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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등풀의 생각

믿음이란 무엇인가 (by 등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흔하게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 단어가 아마도 믿음이란 단어일 것이다. 죄와 멸망으로부터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얻는 길 뿐이며,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주어지기에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마도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천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하면 단편적으로만 믿음이란 사랑이다, 믿음이란 순종이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하고 말하기는 하지만 성경에서 증거하는 바와 같은 종합적이고 진리를 담고 있는 명제의 형태로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된다. 만일 믿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못하다면 구원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고후 13:5 말씀처럼 성도가 늘 믿음에 서 있는지 스스로 입증하라고 명령하시는데, 믿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성도는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성경말씀에 기록된 대로 고찰해 보고 믿음에 대해 성경적이며 종합적으로 정의해 보고자 한다.

 

1.    믿음의 본질

 

우선 먼저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보자. 성경적인 믿음의 가장 기본적인 성질은 무엇일까? 무엇이 본질적으로 믿음을 믿음되게 하며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인가?

 

1)     인격적 관계

믿음의 첫째 가는 본질은, 믿음이란 인격적 관계라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어떤 개념이나 비인격적인 대상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1:12, 3:16; 2:16; 3:12; 3:9; 12:2; 2:1; 2:13, 14:12). 그러나 또한 요한복음 14:1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이 말씀 뿐만 아니라 다른 말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정확한 형상이시며,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셨기에( 17; 3:22; 딤전 1:14; 딤후 1:13, 3:15)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믿음은 바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고전 2: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관계에 들어가 있음인 것이다( 5:24; 벧전 1:21; 3:12; 10:23).

 

또한 이것으로 우리는 믿음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진리가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하다. 삼위일체를 믿는 믿음이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온전해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믿음은 당연하게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연결된다. 이로써 온전한 믿음은 삼위일체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2)     하나님의 선물

또 하나 믿음의 본질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5:8; 요일 4:19; 2:8; 벧후 1:1).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람은 본성상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고 의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51편에서 자신이 죄 중에 태어났기에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엡 2:1~3 말씀에 사람은 본질 상 진노의 자식일 수 밖에 없으며 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본질 상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불가능하도록 타락해 버렸던 것이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을 사랑해 주셔야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보여 주셨으며, 예수님의 부활 및 승천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14:26, 15:26).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고 은혜로 다가오셔서 사람이 믿도록 해주셔야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2:8 말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믿음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물론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구절에서 구원만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믿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이 구절에서 분명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되었는데, 만일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애써서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라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수고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 구절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에, 결론적으로는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패키지로 사람에게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에게는 한 믿음만이 있는 것이며 이는 모든 성도에게 공통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4:5, 1:12, 1:4). 이 믿음의 주이며 창시자(author)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이 모든 성도에게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믿음은 아직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2.    믿음의 속성

 

하나님의 선물로서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은 믿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선한 것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만 드러나는 특성들이며, 세상의 다른 모든 믿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러한 속성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1)     지식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10:17).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을 받을 수가 없는데 이는 믿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기 때문이며, 그 기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는 로마서 10:14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증거되는데,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하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사도 요한 역시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기록하여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5:24)”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믿음은 듣고 앎으로써, 곧 지식으로써 시작되지만 또한 믿음이 없으면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으며(고전 2:13),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는 말씀(벧후 1:5)이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알 수 있다는 말씀( 11:3)은 분명히 믿음으로 참된 지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지식과 매우 특이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알아야 믿을 수 있지만 또한 믿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식이 바로 영적 지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반지성주의와 같이 지식을 무시하고, 믿음은 마치 지식과는 무관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올바로 알지 못한 까닭이다. 참된 영적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한 믿음의 분량 만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이 있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으므로 믿음은 지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2)     생명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주는데( 7:38, 11:25; 고후 5:17;  2:20; 2:5) 이는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이며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고 본질 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께서 살아나심과 같이 우리도 살아났으니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 생명으로 인하여 다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녔으니 ( 1:12)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할렐루야~~)

 

믿음을 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새 생명을 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사람은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기 보다는 자기가 만들어 내거나 자기 안에서 계발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분명히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거한다( 17:5~10).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께서 믿는 자의 믿음을 통로로 삼아 그에게 새 생명을 부어주시며 그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3)     사랑

믿음은 또한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서 이웃과 그 사랑을 나누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로 시작되는 믿음은 그 안에 이미 사랑과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 5:8),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믿음은 우리를 바로 이 예수님과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도 기록하기를, 믿는 자에게서는 거짓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며(딤전 1:5),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형제들에게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기도하였다( 6:23).

 

또한 고전 13:2 말씀,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에서 알 수 있는 듯이 사랑이 없는 믿음은 결코 올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다. 이 구절을 마치 사랑이 없는 믿음도 가능하다고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그런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4)     순종

우리가 흔히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포함한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음은 반드시 순종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12:2)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2:8). 따라서 우리 주님과 연합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해야만 한다.

 

또한 성경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써 믿음은 곧 순종임을 기술하고 있다( 14:21, 15:10; 요일 5:3; 요이 1:6). 이것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믿음에 관한 표현을 신약성경에서 동일하게 이어받은 것이다( 20:6; 5:10, 7:9, 11:1, 13, 22, 19:9; 22:5 …).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드러나며 또한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5)     확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성령님의 인치심에 힘입어 확신에 이르게 된다( 1:13~14). 성령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내주하시어( 14:17; 고전 2:12; 고후 1:21~22)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고전 2:13~14)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준다( 5:5; 5:22). 그래서 로마서 8:35~39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영과 더불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8:16) 분이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이다(요일 3:24, 4:13).

 

이 확신은 언제나 믿음의 현재성을 보장해 주며,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충만케 한다. 그러므로 이 확신은 믿음이 단지 지식이나 지식에 대한 동의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는 믿음의 확신을 겸손하게 확인하고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확신을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히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성도는 성령님을 통하여 반드시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반드시 자기 스스로 살펴 보아 믿음을 입증하여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3.    믿음의 내용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 신뢰 관계를 갖는 것이기에 그 관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두 방향으로의 믿음의 드러남이 있다.

 

우선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믿음의 드러남이 있으니 곧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 말미암아 가지는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에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살펴본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믿음의 드러남이 있으니, 우리가 행해야 할 믿음의 행위들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순종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믿음을 특징짓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1)    하나님의 약속

15:6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로마서에서 인용하여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해 주고 있는데( 4:21),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9:9)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해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믿음과 약속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믿음은 약속과 함께 시작되고, 그 약속에 근거를 두고, 그 약속에서 끝을 맺는다고 말할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구하는데, 그 생명은 명령이나 징벌에 대한 선언 등에서는 찾을 수 없고, 다만 긍휼하심에 대한 약속, 오직 값없이 주어진 약속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다고 하였다 (기독교강요 3-2-29).

 

또한 사도 바울의 성경 기록처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며 성취되는 것( 15:8; 고후 1:20)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곧 믿음의 내용이요 완성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면서 또한 믿음의 기초이며 내용이고 완성이니, 즉 믿음의 전부이다.

 

그래서 믿음과 약속에 대한 칼빈의 설명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며 성취된다는 것에 비추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전부 또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칼빈의 설명 중에서 약속이란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서 읽으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약속은 다음과 같다:

ㄱ)  영원한 생명 (요일 2:25; 딤후 1:1; 1:2; 1:12)

ㄴ)  부활 ( 11:25; 24:15; 6:5; 고전 15:21; 벧전 1:3)

ㄷ)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됨 (벧후 1:4)

ㄹ)  성령 ( 24:49; 2:33)

ㅁ)  하나님의 자녀가 됨 (고후 7:1)

ㅂ)  보존됨 ( 17:15; 8:39; 살전 5:23; 살후 3:23; 1:1; 요일 5:18)

ㅅ)  천국 기업 ( 3:29; 10:36; 2:5)

ㅇ)  안식 ( 4:1)

ㅈ)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면 주시리라 ( 7:7; 15:7; 1:5; 요일 5:14)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약속들을 믿고 소망을 가져서 어떠한 고난이나 핍박 그리고 유혹과 어려움이 와도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어주실 바로 그것들로 인해 믿음 안에서 견디어야 한다.

 

2)    믿음의 행위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11:6).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시지도 아니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드러내는 믿음은 곧 순종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란 의미이다( 5:10; 14:15, 21, 15:10; 요일 2:3, 5:3; 14:12).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말씀들을 묵상하면 우리 신약성도들이 쉽게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약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명령들을 소홀히 여기고 온 맘과 정성을 다해서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약 성경에도 다양한 명령들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대표되는 십계명 연장선 상의 명령들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에베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과연 이 명령을 십계명과 같은 정도의 무거움과 소중함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께는 오직 만 있다는 고후 1:19 말씀을 상기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오직 만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날마다 시마다 때마다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려고 하나님만 철저하게 붙들어야 한다. 이 명령에 순종하려고 온 맘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단 한 순간도 자신의 힘으로 능력으로 지혜로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십자가에 못박고 이미 못박혀 있으니 그런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서 예수님과 연합되어 마치 예수님께서 하시듯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처절하고도 철저한 좌절을 느낄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이 아직 내 마음 밖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내 마음이 찔림을 받지 않으나 진리의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게 되면 철저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소망을 가지고 승리케 하시는 주님이 계시며 또한 비록 사탄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성도들을 넘어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며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요일 5:4)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명령을 만나면 몇번씩이라도 읽으면서 마음판에 새기고, 그래도 부족하면 문설주에 써서 붙이고, 그래도 부족하면 손목에 띠를 둘러 감아서, 참으로 앉으나 서나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늘 하나님의 명령들을 깊이 묵상하며 믿음으로 그 명령들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알아야 한다( 8:3; 4:4).

 

4.   믿음의 종류

 

성경에는 지금까지 논의된 참된 믿음, 즉 하나님의 선물로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만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다양한 믿음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경이 믿음의 사람들과 그들에 대해서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실패한 자들이나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어떠한 믿음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러한 믿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죽은 믿음

이 믿음은 믿음의 행위가 없는 믿음으로 믿음의 드러남이 전혀 없으니 죽은 믿음이요 자신을 속이는 믿음이다( 1:22~23, 2:17).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는 뒤돌아서 잊어버리는 자의 믿음이니 아무런 열매도 없다.

 

2)    헛된 믿음

이 믿음은 자기 신념대로 믿는 믿음이니 진리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자기 생각을 진리라고 믿는 믿음이며( 2:23), 전부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믿음이다(고전 15:14).

 

3)    죽는 믿음

이 믿음은 처음에는 열심이 있고 믿음의 드러남도 있으며 성령님의 은사에도 참여한 것 같으나 핍박이나 세상 염려로 인해서 시들어버리는 믿음이다( 8:6~7; 6:4~6). 지금은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믿음의 여정 중에 파선해버리는 것이다(딤전 1:19).

 

4)    구원에 이르는 믿음

우리가 앞에서 논의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신 소중한 믿음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결코 후회하시지 않는 부르심이다( 11:29).

 

5)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는 복수로 열매들이 아니라 단수로 열매이기에 여기에 기록된 모든 선한 것들이 다 하나로 열매임을 의미한다 사랑, 희락(기쁨), 화평(평안), 오래 참음, 자비(친절함), 양선(선함), 충성(믿음)이다. 개역성경에 충성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 피스티스는 거의 다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그래서 몇몇 역본들은 이 단어를 믿음으로 번역했고 다른 역본들은 신실함으로 번역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6)    은사로서의 믿음

은사장인 고전 12장에는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동일한 분량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누어 주시는 은사(선물)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믿음도 은사로 열거되어 있다. 이 믿음은 모든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도에게만 특별하게 주시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아마도 악인이나 핍박자를 대하는 담대함 또는 순교하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주석들이 이 믿음을 기적행하는 믿음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10절에 기적을 의미하는 능력 행함이 열거되어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5.   믿음의 성장

 

이제 마지막으로 믿음의 성장에 대해서 고찰해 보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가? 사실 이 물음은 모든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물음일 것이다. 매일 매일 믿음이 성장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좌절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자기들의 믿음을 증대시켜 달라고 떼(?)를 쓴 적이 몇 번이나 될 정도로 그들 역시 우리와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17:5 말씀에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예수님, 우리 믿음을 높여주세요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영역본들에는 “Increase our faith!” 라고 되어 있으니 개역성경처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보다는 훨씬 더 센 뉘앙스를 준다.

 

제자들의 이 간절한 요청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한 말씀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성장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17:6~10).

 

첫째로는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은 인격적 관계라는 것이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해주시는 것은 곧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이므로 바로 그 교제를 통해서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고후 3:6; 2:19). 우리가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우리가 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교제를 나누시면서 그 교제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도록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교제의 상대자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록 믿음이 있는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가 예수님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마음 깊이 진정으로 영접하고 서로 진정한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계시록 3:20 말씀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성도라 하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눈 멀고 귀 막힌 자들, 헐벗고 가난한 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애타는 심정으로 주신 말씀이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었는지, 주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며 함께 상 앞에 앉아서 먹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둘째,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대로 우리가 믿음대로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는 그저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17:10). 우리는 쉽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해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마치 어떤 선한 능력을 내가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며, 특히 일이 잘 될 때에는 내가 예수님보다 먼저 앞서 나아가려 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한 것으로 능력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지 내가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할 일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엎드려야 한다. 면류관을 주님의 발 앞에 던지며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렸던 장로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한다(벧전 2:2; 딤후 3:16). 벧전 2:2 말씀을 보면, 개역성경에는 성도가 신령한 젖으로 성장한다고 번역되어 있으나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NASB“pure milk of the word”로 번역되어 있다.

 

넷째, 성도는 성령충만함으로써 성장한다. 5장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는 그 열매를 맺을수록 더욱 풍성하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됨을 가르쳐 준다. 또한 성령 안에 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걷고 행함으로써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신다( 3:16).

 

다섯째,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음으로써도 성장한다( 12:11).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는 것과 같다(고후 4:7). 그러므로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한 중보자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러나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징계하시어 하나님의 길에 서게 하시고 연단을 시키셔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도는 죄로 인해서 넘어졌을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 성장하는 역사가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아 권면하고 사랑하고 함께 동역함으로써 성장한다. 살후 1:3 말씀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랐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권면하고 돌아보아 서로 부족한 것들을 채우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면 마치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 4:9; 2:19).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시고(고전 1:9), 그럼으로써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4:13)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를 성장시키시는 것이다. 심지어 징계를 하시기까지 하여 성도를 성장시키신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니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릴지어다!

 

6.    결론

 

결론적으로 참된 믿음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믿음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신뢰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구원의 약속을 가져다 주고 지식과 사랑과 소망과 확신에 이르며 늘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통로이다. 그러나 믿음은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건강한 믿음이 아니며 심지어 참된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끝임없이 자신을 살펴 자신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입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이를 위해 간단하게나마 믿음의 본질과 속성들에 합당한지 살펴보고 또한 믿음이 성장하고 있는지 진단해 보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이라도 인내하고 견디며 저 천국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