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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살전 4:9-18]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김동열)


데살로니가전서4장9절-18절말씀


"종말론"이란 용어에서 풍기는 느낌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인생의 마지막, 죽음이란 용어가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기~1990년대초 한국에서 시한부종말론 사교집단 "다미선교회"
열풍으로 종말론에 대한 관심이 들끓을 때, 관련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듣고 있자니,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칠년 대환난, 문자 666, 아마겟돈, 동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엮어가는 이러한 용어들의 나열은 두려움과 걱정, 근심 그 자체였다.

겁을 많이 주면 줄수록 자신의 강의가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종말 관련 영화 대다수가 단지 흥행을 위해 최대한 실감나고 끔찍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말 세상의 종말은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주는가?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금의 신앙생활과는 따로, 특별히 다른 무엇을
해야한다는 뜻인가?

큰  영광 가운데 우리가 뵙기 원하는 교회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데 신부인 우리가 뭣 때문에 떨며 겁먹고
움츠러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럴 필요가 뭔가?

성경은 종말을 말할때 우리에게 겁주지 않는다.
성경은, 영화가 관객들을 있는대로 겁주어 흥행을 노리듯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최대한 겁주어 예수 믿게 하는 도구로서 종말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이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씀할 때는 오히려 소망이 넘친다!
듣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만든다!

오늘,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흡사 시한부종말론자들처럼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여 일상생활은 내버리고 교회생활을 풀타임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맞지 못하고 아쉽게도 먼저 간 동료 성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탄식이 있었다.

이때 바울은 종말론적 메시지를 통해 그들을 위로한다.
성도들이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예수 재림의 메시지를 활용한다.

현대의 종말론적 관심과 대조해 볼 때 가히 역설적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기도할 때마다, 그분이 늘 함께 해 주시기를 바라는 우리가
예수께서 주들의 주(Lord of lords)로 오신다는 데 어찌 두려워 하고
떨어야만 하는가!

주님의 재림은 우리의 소망이요 복된 소식이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고난와 역경 가운데 애쓰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재림의 주님은 위로와 한없는 은혜와 소망이 되신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4:18).

오늘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은 주 안에서 형제들을
더욱 사랑하고, 주께서 허락하신 날 동안 신실함으로 자기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내일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자세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가장 훌륭한 준비이다.

주님과 영원히 살 그 나라의 소망과 기쁨이 오늘 우리의 삶에 힘과 능력,
소망이 되게 하소서!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