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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적싸움 도우미

믿음의 방패

현대에 재현해본, 고대 로마 보병 방패 스쿠툼의 예. 

 

믿음의 방패

하나님의 전신갑주 4

 

 

하나님의 전신갑주(완전무장)에 나열된 무기 가운데 네 번째로, 파울은 믿음의 방패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모두에 덧붙여 믿음의 방패(τὸν θυρεὸντῆς πίστεως 톤 튀레온 테스 피스테오스) 들면, 그것으로 악한 자의 불화살들을 모두 꺼트릴 수 있습니다."(엪 6'10,11. 사역)

여기 '이 모두에 덧붙여' 또는 '이 모든 것에 더하여'는 다른 해석들도 있다. 전체 무장이 아직 채 포함되지 않은 가운데(아직도 5. 구원의 투구, 6. 성령의 검, 7. 간구와 성령 안에서의 기도가 남아있음) 왜 '이 모든 것 위에'라는, 다소 결론적인 말이 나왔냐는 것. 
그래선지 상당수의 번역은 이렇게도 되어 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믿음의 방패를 취하시오. 악한 자의 불화살들을 죄다 꺼트릴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추후 설명하겠다.  
 
그러나 파울의 이 말, '이 모든 것에 더하여'는 한 순간 착각이나 실수로 한 말이거나 오착된 말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 튀레오스(라틴어 스쿠툼=scutum) 즉 큰 방패는 전신을 넉넉히 덮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방패의 보호대상은 주로 앞서 말한 몸의 부위들이다. 이미 해당 부위 자체의 방어무기들 위에다 곱으로 겹쳐, 전체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이다. 

1. 
튀레오스/스쿠툼 즉 큰 방패의 이런 중복적 내지 복합적 기능은 아주 명료하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고대 로마 군의 방패 사용 방식을 살펴 보면, 매우 흥미롭다. 로마 병사들은 방패를 개인 호신용은 물론 단체방어에도 다양하게 활용했다. 즉 앞 뒤 옆 동료 군인들끼리 서로 방패를 모두 연결하여, 예컨대 적의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이나 창, 돌 등을 막는 거북등(라틴어 '테스투도') 역할을 하곤 했다. 심지어 위로 적의 전차(병거) 바퀴가 굴러가도 아래서 막아내기도 했다. 물론 평소에 그런 위험하고 고된 훈련을 하기도 했다.   

로마 군인의 방패의 모양은 더군다나 파울의 이런 서술에 걸맞다. 그들의 이 큰 방패 튀레오스는 한 개의 대문을 연상시킬 정도로 네모나고 , 크고 넓적했다. 아니나다를까, 튀레오스는 문이라는 뜻의 튀라(θυρα)에서 비롯했다. 실제로 지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대 로마 방패의 고고학적 유물이 있다 > https://bit.ly/2Pc1aJr

로마군대는 전쟁 때 이 큰 방패를 병사끼리 연결하여 거대한 보루나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로 삼기도 했다. 그만큼 쓸모가 다양한 방어무기였다. 이 큰 방패는 주로 탄탄한 나무 판 위에 무두질한 동물 가죽을 여러 겹 발라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이 가죽판을 물로 적셔두면, 날아오는 적의 불화살촉의 불꽃을 꺼트릴 수 있었다. 파울이 한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물론 금속 방패도 있었다. 또 로마군대가 네모난 스쿠툼만 쓴 것은 아니다. 큰 방패를 쓸 수 없는 기마병 등 특수한 경우에 타원형이나 둥근 방패도 썼으나, 일반 보병들에겐 스쿠툼이 주로 쓰였다. 슐로모는 예루샬렘 성벽에다 금방패를 줄줄이 널어두곤 했다. 이 금방패는 적이 쳐들어올 때는 햇빛을 반사하여 교란시키는 작전에 쓰이기도 했단다. 금방패는 나중에 적에게 뺏겨 놋방패로 대체됐다.] 

우리의 믿음이 곧 방패! 
왜 믿음에 "젖어있는" 방패가 필요한가?

영적 싸움에서 방패는 우리의 믿음이다. 로마 군병들은 물리적인 방패를 썼지만, 우리의 방패는 믿음이다! 믿음은 우리 삶에 지대한 역할을 해 내며, 특히 영적 싸움에 결코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귀는 늘 유혹과 두려움 같은 불화살을 쏘아댄다. 화살은 그것 자체로서도 치명적일 수 있지만, 불꽃을 당기면 몸에 큰 상처와 함께 화상을 입힐 수도 있고, 옷이나 몸, 주변이 타 들어가기까지 한다. 불화살 하나가 잘못 날아들 경우, 자칫 산불을 일으켜 온 삼림을 살라버리고 건물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길을 일으키는 예는 복음뿐만 아니라, 유혹과 정욕, 단죄(정죄)의식, 겁과 위협과 두려움 같은 파괴적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불화살을 마귀는 우리에게 수시로, 무시로, 불시에 늘 쏘아댄다고 생각해 보라. 마치 성 위에서 성 아래로 새카맣게 마구 쏘아대는 적군의 화살처럼 말이다. 얼마나 위험하고 취약한(vulnerable) 상황인가? 우리의 영토, 나의 영역에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그 불화살은 큰 파괴와 심지어 패배와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 

주님은 사도 파울의 이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다. 마귀의 이 불화살을 막는 길은 오직 우리의 믿음뿐임을! 
믿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믿음의 유무(有無) 여부가 우리 삶과 죽음을 가를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왜 그럴까? 왜 믿음이 그렇게도 중요한지, 살펴 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히 11'6). 우리에게 제일 불안한 요소는 우리가 자칫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이보다 더 안타까울 노릇은 없다. 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드리려는데, 왠지 나를 기뻐하시지 않고 달가워하시지 않는다면, 그 날 하루가 즐겁거나 달갑지 못할 수 있다.
왠지 내가 주님께 기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하루 종일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이것은 반드시, 급히 해소돼야 하고 해결해야 할 요소다. 그 요소란, 믿.음. 없.음.--바로 그것이다. 
급속히 믿음을 되찾아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이 그것이다. 그것이 지금 나의 영적인 방패다! 믿음을 되찾아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믿음은 어떤 것인가? 히 11'6에 따르면,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이 바로 지금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며, 둘째로, 그분을 찾는 이들에게 미스타포도테스(보상자)이심을 믿는 것이다. 기억하라: 이 두 가지가 바로 영전에도 적용됨을~.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심을 믿어야 원수 마귀의 악한 검과 불화살을 막을 힘도 생긴다. 또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그 믿음의 대가로서 보상과 승리를 안겨주심을 믿어야 한다. 이 진리를 믿지 않는 이상, 우리는 껍데기 군인일 뿐이요, 그야말로 마귀의 불화살을 맞아 그냥 맥없이 전사 위기에 처해질 뿐이다.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의인이 살 길은 오직 믿음뿐이며 그의 주님은 강한 산성이시라는 진리를 믿었다. 그는 한 때 유약해져 벽에다 잉크병을 내던지기까지 분노하며, 마귀의 위협에 항거했다. 그러나 그가 홀로 방에 앉아 거대한 원수들 생각에 한없이 졸아들고 나약해져 있을 때, 그의 아내 폰 보라가 홀연히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그의 방에 나타났다. 어디 장례식에 가려느냐고 묻자, 아내는 "아뇨. 하지만 당신이 마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행동하시니, 나도 당신과 함께 슬퍼하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을 뿐더러, 그 분을 찾는 이들에게 보상자되심을 함께 믿어야 한다. 즉 우리를 마귀와 그 졸개들로부터 지켜주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만 믿으면서, 그것이 대단한 믿음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상은 믿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선 안된다! 우리는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믿어보지도 않고 포기하겠는가? 아니 믿어보지 말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불가능이란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그런 분을 신으로 믿는 우리에게도 불가능이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귀와 그 군대는 우리 앞에 패배해야 맞는 말이다. 
승리는 내 것일세!

2. 
이제 크게 두 번째로, 이 믿음의 방패는 모든 상황에서 늘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련다. 해당 성구가 그런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상기시킨다. 이것도 "틀렸다. 그게 아니다"라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럼 왜 그런가? 왜 모든 상황에서 이 방패를 지녀야 하는가? 그야 당연하게도, 원수의 화살과 창과 칼은 때를 가리지 않고 불시에 습격해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원수는 가끔 작전상 미리 예고하면서 겁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예고 없이 화살을 날리거나 창을 던진다. 

그래서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늘, 언제나, 항상, 무시로, 믿음의 방패를 지녀야 한다. 수시로 내 방패를 점검해야 한다. 늘 대비해야 한다. 마귀의 불화살이 날아올 때마다 그때 그때, 바로 바로 믿음으로 물리쳐야 한다. 믿음으로 자타에 대한 정죄와 유혹과 위협과 겁과 두려움의 불을 제때 막아 꺼트려야 한다. 
우리 방패를 늘 진리 말씀의 '물'로써 적셔두어야 옳다. 그래야만 마귀의 불화살이 날아드자마자, 그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

3.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나 알렉산데르 당시 마케도니아의 팔랑스(phalanx: 밀집방진=密集防陣), 또는 로마군의 레기온(legion: 방패막이 밀집보병대)처럼 우리도 크리스토(=그리스도)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같은 신자로서 함께 밀집(密集) 차원으로 뭉쳐 함께 원수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는 진리다. 

 

고대 그리스/마케도니아가 사용했고, 로마도 배워 적용한 팔랑스(phalanx=밀집방진)

우리도 함께 크리스토님의 몸된 교회로서 밀집방어진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 이것은 표면적인 크리스천들의 정치적인 연합전선이나 시위 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흔히 영적 싸움이기보다 혼적/심적 차원의 정치전이기가 더 쉽다. 믿음 없이 임하는 교인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니 믿음이 개재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서로의 방패를 한데 얽고 엮은(locked) 상태의 로마 보병 밀집방진 


우리의 방패들을 서로 락킹(locking)하는 영적인 밀집 방진 또는 연합전선은 오직 진리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로 뭉침을 가리킨다. 그래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처럼 "뜻을 정하여", 함께 금식하며 함께 기도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정한 뜻을 서로 지켜야 옳다. 

또 강력한 힘을 지닌 우리 입술에 진리를 담아, 함께 원수의 세력을 구축할 믿음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함께 마귀를 꾸짖을 때 더 강력한 힘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것이야 말로 마치 한데 끼어맞춘 레고조각들처럼 우리 각자의 믿음의 방패를 잠금(lock)하여 모은, 하나의 거대한 방패진으로서 적군을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영적 싸움에 깨인 교회들은 그렇게들 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교회들은 배워서 실천해야 옳다. 배워야 산다. 그래야만 이 위험한 지구촌 영계에서 천국민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믿음의 방패! 참 치명적으로 중요한 무기다. 
오늘도 원수 마귀가 불시에 갑자기 날리는 불화살에 대비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거뜬히 막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