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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데이빋 오워

데이빋 오워를 왜 신뢰하기 어렵나?



- 참 하나님의 사람..글쎄올시다

[ 이 글은 꽤 길다. 혹 글 중간에 독자의 기분이나 흥에 안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오워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길 바란다. 얻는 게 있을 것이다. ]


티엘티 독자 몇이서 데이빋 오워 (딴 표기 데이비드 오워, 데이빗 오워)를 신뢰해 주지 못해도/않아도, 그가 손해 볼 것은 거의 없을 터이다. 안 그래도 그를 믿어 주고 밀어 주는 따르미들이 너무 많아서 탈일 정도니까. 그가 가는 세계 곳곳마다 부지기수의 무리가 그를 추종한다. '참 하나님의 사람', '시대를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대언가'(선지자/예언자)라면서.
그런데..오워를 굳이 믿어 주려도 선뜻 해 줄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독자는 이 글을 통해 느끼게 될 것이다. 

필자는 명사 킬러는 아니고, 그럴 위인도 못 된다. 실은 그럴 의사도 없다. 그러나..왜 교계 명사들이 한결 같이 이런지 모르겠다. 명사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마 예수님 뿐일 것이다.


우리는 다들, 연전에 교계 화제의 포커스가 됐던 레이클랜드 집회 강사, 타드 벤틀리를 기억한다.
벤틀리는 비록 온몸에 타투는 했어도 진정한 부흥강사/치유자로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했고, 게다가 신사도개혁운동권(NAR)의 대부 격인 피터 왜그너를 비롯한 쟁쟁한 신사도운동가들, "나로라"는 명 '대언자'들도 들러리를 서 준 그의 위임식에서 축복과 '대언'을 화려하게 펼치며 고개를 흔들고 입방아를 찧어 댔다. 존중 받고 추앙 받는 교계 명사들의 한마당 잔치 같았다.

그러나 웬 걸..우리가 알다시피 그 결과는 불과 얼마 후, 그 전부터 이미 진행돼온 벤틀리의 숨은 스캔들로 인한 고백/이혼 소동으로 황당무비의 파행으로 치달았고, 졸지에 신사도운동권 전체가 통째로 초상 분위기가 돼 버렸다. 그 날 정신 없이 해 준 자신들의 '예언'이란 게 모두 말짱 가짜임이 들통 났기 때문이다(혹 아니란다면, 근거는 뭔가?).
그들은 급기야 벤틀리를 신사도 명사 리스트에서 축출하면서 입 모아 그의 부도덕을 탓하고 원망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회개의 영이나, 뉘우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 더욱 가짜임을 자증한 셈이랄까.

일이 이럴진대, 우리는 굉장한 치유와 '예언성취' 등 기적이 일어났다고 대뜸 "우와~, 참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흥분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침착하게 성경대로 분별과 검증을 해 보는 것이 (일부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성경적이다. 최소한 마태복음서 7'22,23, 24'24 정도랑은 충분히 맞춰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고 나타난 현상만 보고 무조건 그를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어 주는 게 더 성경적인가..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그 악몽 같은 벤틀리 추문의 후폭풍 탓이다. 당시 수많은 한인 신자들뿐 아니라 한국 교계 명사들을 비롯한 인사들이 벤틀리를 참 하나님의 사람, 그의 이상한 사역들을 "성령의 역사"로 굳게 믿고 추종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머쓱해져 대부분 당시에 대해 유구무언이 돼 버렸지만. 

크리스천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군중심리와 인력 다이내믹스에도 쉽게 홀리곤 한다. 미국과 한국에 이단/사이비들이 유난히 판 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젊은 백인인 데다 북반구 출신인 벤틀리와는 달리, 대조적으로 남반구 출신의 흑인 치유은사자/대언가가 급부상해 세계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벤틀리와는 이미지와 성격이 다르거니와, 스케일도 가히 국제적이고 크다. 신유의 직접적인 징후도 벤틀리처럼 흐리멍덩하지 않고 강렬하다. 대포알 같은 중량급 예언도 펑펑 쏟아낸다. 

데이빋 오워.
웹뉴스 동영상 등을 통한 겉 보기에, 그는 실로 센세이셔널하고 굉장해 보인다. 옛 아슈르-바벨론 사람처럼 꼬아 땋은 듯한 긴 수염의 특이한 모습 때문에 조명발도 강렬하다. 그러나, 잠깐! 바로 이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겉보기가 굉장하고 익사이팅하다고 해서 곧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도장 찍어줘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워는 대언가, 치유은사자로 자타가 시인하지만, 성경에 비춰 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구약적 대언자

우선 그는, (사도)행전에 나타났거나 코린토A서(고전) 등 사도 파울의 은사 관련 계시 가운데 제시된 신약적 개념의 대언사역자, 대언은사자는 결코 아니다! 그의 소위 대언들과 '환상/계시'들을 충분히 숙독하고 검토해 본 결과다.

데이빗 오워는 구약적 대언자에 훨씬 더 가깝다. 독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수긍할 것이며, 이 점을 시인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성경적인 대언자보다는 구약 성경 구절들을 대강 얼기설기 원용한 듯 들리는, 신사도운동권의 수많은 자칭 대언가들, 특히 밥 조운즈(존스), 폴 케인, 맄 조이너 등 캔저스시티 그룹(KCF) 계열과 더 유사하다.

오워는 벤틀리 대신 신사도운동권에서 점 찍어 놓은 또 한 명의 '다크호스'는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신사도운동권에서 벤틀리 대신 오워에게 화려한 '위임식'이란 걸 베풀고, 또 한 마당의 대언/축복 잔치를 벌일지 모른다. 기다려 보자.

오워는 잿빛 흉보 예언을 자주 한다. 하지만 흉보를 예언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참 대언자를 뜻하진 않는다. 길보든 흉보든 예언은 이뤄지고 봐야 하며, 설령 이뤄지더라도 성경적인 객관성/보편성이 충분히 따라 줘야 한다. 마귀의 친숙령들도 충분히, 예언 비슷한 것, 성취 비슷한 것과 더불어 진짜처럼 보이는 굉장한 거짓 기적들을 보여 준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딴 예를 들자. 미국의 교계 명사인 퍁 라버슨(기독교방송망/CBN 설립자)은 주로 저주와 방불한 끔찍한 흉보를 자주 남발하는 편이다. 자기 방송망을 통해 거의 매년 그래왔으니까. 그의 주변에선 그럴 듯한 이적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입증된 엉터리 대언자라는 사실은 웬만한 신자들은 다 안다. 그를 믿어 주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를 후원하는 '700클럽' 사람들 정도일 것이다. 기도할 때 수염소 뿔 같은 '싸탄 싸인'도 하던 그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사실 그는 기독교에 이득은커녕 해독을 더 끼쳐 왔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오워의 흉보도 다분히 구약적이고, 신약적이지 않다는 바로 이 점에서 꺼려진다.

전술했듯이, 이적이 나타나고 예언이 성취되는(?) 오워가 가는 곳마다 으레 구름 같은 대 군중이 따라 붙는다. 그는 이미 퍽 오래 전부터 이 군중 물결 위에 언론의 배를 탄 명사로 떠 있다. 일단 명사로 부상한 때부터의 행보가 주된 관건이다. 마땅히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리라"는 주님 말씀에 비춰 감식/분별해 봐야 한다. 

그의 군중은 어디서나, 신자들 속에 이미 살아계신 예수님을 더 기리기보다는 대언자 오워를 오매불망-열광적인 기대감을 갖고 사모하고 반겨 준다. 관련 뉴스가 뜬 사이트는 90% 이상 그에 대한 아무 검증/분별도 없이 '오, 주의 종님!' 식 찬사 일색으로 도배된다. 이쯤이면, 예수님도 질투하실(?) 만 하다.

연전에 오워의 주요 집회가 있던 나쿠루 쇼(!)그라운드에는 수 만명이 몰려 들었는데 장장 36시간이나 "위하여" 기도했단다. 바로 이 쇼그라운드에서 라일라 오딩가 케냐 총리가 그를 통해 "크리스토께 이끌렸다"고 한다. 그 진실 여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뉴스를 쉽게 믿어선 안 된다. 그렇게 언론 보도를 호락호락 쉽게 믿어주는 게 질 좋은 믿음이 아니다. 전례를 볼 때, 또 다른 정치 쇼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 빌리 그래엄이 2005년 뉴욬 집회 당시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부부를 초청해 정치 생쇼를 했듯. ]

이쯤이면 오워는 자신이 두드러진 명사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교계 명사는 몸 조심보다 맘 조심을 해야 한다. [ 그러나 그는 몸 조심을 더 앞세우고 있음을 독자는 곧 알게 될 것이다. ]

오워는 그동안 케냐 교계와 정계와의 결탁을 비난해 왔으나, 여기서 정계와 연계될 가능성이 자신에게 있다. 순수성 여부와 향배가 주목거리다.


    오워 수염의 '신비'

연전에, 한 젊은 여기자가 오워와의 대담차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오워의 경비원들은 그 누구 외부인들의 접근도 막으면서, 젊은 여성 대담자를 내세운 언론을 위해선 세 시간이나 허용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명사답게 차별적이란 인상이 든다.

그 여기자는 대담 도중 오워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길고 독특한 수염의 내력을 물었다. 그런데 단순히 수염을 어떻게, 왜 기르기 시작했느냐는 그녀의 순진한 질문에 오워는 이렇게 답한다.

    "내 딸이여. 그대는 매우 젊은데, 그대가 질문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소. 주님과는 농을 하는 게 아니라오."
 
헝? 이해가 가는가? 자신이 주님이라는 건지, 그 수염이 주님이란 건지 머리를 굴려 봐도 감이 잘 안 잡힌다. 그리고 정다운 우리 주님과 농을 좀 하면 어때서? 여기서 그의 권위 의식과 율법성, 더 나아가 위선이 느껴진다면 과언인가? 딴 데 숨은 터럭도 아니고 그냥 쳐다만 봐도 바로 눈에 띄는 수염에 관한 질문에 이런 식으로 답한다면,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나 나겠는가?

오워는 결국 수염의 '비밀'을 공개하는 대신, 구약 대언자 예샤야후(이사야)가 하나님의 명으로 벌거벗고 걸어다녔어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았다는 예(예샤야후서/사 20'2)를 들면서, 수염의 내력을 신비로 몰고 간다. 혹 수염도 환상계시에 의해 기르게 됐다는 얘기는 아닌지. 아니면 수염 뒤에 숨은 말 못할 기막힌 속사정을 가까스로 피한 순간이든가.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이니 공개 여부야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좀 '거시기'하다. 뭔가 좀 특출나게, 대언자답게,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보이려던 것은 아니었나. 그래서 밝히기 쑥스러운 것을 신비로 몰아가는 건 아닌지. 아무튼 그만의 비밀이겠다.

[ 내친 김에, 오워의 흡사 제복 같고 사제복 내지 공산당원(?) 같기도 한 특이한 복장도, 역시 이스라엘 출신인 베니 힌의 '차이나 칼러' 복장을 연상시킨다. 왜 일부 명사들은 특이한 복장을 갖고 주의를 끌려는 걸까. 물론 자기 자유지만. ]


    오워의 사생활

오워의 가정 배경을 보면, 아버지의 이름은 '헤저카이어'(히즈키야/히스기야)라는 기독교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의 집안은 말짱 비기독교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기독교적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그는 함묵한다. 이 점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를 독자는 곧 알게 된다.

오워의 생애를 거슬러 가 보면, 마케레레 대학교를 중퇴하고 나이로비 대학교로 옮긴 얼마 후인 1988년 크리스토님을 '모셔들였다'고 한다. 이 모셔들임 내지 영접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좀 숙고해 봐야 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말로 이 때 거듭나 새 피조물이 된(?) 이후에도, 장기간 중대한 죄 가운데 살던 도중에 '환상/계시'란 것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회개 (촉구) 사역'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회개해야 할 사람은 나라와 동족이 아니라 오워 자신이었을 성 싶다. 

혹시 독자는,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가 결혼도 않고 동거생활을 하다 자식까지 생긴 판국에 소명을 받고 떠나 독신으로 지내며 목회를 하는데, 놀라운 이적/권능까지 나타난다면, 그를 참 목자로 따르고 모시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독자는 이단 추종자가 될 소질이 다분하다. 그렇게라도 굳이 추종자가 되고 싶다면 모르되. 실제로 그런 추종자들이 "하고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똑똑치 않고 멍청해서가 아니다. 이단/사이비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지성인들, 명사들이 퍽 많다.

이 말은, 오워가 곧 이단임이 판명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학력과 연구 과정

오워는 '계시'란 말을 애써 피하는 인상이지만, 이른 바 '환상'이란 것을 받기 이미 퍽 오래 전에, 하나님께 응답 받은 적이 있다. 나라끼리 전쟁이 치열할 때, 우간다로 논문을 찾으러 넘어가야 해서 무사히 오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면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삶을 바치겠다고 했다는 것.
그의 말로는,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건만 자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냥 평소대로 살았단다.

학부에서 과학을 전공한 오워는 나이로비 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공학 석사과정을 밟는다. 성적이 좋았든지 독일과 이스라엘에서 각각 장학금 오퍼를 받아 이스라엘을 선택, 벤구리온대학교에서 생화학 유전공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졸업 후 그는 잠시 귀국했다가 유엔 환경프로그램 자원봉사자로 지망해 활동한 뒤, 1994년 이스라엘로 되돌아가 하이파 대학교에서 DNA 시퀀싱(공동배열)으로 박사과정을 밟은 데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교에서 생의약(transduction) 부문을 전공한다. 미래 의약품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연구였다.
이어서 그는 뉴저지 의학치과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암 센터에서 연구를 하다가 2003년 사역 소명인가를 받아 떠난다.

곧 알게 되지만, 이스라엘/미국에 있던 이 학구 기간은 거듭나고 헌신하겠다고 빈 기도에 응답도 받았다는 그로서 영적으로 상당히 문제시 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첫 환상 계시

오워는 이스라엘에 머물던 1996년, 그러니까 거듭난지 약 8년만에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약속대로의 이렇다 할 헌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였다.
당시 꿈 속에서 '주님'이 그를 세 번 불렀지만 이해를 못 했단다. 또 여러 가지 환상들을 봤지만 다 '개꿈'으로 매도했단다. 그러나 시카고로 간 뒤로는 거의 매일 환상을 보기 시작했고, '주님'이 자주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단다.
전형적인 신사도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는 계속 무시하고 도망쳐 다녔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날 수야 없죠."

그러던 차 한 번은 그가 큰 사고로 중상을 입어 광대뼈가 부서지고 안구출혈이 됐다. 의사들은 뇌가 손상됐다고 생각했으나 검진 결과 아무 이상도 없었다.

2001년엔 하나님이 환상 속에서 그를 공중에 들어 올려 "자, 가자"고 하셨단다. 역시 구약 대언자적 상황인데(에제키엘/겔 8'3 참조), 신약엔 이런 경우가 좀체 없다. 다만 초기교회 전도자 필맆이 전도여행 차 성령의 권능으로 공중이동을 한 듯한 흔적은 보인다(행전 8'39 원문 참조).

이때부터 오워는 교회들에 관한 환상과 함께 가서 설교와 예언을 하라는 지시를 받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특히 그에게 회개/성결 사역을 시작하도록 그를 이끄셨다고 한다. 특정 국가를 보여주시면서 그 국가를 위한 메시지를 보내시기 원하셨다고 한다. 신약에서는 우리가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성격의 예언이다.
과연 구약 때처럼 현대도 그럴까? 전형적인 신사도적/구약원용적 면모가 그에게서 발견된다. 신약 대언자들, 대언은사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케냐 나라가 죄 지었다고..회개를 요구하신단다. 과연 하나님은 구약 신정(神政/theocracy)시대도 아닌 현대에 국가 차원의 회개와 성결을 요구하실까?

그즈음 그는 장시간 연구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연구냐, 사역이냐를 놓고 약 7개월간 고심 끝에 결국 순종하여 연구소를 떠났단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특정 국가들에 대한 환상을 보이시고, 그를 보내시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라신단다. 그래서 케냐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러 오게 된 것이란다. 이 역시 구약적이다!

    "..하나님은 케냐 사람들에 대하여 해피하시지 못하시답니다. 케냐 사람들이 회개해야 한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남녀 종들이 제단을 더럽히고 있답니다. 그 분의 진노의 잔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어째 심상치가 않다. 과연 하나님은 신정시대였던 구약도 아닌 신약시대에 특정 나라에게 불만이셔서 '진노의 잔'이 흘러넘쳐 국민들에게 회개하길 요구하신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신약시대 답게 국적과 상관 없이 개개인의 영혼이 돌아오시길 원하시는가?

이것은 파울의 동족 사랑과는 또 다르다. 또 파울이 저 유명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본 것은 단지 그곳 영혼들이 전도를 받아야 할 긴박성 때문이었다(행전 16'9 참조). 고대의 대언자 요나가 니네베 시를 향했듯 그렇게 국가적 회개 통보 메시지를 던지러 간 게 아니었다(구약 요나서 참조). 
온 세상의 죄악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넘침은 사실이겠지만, 그보다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이 복음으로 한 영혼이라도 구해 내길 바라고 계신다는 게 더 현대에 맞는 대언적 상황이 아닐까? 

이렇게 볼 때, 오워의 사명과 대언활동은 다분히 구약적이다. 전혀 신약적이지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신사도운동, 캔저스시티 예언운동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오워는 2004년 10월 19일 케냐 교회의 상황을 환상으로 봤고 다시 와서 지도자들에게 회개를 독촉한 결과, '국가 기도의 날'이 치러졌다고 한다.
구약적/신정적 상황이다. 이런 데서 구약적 대언자-국가/정부와의 결탁 패러다임이 형성된다. 이 부분 역시 전형적 신사도개혁 상황이며, 더 나아가 '주권주의'(dominionism) 운동과의 연계성이 엿뵌다.  


   번영신앙과 헌금에 대한 무조건적 단죄

이어서 오워는 케냐 목회자/사제/감독들이 과거나 지금이나 번영 복음을 설교한다고 단죄하면서 그 증거로서 현행 헌금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기 집회에서는 헌금을 걷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필자는, 아프리칸 교계 토양에서의 '번영 복음'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대강 알고 있다. 물론 큰 부분이 잘못돼 있고 교계 지도자 다수가 타락했다. 특히 쇠퇴 일로인 서구 기독교와는 달리, 동남 아시아 등 다른 제3세계권처럼, 아프리카 대륙에서 전도가 잘 돼 가는 상황 속에서 그렇다. 중남미에서처럼 아프리카 교회에서도 혼합종교적 요소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게 있다. 성경에 분명히 밝혀진 번영의 원리에 관해 오워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이 번영을 말하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번영하길 원하시는가? 그렇다! 구약도 그렇고 신약도 그런가? 그렇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은 인류의 번성/번영을 명하신 데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움과 복으로 번영했듯 아브라함의 후손인 신약 성도도 영적 복뿐 아니라 혼적, 육적, 물적으로도 번영하길 하나님은 바라신다(갈라티아 3:7-14, 요한서신C=요삼 2절).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이 명백한 진리를 믿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다.
 
문제는 그 번영을 어떻게 가르치고 누리고 쓰느냐, 방법론에 있다. 여기에서 교회 타락이 싹트기 일쑤인 것이다. 번영의 원리를 내신 하나님께는 아무 책임이 없다.

오워는 계시로 받았다는 자신의 '메시지'에서 자신의 청렴결백성과 전적 신앙에 은근히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상대적으로 교회의 번영과 아울러 헌금제를 통쨰로 아무 분별 없이 단죄한다. 언뜻 순수하게 뵈지만, 아프리칸 기독대중의 여론을 염두에 둔, 상당히 계산된 전략 같이 여겨진다.
성경은 그러지 않는다. 이런 걸 과연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그는 독자적 모순을 보인다. 신사도 운동가들 일부는 번영복음을 지지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서도 은근히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번영복음을 단죄/거부하는 사람들도 일부 생겨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돌연 번영복음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다수인들이 싫어해설까. 그래서 대중-sensitive해 진 걸까? 물론 번영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낳아왔다. 그러나 방법론인 문제이지, 원리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오워는 교회 지도자들이 단지 헌금을 거두어 자신들이 부유해지려고 전도대회를 소집하여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일리는 있으되, 그렇다고 성경의 번영 메시지 자체나 모든 헌금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상황 설명이나 이유 해명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잘못된 것으로만 매도된다. 그는 과연 성경을 얼마나 깊이 알며, 신학은 아는 것인가?

    "그들은 물질 복음에 개입된 결과 성적인 죄악으로 이끌리며, 심지어 자기 소명을 버리고 정치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프리카 교계 지도자들이 주어진 번영을 잘못 활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오워 자신은 어떤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독자는 알게 된다.

지금 하나님이 오워를 통해 교회 지도자들의 죄악을 꾸짖고 계신다고 자타가 주장한다. 하나님은 과연 현대에 한 특정 대언자를 통해 주변 교회 지도자들을 전반적으로 꾸짖으시는가? 만약 오워 자신이 문제점이 많은 대언자로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 그는 더 큰 심판과 단죄를 면치 못한다!
또, 실제로 신약에서 이런 대언을 보지 못한다. 오직 계시록 초두에서 주님 자신이 그랬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 차원의 메시지와 주권운동적 요소가 발견되는 오워 자신에게서 향후 국가와의 연계 가능성을 본다. 혹 비밀집단과의 연계성은 아직 안 보일지 몰라도.

아프리칸 교계 지도자들 중엔 오워의 이런 경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맡은 교회도 없는 주제에.."라고 고사하기도 한다.

오워는 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물적으로 치우쳐 하나님이 그들에게 재정을 제공하실 수 있음을 잊었다고 말한다. 나름 일리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헌금제를 없애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회에서 헌금제를 없애 보라. 그 교회는 재정결핍으로 이내 망하게 돼 있다. 필자가 장담한다.
성도의 헌금은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의 십일조도 대동소이한 맥락이며, 광야시대 때 성소 건립과 운영, 사제들의 생활을 위해 이스라엘 대중의 헌물/헌금이 필요했다. 초기교회 사도들이 사역할 수 있었던 것도 성도의 헌금과 십일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오워는 자랑하듯 뻗댄다.

    "내가 한 본보기올시다. 우리는 집회 때 헌금을 걷지 않걸랑요. 하나님이 다 제공하시니까요."

흡사 이단 같은 말이다. 이단들은 그런 특유의 원폭성 언질을 통해 기성교회에 타격을 가하고 교인감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혹시 오워의 희망사항처럼 한국의 일부 교회에서라도 헌금제가 사라지면, "헌금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교회~!"라고 일부 교인들이 뛸 듯이 기뻐할진 몰라도, 그게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다 돌봐 주신다"면서 하던 헌금을 없애 보라. 그 교회는 망하게 돼 있다. 성경에 따르면, 헌금/연보/십일조는 교인들의 면제조항이 아닌 의무조항이다. 

지금 오워는 명사다운(?) 거대 착각을 하고 있음이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헌금을 걷지 않는 것이 모범인가? 사도 파울은 왜 교우들에게서 거액의 헌금이나 연보를 모금했는가? 초기 교회나 파울이 헌금 자체를 단죄한 예는 전혀 없다!
따라서 오워의 '계시'는 비성경적이다. 헌금을 비롯한 제도들이 각각 운영 상에 잘못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모든 헌금을 싸잡아 단죄한다는 것은 율법적인 태도다.

    "내가 헌금을 거둘라치면, 금방 백만장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제 소명의 이유는 아닙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선과 자기의가 될 순 없다. 오히려 이런 태도가 교인들로 하여금 기성교회를 합법적으로(?) 떠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오워는 자기 집회가 내정된 장소를 갈 때, 숙박/교통편 등 아무 재정적인 염려를 하지 않는다며 "하나님이 다 제공해 주신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그러나 어차피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서 제공하시지, 저 하늘에서 택시비나 호텔 숙박권을 떨어뜨려 주시는 건 아니기에 실제로는 그 개인에게 헌금/헌물을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셈이다. 비록 이쪽에서 걷는 건 아니더라도. 이 점에서 그의 위선을 느낀다.

오워는 이런 말들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강조하면서 좀 자체 신비화로 감싸려는 경향이 엿뵌다. 그것이 self-boasting의 정당한 합법적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 사역 도움을 제공하신다 .

그리고..그렇다고 모든 교회 헌금이 다 죄악인가? 파울은 성도의 거룩한 헌금이 곧 'soliciting'이라고 단죄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헌금 역시 하기에 따라, 쓰기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교회에서 헌금제를 추방해 버리면, 교회의 필수인 구호사역은 어떻게 하나? 하나님이 도우라고 명하신 가난한 교인/고아/과부들은 누가 돕고 먹여 살리나? 하나님이 기꺼이 이젠 더 성도의 헌금을 안 받으시겠다고 계시하셨다면, 십일조/헌물/헌금으로 인해 약속된 복도 모두 달아났는가? 하나님이 물질적인 복을 내리실 근거는 어디로 가는가?

오워는 이런 물음에 타당한 답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오워 류의 이런 일방적인 단죄 태도는 금물이며 엉터리 계시임이 명백하다.

오워의 이런 주장과 단언들은 지역교회의 회개보다는 다수의 역겨움과 거부감을 자아내고 있다. 무조건적 따르미들을 제외하곤.

지역교회에 대한 그의 단죄는 근거가 없다. 근거라면 그의 '예언'적 계시라는 것인데, 구약시대와는 달리 현대를 포함한 신약시대의 예언들은 그런 단죄를 위해 주어진 게 아니다. 오직 사도들의 교훈적 경고와 계시록에서 7교회를 향한 주님 자신의 충고가 있을 뿐.


    무장경호도 하나님의 제공?

오워는 호텔에도 경호원을 두곤 하지만, 나쿠루 집회에서는 최소 4명의 무장경호관들이 그를 호위했다.
그가 재정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나름 신앙이 있다면, 왜 무장인력을 필요로 하는가? 그처럼 담대한 신앙이라면, 경호원의 도움도 물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의문이다. 누가(오딩가?) 어떤 과정으로 (정부의) 무장 인력을 붙여 줬는지도 의문이고. 이것도 하나님이 제공해 주셨을까? 혹, 기관단총을 맨 수호천사들?

오워는 지난 날 몇 번 생명의 위협을 겪었다는 얘기로 무장경호의 핑계를 삼았다고 한다.

물론 파울이 로마로 호송되는 과정에서는 무장경비대가 필요하긴 했다. 그러나 오워의 처지와는 달랐다. 파울은 죄수인 데다 신변 및 인권 보호가 필요한 로마 시민이었고, 유대 종교 군중의 퍼텐셜한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따라서 기본적인 호위가 필요했다. 

오워는 이젠 유명 인사이고 명사이기에 빌리 그래엄처럼 정치계가 요원 서비스를 하는 건 아닐까. 
그는 빌리 그래엄이나 기타 교계 명사들을 닮은 '개인 패러처치'적 특성을 보인다. 역사 속의 명사들의 전철을 밟는 것인가?


     불특정 대상 예언

오워는 2007년 2월 22일에 주요 지진들을 경고하면서 불특정 대상에게 회개를 촉구했다고 한다.

[ 참고로, 동일수가 겹친 이 날짜는 오컬트가 중시하는 숫자그룹의 하나다. 2+7+2도 11이며, 22 역시 11의 배수다. 합하면 (메이슨 고위급 단수/段數이기도 한) 33이 되는 셈이다. 또 2 셋을 더하면 6이다. 6,9,11 등은 오컬트에서 선호하는 숫자들이며, 비밀집단 단원이 동료들에게 내적인 우정 신호를 똥기는 한 암시적 방편이다. 그렇다고 그가 비밀집단 단원인 결정적 증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
  
그러나 신약시대에 주님과 사도들은 세상 나라가 아닌, 주로 교회와 성도를 상대로 회개를 촉구하신다. 
이 점에서 오워는 대단히 구약적인 대언자이며, 따라서 신사도운동가들, 캔저스시티 류의 '대언자'들과 매우 유사하다.
반면 신약 사도들/대언은사자들의 대언 성격을 보면, 심판을 경고하는 사자 포효/호통 스타일이 아니라, 섬세하고 권위적(勸慰的)이고 교훈적이었다.

만약 오워가 이런 식으로 세상과 교회를 향해 호통식 대언을 할 것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동족인 케냐 출신 버랔 오바마의 죄악상을 경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있다. 비겁해선가? 아니면 오바마 보호 차원인가? 그렇지 않다면 오워 자신이 거짓 대언자여선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비전에 관한 관심도 사그러든다.

오워는 또, 케냐 사람들이 기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피바다를 이룰 것이라는 내용의 환상도 봤다고 한다. 역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경고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 다수가 사실 도처에 그런 혈투 가능성이 항상 도사려 온 나라였다. 그러니 적당히 걸쳐 놓기만 해도 대강 맞아 떨어질 수 있는 근(近)보편성 예언이다. 그런 두루뭉실한 예감 발언을 '쪽집게 예언'이라고 호평해 주는 것은 실로 생각머리 없는 아부요 자타기만이다. 

케냐 사태 이전, 지도자들에게 전국의 회개를 촉구했단다. 물론 그럴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구약적인 대언이다.


   홀아비 고수와..두 차례 동거 사실

오워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을 고수하기로 결심했고,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단 자신의 국제적 사역상 왜 가정을 가질 수 없고 독신이 아니면 안 되냐를 설명한다. 바야흐로 그는 파울 같은 독신 사역자만의 고독(?)과 성스럼(?) 같은 것을 한껏 드러내는 듯 하다. 그러나 유혹도 그만큼 클 것이다.
얼핏 카톨맄적/수사적 냄새가 나려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가정을 갖게 되면, 거기 묶여 있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이건 한 마디로 거짓말이다! 초기교회의 쉬몬 페트로는 가정을 갖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고, 사도/전도자의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러 대언자들은 가정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역 도중 결혼하기도 했다.

오워는 집회에 바쁘다 보니, 친 형제자매와도 아무런 연락을 계속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집회에 참석한다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는 "하나님은 그 분과 사역에 충실하게 하시려고 가족과 과거로부터 관계단절을 하신다."고 주장한다. 가족과의 관계단절? 과연 그럴까. 그는 2004년 11월을 끝으로 (한동안) 집에 가보지 못했단다.

아마도 독자는 여기까지만 읽으면, 하마트면 그가 거의 숫총각쯤 되는 줄로 알았을 게다. 그러다 오워는 뒤늦게 인터뷰 끝 부분에 다 가서 우리에게 여지없이 실망을 팍~ 안겨 준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한 여성과 동거생활 끝에 아들을 하나 얻고도 결혼하지도 못하고 (결혼 시도는 했지만), 둘을 미국으로 데려가려다 "집안의 반대"로 그도 못하여 (혹 그것이 출국 동기인지는 모르나)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서도 또 다른 여성과 동거하다가 자신이 '환상'을 보기 시작하자, 여인이 떠났다고 한다.
그는 또 이스라엘에 있을 당시 거의 유대교로 개종할 뻔 했단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식까지 낳은 동거녀가 유대계였고, 그 가족이 유대교 개종을 요구했을지 모른다.

적지아니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들이 그가 거듭난 이후라는 점. 그는 이 죄악사를 적당히 과거사로 밀어 붙여 두고 있다. 그의 현재 독신생활은 소명에서 비롯된 거룩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켕기는" 과거사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큰 의문을 갖게 된다.

분명히, 그가 여인과 동거하며 죄악 생활 가운데 있을 때,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독자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단적으로, 성령님은 결코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는다!
모든 대언자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을 받았다. 설령 굳이 동거 생활을 해온 특정인에게 성령의 영감이 내리실 까닭이 있더라도, 당연히 먼저 회개하고 동거생활을 청산하거나 결혼한 뒤에 하셔도 늦진 않다. 그러나 동거 생활 도중에 계시의 영감이 떨어졌다면, 그것은 성령님 곧 지극히 거룩한 영,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의 속성에 절대 어긋난다.  

오워는 이것을 동거녀가 떠났다는 사실로 마치 성령께서 환상으로 적당히 내쫓으신 양 얼버무리고 있다. 물론 우리는 실제 사실이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독자나 그의 청중이 오워의 첫 환상을 비롯한 환상들이 성령님의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첫 동거 중에 낳은 아들은 어찌 되는 건가? 과거사이면, 자식이 아닌 건가, 자식을 버린 건가? 자기가 떠남으로써 생과부/생고아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그 영혼은?
아니면 하나님이 다 챙겨 주실 테니 적당히 무시해 버리고 염려 놓으라고 하신 건가? 사역 때문에 합법적으로 커버되는 건가? "가족을 버리고 사역에만 충실하라"는 거룩한(?) 계시가 일찌감치 내려진 건가?


    맺음말

가는 곳마다 떼무리가 운집하는 오워의 현상학적인 집회 동영상을 보며,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다. 왜냐고? 그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면, 왜 사람 차별을 하시나 하는 생각에서다.
 
필자의 어릴/젊을 적 환경은 적어도 표면상 별 부족함이 없는 기독교 가정이었다. 그래서 왜 나 같은 버젓한(?) 크리스천 대신, 두 번씩이나 동거생활을 하던 사람을 그것도 동거 생활 도중에 '환상' 계시로 방문하시고(?), 굉장한 대언자/치유사역자 소명(?)을 주셔서 저처럼 굉장한 국제사역을 하게 특혜를 주시는가..라는 의문말이다.

정말 궁금하고, 착잡하다!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오워에 대한 의혹이 커진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과연 저렇게 부르시고 역사하실까 하고. 독자의 생각은 어떤가? 필자의 생각이 대단히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성령께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시고 다른 은사를 주시니 만약 정상적인 경우라면, 내가 성경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워의 경우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정녕 편파적/차별적으로 역사하신다면, 나의 여생을 다시 고려해 봐야겠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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