약탈자들

1992년 4월 29일.
다들 아다시피 LA 대폭동의 날입니다.
그곳 사웉센투럴 지역에서 일어난 폭동 끝에 53명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었을 뿐더러 엄청난 약탈/습격/폭행/방화가 자행됐습니다.

피해가 가장 큰 한인계로서는 참 잊으려야 잊기 어려운 악몽 같은 날이지요. 주류점/식당 등을 운영하는 수많은 한인들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은 날입니다. 한인 상점 2200여 군데(4억불)가 피해를 입었지요. 몸과 맘으로 입은 상처가 너무도 커 이루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가던 에드워드 송 리 군은 한국어 방송을 듣고 급히 피해 가게를 도우러 가던 중 총격을 받아 숨졌지요. 같이 있던 친구들은 중상을 입고.

그런데도 정작 미국의 정치 피라믿은 당시도 미온적이었지만 지금도 이날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합니다. 또 당시를 노골적으로 주로 '한/흑 갈등'의 결과로 몰아 가려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날의 교훈을 결코 지금처럼 소홀히 여길 게 아니라 길이 되새겨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백인들이 한인들처럼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다면 정부가 그렇게 적당히 대응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인계 일각에서는 그냥 한인 1세들만의 잘못으로 닦아 세우려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 상황에 대한 책임은 여러 커뮤니티에 있지요. 공동책임을 져야 했다는 말입니다. 특히 단순 한흑갈등으로 일방적으로 몰아 가려던 미 주류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달리 찾아야 할 의미성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사건은 마귀가 세상의 군주라는 사실을 뼈 아프게 되새겨 줬다는 것입니다.

최근 가까운 지역의 어느 포럼에서도 보지만 교계에서조차도 성경적이고도 영적인 배경을 도대체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냥 겉으로 나타난 현실만 갖고 논할 뿐입니다.
이 사건은 출발부터가 악령들이 인간을 철저히 조롱하고 괴롭히기로 작심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임을 역력히 보여 줍니다. 인간들끼리 부딪치고 서로 찢어 발기고 죽이고 하는 사이에 악령들은 박수를 치고 깔깔대고 즐길 거리를 저질러 놨다는 사실입니다. 분노스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대폭동 사건은 나열하기조차 어려운 매우 복잡한 수많은 배후들이 총 집대성하여 야기된 사건입니다. 즉 마귀는 인간의 여러가지 갈등을 종합하여 한인상가가 밀집해 있는 이곳으로 몰아댄 것입니다.

다들 아다시피 이 사건의 주된 일차 요인은 보석 중이던 아프리칸계 악성 전과범인 랃니 킹의 환각제(PCP) 흡입 후 고속 주행/도주 사건입니다. 명백히 킹 개인의 죄악, 잘못에서 시작됩니다. 이 한 명의 범죄자가 경찰에게 당한 집단구타로 인해 본격적인 대폭동이 시발됩니다.

그 다음은 백인 셋과 히스패닉계 한 명 등 네 명의 경찰관이 극도의 인간/인종 혐오 속에서 킹을 구타합니다. 이것은 증오심에서 유발된 과다/과도/과대 반응입니다. 그 누구보다 냉철해야 할 민중의 지팡이, 사회의 길잡이들이 누구보다 맹렬하게 끓는 감정 속에서 민중의 몽둥이 구실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집단구타 광경을 폭로한 비디오의 '마력'이었습니다. 요 얼마 전 한국에서 발생한 어느 비열한 성중독 남성의 소녀 성폭행 미수/구타 사건에 대한 국민 감정이 주로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의 힘이었듯 사람들은 누구나 눈으로 보는 언론에 매우 민감합니다. 물론 범인 체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긴 했지만 그 영상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분노와 증오심, 보복심 등을 자아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 모든 광경을 다 보고 살아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볼 게 있고 안 볼 게 있습니다. 비밀을 다 본다고 해서 그게 곧 정의가 아닙니다. 가령 남녀 사이에 오간 성적 비밀을 사회에 다 까발기진 않습니다. 그것이 청소년 등에게 가져 올 부작용 탓입니다.
사람은 핏빛을 보면 제 정신을 잃는다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더욱이 크리스천들은 필리포 4:8,9에 나타난 영적 진/선/미의 원리 아래 살아야 합니다. 볼 게 있고 볼 때와 볼 곳이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이 옳고 좋은 것 만은 아니란 것이지요. 이 비디오는 백인 경찰관의 증오심에 의한 마구잡이 단속과 폭행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아프리칸 계의 엄청난 폭발적인 증오와 보복 반향, 더 나아가 보상심리를 불러 일으킵니다. 

게다가 로스앤젤레스 법원에서 검찰(아프리칸계)의 폭행경찰 기소가 있은 뒤 백인밀집 지역의 새 법원으로 옮겨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배심을 통해 집단구타 경찰이 모두 무죄 평결을 받자, 여러 날 동안 흑인 민중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 참고로 당시 LA 시장 탐 브래들리는 아프리칸계 출신.] 
경찰과 군이 제대로 동원된 때는 이미 한인 상가가 충분히 피해를 본 뒤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지널드 데니 씨 폭행 후 춤추는 윌리엄즈. 현재의 데니 씨.

문제의 구타 비디오와 배심관련 보도를 보고 가장 빨리 부정적으로 반응한 사람들은 소위 'LA Four'(나중 6명이어서 'LA Four+')로 불린 네 명의 아프리칸 계 갱들이었습니다. 그중 으뜸으로 꼽히는 대미언 '풑볼' 윌리엄즈(19)는 자동차절도등 범죄기록이 있는 청년으로 학교에서는 미식축구선수였으나 16세 때 기독교 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당한 뒤 갱단에 가입합니다. 윌리엄즈는 10년형을 받았다가 2000년 다른 살인혐의로 종신형을 받습니다. 싸탄의 '승리'라고나 할까요. 

윌리엄즈는 폭동 당시 다른 3명(추후 5명)과 함께 지나가던 무고한 백인 트렄 운전기사 레지널드 데니 씨를 습격, 무차별 폭행해 남은 여생을 망쳐 놓습니다. 당시 이들은 5파운드짜리 의료장비로 데니의 머리를 치고 장도리로 3번 내려친 뒤 콘크리트 조각으로 다시 머리를 찍었습니다. 한 명은 데니의 지갑을 훔쳤습니다. 데니가 의식을 잃자 윌리엄즈는 그 위에서 춤을 췄습니다. 참으로 잔혹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는 현장을 상공 촬영하는 헬리콥터에다 갱 사인을 던질 뿐더러 쓰러진 데니를 가리키며 미친 듯 웃었습니다. 한 명은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명이 데니에게 맥주병을 던졌습니다. 이들은 또 주변을 지나는 5명의 아시안/라틴계 운전자들과 소방관 둘을 비슷하게 공격/구타했습니다. 싸탄은 이런 개인을 더 큰 사건에다 유용하게 써 먹습니다.     

그 후 쓰러진 데니를 도우러 온 사람들은 한 쌍의 연인들을 비롯한 용감한 4명의 아프리칸계 시민들이었습니다. 좋은 흑인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도와 데니를 병원에 옮겨 진찰 받은 결과 데니의 뇌는 91군데가 깨져 있었고 한 부분은 안으로 밀려들어갔습니다. 왼쪽 안구는 거의 빠져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4명은 배심(백인계 5명, 아프리칸계 3명, 히스패닉 3명, 아시안 1명) 결과 많은 혐의가 풀리고 그다지 큰 형을 받지 않았지요. 더욱이 피해자 데니 씨가 윌리엄즈의 어머니 조지나에게 접근, 포옹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LA 폭행의 다수 피해자들인 한인들 중 일부는 타인종계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 폭동의 전말을 살펴 보면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생리 자체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았고 실제로 사건 요인을 제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간접 요인은 한인 마켙 주인 D모 씨 부인이 자신을 폭행한 아프리칸계 소녀(나타샤 할린스)에게 총격을 가해 결국 숨지게 한 사건입니다. D씨는 가게에서 오렌지 주스를 훔쳐 달아나던 소녀를 제지하다 인종모욕 욕설과 함께 구타를 당한 끝에 정당 방위를 했다는 평결을 받긴 했으나 후엔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일부 군 출신 한인 상인들은 M-16을 개조한 총을 들고 가게를 지키느라 했는데 이것이 특히 아프리칸계 갱들을 자극해 흥분한 채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양쪽 간에 맹 총격전이 벌어져 무고한 구경꾼들이 사상을 당하기도 하며 연방군이 동원되기까지 경찰이 타운을 봉쇄해 타운 안에서 피해가 더 막심했습니다.

피살자 외에도 2000여명이 부상했고 최다 10억불의 재산 손해를 봤고 3600건의 방화, 1100개 건물 파괴가 저질러졌습니다. 무려 1만명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당시 약탈은 주로 고가품을 상대로 아프리칸계 청년들에 의해 자행됐습니다. 특히 이런 때를 노리고 틈 타 최대한 악용하는 무리들이 많았지요. 최다 6일간 범죄가 지속됐습니다.  
 
이 지역의 저소득층 아프리칸계와 한인사회 사이에 평소 감정의 앙금이 있어 왔습니다. 아프리칸계는 저소득층 아프리칸 계를 상대로 그들의 소비욕/소비열을 원용해 물건을 팔아 안정된 고급 동네에 살면서 수준 높은 생활을 즐기는 한인들을 비롯한 아시안계에 대해 분명히 어떤 보상 욕구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채워지지 못한 보상심리가 이때를 계기로 한꺼번에 어글리한 머리를 쳐든 것입니다. 그러나 한/흑 갈등이 폭동의 주요인은 아닙니다.  

과거 오랜 노예 생활에 젖어 있던 아프리칸계 일각의 피 속에는 뿌리 깊은 집단피해 의식이 잠재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으로 당당히 떨쳐 버린 신자들도 있지만 이 아프리칸계의 집단피해 의식을 민중 봉기에 역이용하는 '지도자'들도 없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최근 아프리칸 유일주의적 인종차별 발언을 한 모 교회 원로목사 건이 그렇습니다.
  
"내게 꿈이 있다"고 외쳤던 '위대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 공산당과 깊이 연계돼 있었는가 하면, 아내 스캍 코레타와 합작 논문표절 의혹이 입증됐고, 암살되기 전날 밤을 모텔에서 두 창녀와 함께 보냈던 사실 등 50년 동안 접근 차단된 킹 관련 FBI 수사기록 내용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킹의 독립 정신은 좋았지만 그의 삶은 모순으로 얼룩져 있었지요.

아프리칸계는 뿌리 깊은 노예 의식, 집단 피해의식, 특유의 보상심리를 버려야 합니다. 아프리칸계는 바른 아프리칸 계 정신을 본 받아야 합니다. 거룩한 아프리칸계 형제/자매들은 자기네 피부색을 잊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늘엔 피부색이나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젠 더 슬픈 기색으로 노예들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매리언 앤더슨, 마할리아 쟄슨 등의 '깊은 강물' 따위 수심에 차고 애조 띤 수많은 '흑인영가'들도 부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하늘나라 나그네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온갖 것을 일일이 다 찾아 먹고 이 세상에서 보상받을 것을 모조리 받겠다는 생각은 기독교적이 아닙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크리스토의 구속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와 저주에서 영영 해방됐다는 자유의식을 지니고 살아야 당연합니다! 그런 의식이 있다면 왜 넉넉한 마음을 갖고 서로 섬기지 못합니까. 우리가 아직 그런 마음을 갖지 못한 것은 집단피해의식 탓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인들은 한인들대로 "내 돈 갖고 내가 땀 흘려 건실하게 벌어 먹고 사는데 웬 질시고 티꺼움이냐?"는 정도의 논리로 충분히 타당한(?) 대꾸를 할 수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주의/이기주의/정당주의이지 동물 아닌 인류의 기본바탕이어야 할 사랑의 발로는 아니지요.

한인 크리스천들은 흑인과 백인들을 사랑해야 하고 흑인과 백인들은 한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누구만 받고 누구는 하기만 하는 미덕은 아닙니다. 

하늘엔 피부 빛도 문화 색도 인종차별도 조건적 사랑도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조건 없는 무인종적 사랑을 복음전파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인들에게 부탁하는데..제발 장사를 해도 술 장사 같은 건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