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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데이빋 오워

데이빋 오워가 성경적으로는 어떤가? (1)




열 처녀 비유와 휴거론



데이빋(데이비드/데이빗) 오워가 실제로 성경적으로는 어떠냐고 궁금해 하는 물음들이 있어서, 우선 그가 최근 웹에다 올린 것으로(?) 보이는 다음 메시지 하나를 갖고 논해 봅니다.


열 처녀 비유에 관한 '예언'입니다(참고 마태복음서 25'1-13). 예언이라기보다는 무슨 강해나 해설 같습니다. 


그 서두에서 오워는, 지금이 '제 11 시각' 곧, "가장 치명적인/중대 시각"이라고 주장합니다. 휴거 전까지 남은 시각들 중에서 바로 지금이 가장 '중대한' 이유는 뭘까요? 역사의 현 시점의 주인공(?)인 자신-오워 때문일까요?
그리고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죠?! 어느 새 지금 거의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돼 있는 상태인가요? 아직은 멀었지요!

그는 이 '해설'에서, 휴거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예샤야후(이사야)서 26'19의 아침 이슬은 이제 최종적으로 잠자는 사람들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휴거에 걸맞은 영광스런 몸을 제공하실 수 "있게" 된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휴거/Rapture에 관해서는 코린토A서=고전 15'51,52; 테살로니카A=살전 4'13-18 참고)
마치 이제서야 가능하게끔 상황에 묶이는 듯한 이 미묘한 표현은 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과도 같지요. 
오워는 여기서 마치 '열 한 째 시각'인 지금이 성령님의 휴거 준비 과정인 양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휴거 관련 성구들을 검토해 보면, 그가 성경의 휴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밖에 없네요.
 
그는 이것-휴거 '준비' 과정-은 성령님이 이 마지막 날(들)에 지상에서 하셔야 할 "엄청난 중추적 역할"이라면서, 그런 역할은 "성령님께 완전히 영향 받는 교회 가운데서 명확히 표명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오워 자신이 교회 안에서의 그런 '명확한 표명'을 할 사람으로 자임하고 있음과 함께, 어렴풋이 시한부 종말론을 합리화시킴을 느끼죠. 아울러 자신은 "성령님의 완전한 영향" 아래 있다는 주장이 되고.

그러나 휴거는 그 누구도 나팔소리를 듣기까지 모르기가 더 쉬우며, 교회가 들려 올라간다고 해서 오워 같은 사람을 통해 세계 교회 차원으로 알려 가면서 '휴거 홍보활동'이라도 전개되는 게 아니라, 비가시적 교회 속의 신자인 개인 차원으로 이뤄지지요.      


오워는 또 하늘 생명수(아침이슬)가 "땅의 강물과 시냇물들"(헝~??)에 흘러 들어서 교회 속의 어디든 흘러가 영적 생명과 건강을 준다고..뉴에이지 냄새가 나는 비성경적 주장을 하며, 죽은 사람들에게 마치 휴거 전 땅에서의 건강 회복 기간이라도 있는 것처럼 시사합니다. 오워 자신이 그런 건강 회복의 도우미 역할이라도 하는 듯 느껴지지요. 흠~.

그는, 예레미야 10'13을 들면서 오래 뜸 들여 온 '늦은비'가 교회를 지금 당장 "방문"할 참인데, 이것이 곧 (이사야서의) '아침 이슬'이라고 함으로써 휴거 직전 '준비' 과정으로서의 '부흥'인 '늦은비'(latter rain)를 논합니다. 현대 신사도개혁운동(NAR)의 뿌리인 프랭클린 홀, 윌리엄 브래넘의'늦은비운동'을 연상시키지요.
그러면서 아침 이슬로 나타난 이 '강물'은 교회를 순결하고 겸손하게 하여 어린양의 혼인예식으로 이끌어 갈 것이랍니다.

그러나 성경의 휴거 관련 성구들은 그런 일정기간의 '준비' 과정 또는 말세지말의 대대적 '부흥'인 늦은비의 방문을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그런 대부흥 따위가 예언돼 있지를 않지요.
더욱이 우리는, 오워가 이 아침이슬과 강물 흐름의 대변인이나 침례/세례 요한으로서, 지금 자신의 예언과 기적으로 세계 교회를 순결하고 겸손하게 하여 어린양 혼례식에 입장시켜 줄 그런 안내자로는 상상되지 않네요.
오워의 이런 '오버'된 상상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구약 성경을 입맛대로, 제멋대로 푸는 전형적인 신사도성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오워는, 하나님은 오직 마음이 겸손하고 영 속에서 죄를 깊이 통회하는 사람들만 어린양의 혼인만찬에 참여할 특권을 받을 사람으로 평가하신다며, 이 아침이슬이 "교회를 위협하는 죄의 완전한 제거 결과"로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이사야서 말씀이 정녕 휴거 관련 성구일진대, 잠자는 구약/신약 성도들의 시신을 깨우고 일으키는 과정에 관한 것일 뿐입니다. 휴거되고 하늘에 들이기로 이미 작정된 사람들만 깨어 일어난다는 말이지요. 
여기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참 대언자의 말로 믿어 주고 뉘우치는 사람들만 휴거 자격이 있는 듯 묘사하려는 오워의 속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또, 교만의 탑들과 크리스토 위에 스스로 높아진 오만을 휴거 날에 이 이슬이 무너뜨릴 것이라고 근거 없는 말을 합니다만, 그 날엔 휴거되기로 미리 작정돼 나팔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휴거될 뿐입니다! 오워의 예언과 경고를 듣고 회개하여 겸손해진 사람들이 휴거되는 게 아니라.  

오워는 지금 교회가 바벨탑과 쌍벽을 이루는 몇 가지 탑을 스스로 쌓았다며, 이 '아침이슬시대'에 모든 산이 낮아지고 언덕과 계곡(이사야 40'4을 원용한 것으로, 오워 자신이 침례/세례 요한 같은 역할이라는 듯?)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는 생명수에 젖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휴거란, 이런 굉장한 예비 과정을 전제하기보다는, 어느 날 홀연히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공중에서 조용히 일어날 뿐이죠. 일어난 후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야 비로소 알진 몰라도.

그는 또 하나님의 하늘 성전에서 땅으로 흘러드는 이 이슬이 "사르디스 사람들(사데교회를 뜻하는 듯. 요한계시록 3'1-6 참조)을 상징할 수 있기 위해" 성결을 선택한 소수에게 슬기를 보내 준다는 자기식 해석을 첨가하고 있지요. 사르디스 교회의 극소수가 아닌 사르디스 교회 자체를 거룩한 교회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웬지 수상쩍지요.

오워는 이처럼 이사야서의 이 아침이슬을 갖고 온통 '나름' 식 확대 해석을 두루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이 아침이슬이 '슬기'(지혜)가 되어, 한밤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의 귀를 열어 인자의 음성을 듣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등불을 밝힌 기름이 곧 아침 이슬이라고 풀이합니다. 참, 그 오묘한(?) 신비적/풍유적 해석은 너무나 눈부실 정도네요!     

그는, 이사야 26'20의 '문'과 노아 방주의 문, 다섯 처녀 뒤에 닫힌 문을 '휴거의 문'으로 보면서, 이 문이 지금 "열려 있을 동안"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휴거에 관한 긴 풀이를 하면서 (다섯 처녀가 갖춰야 할 조건들의 하나로서의) 거듭남과 등잔에 가득한 기름이 상징하는 성령충만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다만 슬기와 '전적인 순종', 회개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오워는 과부/고아/수감자/빈민과 사회의 천민들의 영적 웰빙에 교회가 관심을 둬야 한다며 "거기서 교회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행전과 서신서에 나타난 초기교회들을 보면, 일반 사회가 아니라 으레 우선적으로 교회 안의 과부/빈민/고아들의 영적/혼적/육적 웰빙을 돌봤습니다.
일반 사회는 그런 혜택을 받기 전, 복음부터 받아 들여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복음 없는 자선/구호 활동은 선교가 아니며, 하나님께는 무의미합니다. 마태복음서 25'41-46은 '테레사 수녀'가 한, 그런 복음 없는 자선활동을 뒷받침하는 성구가 아닙니다.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 속에 그녀의 '작은 예수'가 들어 있질 않습니다. 그런 사랑이 아가페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테레사는 죽음을 얼마 앞두고 "신의 현존"조차 의혹할 정도였습니다.

이어서 오워는, 슬기로운 교회는 양떼이지 '염소나라'가 아니라고 하여, 휴거에서 제외될 '염소나라들'과 '양나라들'을 나눕니다. 이것은 순전히 오워의 상상력이 자아낸 풀이로, 성경은 그런 해석을 지지해 주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양떼와 염소떼 비유는 크게 두 무리로 나뉜다는 말씀 뿐이지, 나라 단위가 아닙니다. 결국 '양나라'들은 오워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 나라들, '염소나라들'은 오워의 경고를 무시한 나라들이란 얘기가 아니고 뭐겠나요?

오워는, 현대교회는 대부분 완고하고 성결의 가르침에 저항하는 교회라며, 아직 의로 개혁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단언합니다. 대다수 교회가 오워의 의의 개혁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교회)의 옷이나, 세상으로부터의 성별이라는 가장 논쟁스러운 이슈에 관해 전적으로 완고하다. 오늘날의 교회는 도무지 우리 카운슬러이신 성령님의 지시를 기꺼이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시각에."

과연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참조: '왜 데이빋 오워를 신뢰하기 어렵나?').
여기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군요.

 


     1. 단순히 오워의 청중이 아닌 거듭난 사람들의 참 교회엔, 오워의 지시가 아닌 성령님의 지시-성경 말씀과 영감-에 기꺼이 귀 기울이는 성도가 많다.
오워의 지시는 성경이나 성령님의 지시도 아닐 뿐더러, 의혹성이 짙다.

    2. 성령님의 지시엔 분별/검증을 요구하시는 부분도 있다. 오워 자신은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면, 왜 신약시대의 대언은사자가 아닌 구약시대 대언가들의 예언이나 흉내내고 있는가? 대다수의 신사도들이나 KCF(캔저스시티그뤂) 대언자들처럼. 하고 있다면, 왜 정계와 결탁해 온 인상을 노골적으로 풍기는가? 교회개혁이 정치개혁인가?
오워가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않는 성령님의 분별/검증 지시를 현재 따르는 성도들도 많다.



오워는 또 오늘날의 교회는 "전반적으로 매우 교만하고 이기적이면서 겸손하지 않은 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머리이신, 그 분의 몸된 거룩한 교회와, 2. 그렇지 못한 타락한 교회. 수많은 거듭난 성도는 스뮈르나(서머나)/필라델피아(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이 칭찬하실 만큼 충분히 겸허하고도 이타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한데 싸잡이 비판함은 주님의 몸과 더 나아가 머리이신 주님을 비난하는 말이 될 법도 합니다.
그러니, 도대체 어떤 교회 말입니까? 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한데 뭉뚱그려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분별력 결핍을 뜻합니다. 사도들은 그처럼 교회를 한데 싸잡아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예언(?)인지 해설(?)인지의 끝 근처에서, 오워는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는 교훈을 줍니다. 옳은 말이지만, 드높아져 가는 최고의 대언자, 100%(??) '쪽집게' 대언가라는 자신의 명성과 상찬을 해 주는 세상의 소리에 맨날 귀 기울이고 있는(예!) 그의 주변 정황을 볼 때, 역시 그가 과감히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속 언론을 더 사랑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껴 호텔에다 가드를, 연단에다 무장경호원까지 두며, 정치인들을 유난히 가까이 하는 그가 과연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있는지요?


이 메시지 끝 부분에서, 오워는 (키레네님의 관련 글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두 금반지' 얘기를 다시 꺼내면서, 하늘에 현재 열려 있는 이 '휴거의 문'이 두 황금결혼반지를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엔 전혀 없는 황당설입니다!   

오워는 또 예수님이 휴거된 성도들과 함께 다시, 보다 안전한 새 지구 위의 예루샬렘에 평화 재림하실 때는 '거룩한 희생'이 회복될 것이라고 하여, 이미 예수 크리스토의 죽음으로 완성된 '그림자'에 불과한 동물 제사가 천년시대에 '제3성전'에서 재개될 것처럼 은근히 내비칩니다.  하지만 율법시대-은총시대의 순서를 역으로 풀이한,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오워는 교회든지 세속사회든지를 향해 계속 (구약 시대의 마지막 대언자) 침례(세례) 요한이 유대인 사회에다 외쳤듯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시대엔 누구에게나 먼저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외쳐야 합니다.  

오워가 대언자라면 신약적이 아닌 구약적인 대언자라고 필자가 거듭 정의하는 이유 하나가 그것입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오워는 엄격히 말해서 시한부 종말교 교주입니다. 자신을 위와 같은 굉장한 위치의 사람으로 믿고 부각시키는 데다 콧배기에 임박했다는 휴거 시각을 적극 자기 어젠다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 구체적인 날짜만 말하지 않고 있을 뿐 이장림과 대동소이합니다.

웹에서 구글링을 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한결 같이 오워가 참 대언자, 100% 예언이 성취되는 대언자라고 선전홍보를 해대는 사이트로 가득합니다! 그의 인기를 체감하게 되죠. 그러나 우리는 사람인지라, 결코 모든 예언이 '100%' 다 성취된 것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장담할 수가 없지요. 그렇게 장담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을 신격화하는 행위임을 왜 그들은 모를까요?

그리고.. 오워는 결코 성경 기자가 아닙니다! 설령, 그의 예언들이 100%가 아니라 1,000% 정확하다고 해도, 성경과 대등할 순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그를 그 이상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메시아'로 부르기도 하며, 역시 케냐인이었던 소위 '마이트레야'(=미륵보살)의 하나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이건 우상숭배 수준입니다. 모양새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신격화/우상화 현상에 대해 정작 오워 자신은 전혀 말리고 나서지도 겸손해 하지도 않습니다.
겸허하기 짝이 없던 구약 대언자나 초기교회 사도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죠.


그리고 오워에겐, 영적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는 언론의 물결을 각별히 의식하며, 세상의 평가를 늘 점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최대한 참 예언자로 평가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참 대언자라면, 하나님의 평가로 만족할 텐데도 말입니다. 이르미야후(예레미야)의 경우처럼.

더욱이 오워는 박해 받는 대언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칭찬을 받지, 박해 받는 흔적이 없습니다. 참 대언자이기에 앞서, 참 신자는 세상에서 박해 받도록 돼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는 되레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총리/대통령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과 상찬을 받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엄처럼.  

오워는 이미 총리와 케냐 대통령을 '회개'시켜 거듭나게 했다거나 침례를 주었다는 등 고위급 정치인들과의 결탁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노골적인 정치성 냄새가 나죠. 이스라엘/독일/미국 등 과학/의학계의 탑 분야를 거친 그는 케냐인으로서는 매우 높은 위치여서, 비밀집단과의 연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주권주의와 타협했거나 그랬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아느냐, 그렇게 해서 케냐가 모두 회개하고 개혁될지?" 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지요.
하나님은 참 사역자들을 세상 흐름에 민감하게, 그런 식으로 훈련시켜 세우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구별되도록 세상을 경계하도록 이끄십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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