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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26일(?)이 지상 종말이라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자인 라디오 성경'해설가' 해럴드 캠핑(패밀리레이디오 대표)의 소위 '열린' 질의응답시간인 '오픈포럼'에 혹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이탈을 하는 현상에 대해 참 안타깝고 애석하고 때로는 분노스럽기까지 합니다.
캠핑은 지금 당장 청취자가 속해 있는 어떤 교회든 어떤 교파든 빠져 나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픈 포럼 청취자 다수는 그의 말을 듣고 홀라당 홀라당 잘도 넘어갑니다.
참.. 어리석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시한부적 종말을 그렇게 수많이 겪고도 계속 속아 넘어가다니..
캠핑의 종말 예언은 지난 1990년대에도 불발했는데..당시 자신의 연대계산(숫자게임!)에 뭔가 착오가 있었다고 온갖 구구한 해명과 핑계를 대더니 이번에도 1년 뒤 종말이 오지 않을 경우를 위해 이미 혼자 빠져 나갈 궁리를 다 해 뒀답니다.
한국인들 가운데도 지도급 인사인 L씨를 비롯한 상당수가 그의 따르미(추종자)들인데..한국인들은 그래도 좀 똑똑한 줄 알았는데도 이런 한심한 일이..참 저주스런 노릇입니다.
제발 속지 마세요. 1년 뒤를 부끄러움으로 장식하지 말아요!
# [6월 9일의 묵상]
아빠는 자녀의 든든한 버팀목과도 같다.
엄마는 자녀의 탄탄한 뒷받침이다.
자녀는 부모의 극진한 사랑에 의해 자기정체성의 바탕 폭이 넓혀 진다.
이른 나이에 아빠를 잃은 어린이에겐 빠른 시간 내로 그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대안을 능가하는 의존 대상은 바로 예수 크리스토, 하나님 아버지시다.
어린 나이의 자녀들에겐 아버지나 어머니가 잠들기 전,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고 기도를 해 주고 뽀뽀를 해 주고 잘 자라는 굳나잍 인사를 해 줄 부모가 필요하다. 엄마만 그렇게 해 준다면, 자연히 뭔가 한 쪽이 모자라게 된다.
편부모 자녀가 통계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유가 그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아빠가 없는 가정의 소년들이 12-22세 사이에 범법자가 될 확률이 아빠가 있는 소년의 300배나 된다. 따라서 소년 범법 가능성의 최다 원인은 아버지의 존재 여부이다.
듀크대학교 조사에 따르면, 6살이 되기 전 아빠를 잃은 소녀들은 17세가 되기 전 아빠가 있는 소녀보다 평균 5배나 빨리 성적인 능동성을 갖는다.
그러나 편부모 가정은 '불가능'을 논하거나 이런 통계치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바로 그래서 아빠 없는 소년/소녀들의 살 길은 하루빨리 참 아빠-아버지 즉 하나님을 모시게 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어린이/청소년 전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다수 교회들은 미래나 차세대를 중시하기보다는 우선 어른들의 '돈줄', '헌금줄'을 쥐기 위해 어른 교인들을 더 중시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성경은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들, 어린이들을 얕보거나 깔보는 어른들을 강력히 아니 무섭게 경고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어릴 때 교육의 열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발견하곤 한다.
예컨대 구약 왕들A/B(열왕기상하)서, 연대기A/B(역대기상하)를 보면, 이스라엘/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 어릴 때 가정 신앙교육을 잘 받은 왕세자가 즉위하면 그래도 비교적 선한 통치를 하곤 한다.
반면, 사제/판관(사사) 엘리나 위대한 지도자 슈무엘 등은 자녀교육에 실패해 마땅한 차세대 지도자로 길러내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사도 파울의 제자 티모테(딴 표기: 디모데/티모테우스)는 어머니 에우니케(영어: 유니스)와 외조모 로이스를 통해 어릴 적부터 성경을 알고 사랑했기에, 이윽고는 파울의 사랑 받는 제자 겸 믿음의 아들까지 됐다.
아마도 그리스계인 티모테의 아버지는 이방인으로서 신앙적으로 아들에게 준 영향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실로 티모테의 아버지 역할을 한 사람은 파울이었다. 뿐 아니라 파울은 여러 사람들의 믿음의 부친 역을 다했다고 믿어진다.
아버지가 없는 자녀는 누구라도 아버지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에게 빨리 연결될수록 유리함은 당연하다.
물론 어머니를 일찍 여읜 자녀도 어머니 역이 필요한데, 비둘기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은 그 역도 대신해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는 성별이 따로 없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로 아버지/남성으로서 표현된 이상 그렇게 존중해 드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어머니' 같은 표현은 안 된다.
전에도 메시지에선지 댓글에선지 기타 글에선지..이런 얘기를 한 기억이 있다. 나도 옛 멘토어에게 들은 얘기지만.
한 어린이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하나님을 원망하며 늘 어머니를 그렸다.
[ 사람이 죽었다고 하나님을 원망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분이 아니시다. 죽음의 '사슬'은 마귀가 쥐고 있다. 물론 마귀를 지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임시로 죽음관리 역할을 맡기셨다. ]
너무나 어머니가 그리운 나머지 십대 내내 그랬고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군대 가서도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랬다.
그러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어느 날 교회당 안에서 혼자 울며 애타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여전히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왜 그녀를 일찍 데려가신 겁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의 어미가 되어 주마."
이 말은 하나님이 남성도 됐다가 여성도 됐다가 하는 신화적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엘 샤따이님이시다. 풍요롭고 전능한 분이다.
'샤따이'라는 말의 어원엔 고대에 "풍만한 유방"이란 뜻도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실 뿐더러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분이시기도 하다는 점을 우린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이해하신다.
예수님은 양친의 사랑을 받다가 비교적 일찍이 (족보 상의) 아버지 요셒을 여읜 것 같다. 복음서를 보면, 요셒에 관한 언급이 언젠가부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릴 적부터 성부 하나님이 참 아버지이심을 아셨다. 그래서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이해하셨다.
실로 예수님은 완전한 아버지의 완전한 아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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