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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J. I. 패커의 죽음·후평(1)

뉴스시평

패커의 죽음·후평(1


최근 영국 출신의 캐나다 복음주의 저술가이자 리전트 대학교 신학교수였던 J. I. 패커(Packer, 일명 제임스 패커)가 죽자, 국제 교계가 애도하면서 언론마다 그의 업적 기리기에 바쁘다. 요즘의 교계는 명사가 죽으면 앞다퉈 그를 성자, 위인 만들기에 급급하다. 특히 그런 인사들의 책을 펴 내어 몰수히 팔아먹던 기독교 출판사와 서점들이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고인은 천국 가기에 넉넉했을 만큼, 이른 바 '슈어 샽'(sure shot)이기라도 했을까? 과연 하나님도 고인을 그렇게 보시느냐..천국서도 그를 명사와 위대한 성인으로서 받아주느냐? 하면.. 하나님은 쉽사리 그렇게 하시지 않으며, 인간들의 견해와는 다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은 비진리를 결단코 수용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미 교계 언론 '브레이크포인트'의 칼럼니스트 스톤스트맅(Stonestreet)은 패커가 생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을 썼다('하나님' 아닌 '하느님'이라고 한 필자의 옮김의 이유는 고인이 성공회 사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려주되, 막상 어떻게 알려주냐가 문제다. 진보주의 신학자들도 하나님을 '알려 준다'고 내세우고, 어떤 자들은 성경의 하나님인지도 제대로 미처 알 수 없는 '신'을 알리기에 급급하다. 영어로는 신이나 하나님이나 똑같이 'God'이라 쓴다. 심지어 이슬람교도 영어로 그렇게 표기하곤 한다. 

스톤스트맅은 자신이 진지한 갓 신자가 되고 난 1990년대 어느 가을, 한 서점에서 패커의 '하나님 알기(Knowing God)'라는 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책의 겉 표지-재킽에는 추천하는 교계 명사들의 이름이 나열됐는데, 첰(=촬스) 콜슨, 조니 에맄슨 타다, 첰 스윈돌, 일리저벹 엘리엍, 빌리 그래엄 등이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이 책은 성경 빼고는 내가 읽어본 가장 중요한 책이다'라고 추천했다. 
그러나 한 마디로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성경을 뺀 나머지 책들 가운데 중요한 책들은 하고 많다. 쌔고 쌨다! 유독 패커의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할 이유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저 고백은 자신들의 고백이기보다 출판사가 책 팔아먹기 위해 내어 건 구호 같은 것일 테고, 저 명사들은 어느 책에든 그렇게 써 줄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면, 과언일까.

아무러나, 패커를 애호/선호해 주는 저런 명사들--콜슨, 타다, 스윈들, 엘리엍, 그래엄--은 다 제각기 심각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음을 독자는 알아야 좋다. 패커 자신 그들과 가까웠다는 얘기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비평해 왔지만 추후에 상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패커만을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패커의 일면 내지 진면목을 본다면, 그는 또 다른 교계 명사였던 (고)헨리 나웬(Henri Nouwen, 네덜란드식 발음: 안리 나웬)을 엄청 애호하여 나웬의 책을 열렬히 추천해 주곤 했다. 아마도 둘 다 사제 겸 저술가여서(나웬은 천주교 '예수회' 사제회원이었다) 서로 통했을까? 아니면 나웬 등이 그렇게도 몰입했던 관상영성(contemplative spirituality)을 애호한 탓일까? 그러나 나웬은 복음주의자들의 숨은 함정과 같은 인사였음을 복음주의자들은 알까 모를까. 

도대체 나웬이 어떤 이였는데, 패커는 그 점을 알고도/모르고 전자를 그토록 열찬(熱讚)했던가? 나웬을 알아봄으로써 패커 비평에 일조하고자 한다.  

패커가 격찬한 나웬은 예수회 사제였다

헨리 나웬은 우선 직전 귀띔한 대로, 예수회(Jesuits)의 사제 회원이었다. 본 블로그와 과거 '뉴스파워' 등 교계 언론에 실린 필자의 이런저런 글에서도 나웬을 비평한 바 있지만, 나웬 자신은 예상을 못했겠지만, 그의 책 대다수가 한글로 옮겨져 한국 교계에 몰수히 보급됐다. 필자와 여타 비평가들이 관상영성을 한 때 열나게 비판하기 전까지, 아니 지금도 여전히, 제단 앞의 '딴 불' 같은 관상기도(일명 향심기도/호흡기도) 등의 이상(異常) 영성은 왕성하게 보급돼 왔다. 
지금도 주요 교단들의 모모 신대원 등 다수의 신학교들이 신학도들에게 '열쒸미' 관상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교계를 거들려 치면, 영적 분별에 '밝다'(!)는 하나님의성회(AG) 신대원에서까지 가르치고 있을 정도이니, 말할 것도 없겠다. 분별사이트 '등댓길(LHT)'에 따르면, 미국 성경대학, 신대원 등 대다수의 기독교 학교들이 관상영성에 물들어 있다. 그런 대학에서 배워 한국에 가르쳐대는 뻔뻔한(?) 교수들이 있으니, 뻔한 결과일 것이다. 

여하튼, 패커가 애독하고 추천하고 간혹 열강 대상으로 포함시킨 나웬은 하버드에서 강의할 만큼 심리학 전문가였다. 그의 글들은 미묘한 심리적 전술로 독자들의 심성을 파고 든다. 관상영성가들중 심리학자들이 유독 많은 점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왜 하필 예수회 사제였던 나웬의 글들이 한국 교계를 물들였을까?

나웬은 예수회 전략에 충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회는 창설자인 이냐시오(익나티우스) 로욜라가 생존하던 예로부터 개혁 후의 신교에 파고들어 신교를 뒤집으려는 전략이 있어왔다. 마치 독일의 유대계 철학자 야콥 프랑크의 사바티안 주의 또는 프랑키즘과도 흡사한 전략이다. 기존 종교에 파고들어 뒤집어 놓는다는 전략 말이다.  
지금은 그 전략이 죽었을까? 글쎄다. 현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 1세가 천주교 사상 첫 예수회 출신 교황임을 안다면, 소름끼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배후엔 또 사실상 세계 그림자계의 총수라고 하는 소위 '흑교황'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예수회가 주도해온 관상영성은 최근까지 꾸준히 한국 개신교 영성을 보랏빛으로 물들여 온 상태라면, 아니라고 할 사람이 몇일지 궁금하다. 바로 그 점이 현재 한국교회가 더 부흥되고 발전되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거의 "내버려두고" 계신 원인의 하나라면, 독자는 억설이라며 필자를 거짓말쟁이로 몰겠는가?

본래 네덜란드 출신인 나웬은 신교계에 접근하기 위한 내적 전략 때문인지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화가로 네덜란드의 신교도/선교사(!)였던 빈센트 반 고흐를 꼽기도 했다. 지금도 나웬 홍보 사이트엔 반 고흐의 그림들이 널려 있다. 나웬이 왜 하필 신교도의 그림을 선호한다며 내세울까? 단순히 고흐의 그림이 좋아서라거나 동족이어서라기보다 더 깊은, 숨은 내적 동기 내지 암시가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고흐는 현대 최고로 선호되는 화가의 한 명이다. 

패커의 격찬 대상 나웬은 관상(영성)가였다

패커가 애독하고 적극 추천한 나웬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현대의 대표적인 관상영성가였다. 이것은 패커 자신이 관상영성에 심취했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나웬 자신, 미국 출신의 언론인으로서 트라피스트(Trappist) 수사로 변신한 (고)토머스 멀튼(T. Merton)의 정신적 후예였다. [ 세계 트라피스트 수사들의 본부인 트랖수도회는 시토수도회(Cistercians)의 변형으로서, 프랑스 오헌(Orne)의 솔리니-라-트랖 수도원에서 궁신(宮臣) 출신의 수사, 아흐망 장 르 부띠에 드 랑세가 창단했다. ] 멀튼은 평소 달라이 라마 등 티벹 불승과도 사귀었고, 중국 유교에도 깊은 흥미와 연구를 거쳤던 다원종교인이었고, 수사로선 발칙하게도 말년에 여성과의 비련(秘戀)에 빠지기도 했다.  


20세기 관상가, 또는 이와 대동소이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수련가들로는 그밖에도 역시 트랖 수사인 토머스 키팅(T. Keating) 신부, 프란치스코회 수사 리처드 로어(R. Rohr), 윌리엄 메닝어(Wm. Menninger) 신부, 버질 페닝턴(Basil Pennington) 신부 등이 있다. 관상기도나 향심기도는 그 뿌리를 4세기 이후의 안토니우스(Anthony) 등 소위 '광야교부들(desert fathers)', 카르멜(Carmelite) 성인들, 반종교개혁시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수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Juan de la Cruz), '무지의 구름' 같은 중세 저서들, 베네딕토 수사회의 '렉치오 디비나', 같은 관행 등에 두고 있다. 

패커가 애호한 나웬은 종교다원주의자/만인구원론자

헨리 나웬은 또 종교다원주의자(=다원종교론자)였다. 종교다원주의자는 거의 필수적으로 동시에 만인구원론자(일명 보편구원론자)라는 사실을 독자는 알 것이다. 또 종교혼합주의, 뉴에이지로 가게 마련이다. 단적으로, 나웬은 미국 곳곳에서 초청받은 영성집회에 일본 선불교 악기의 하나인 샤쿠하치 연주자를 데리고 다니며 '특송'을 시키기도 했다.
멀튼이나 나웬을 흠숭해온 퀘이커 지도자이자 관상영성단체 '레노바레(Renovare)' 창설자인 종교다원론자, 리처스 포스터(R. Foster) 역시 만인구원론자이다.  

나웬의 애제자 조너스

곁 가지를 치지만, 여기서 잠시 나웬의 애제자이자 절친이었던 롸벑 조너스(R. Jonas) 박사를 거론한다. 나웬처럼 종교다원주의의 대표적 산물이다. 그는 루터교 평신도로 카르멜수도회의 영성 전수자이다.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 교육학박사 소지자로, 심리치료사(pt)이기도 하다. 또 예수회(!) 계열 신학교인 웨스턴신학교에서 신학연구석사(MTS) 학위도 받았다. 독자는 이쯤 되면 그와 나웬과의 많은 공통점을 지녔음을 느낄 수 있겠다. 

조너스는 헨리 나웬 협회(HNS)의 이사를 지낼 만큼 나웬 사후도 챙기는 중요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조너스의 아내는 성공회 사제이다. 조너스는 나웬의 영향을 받은 나머지, 수도원 겸 선불교사원(!)이기도 한, 관상의 성소이자 기독교인-불교인들의 '대화의 장'인, 그야말로 종교다원적인 '빈 종'(EB)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빈 종' 설립식 때 축사를 한 사람이 바로 스승인 나웬이었다. 왜 하필 '빈 종'일까? 무상과 비움, 내려놓음을 강조하는 불교의 영향 때문이 아니겠는가.  
조너스는 불승들에게까지 기꺼이 영성훈련을 받기도 한 사람이다. 

조너스는 전술한 대로 '빈 종' 대표일 뿐더러, 현재는 각종 피정(避靜: 천주교식 수련회) 도우미 겸 저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환경청지기' 등으로 뛰고 있다. 그는 불교인들과의 대화를 위한 불교-크리스천 연구학회(SBSC)의 회원이자, 중세 신비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연구하는 에크하르트학회(ES) 회원이다.

조너스는 음악인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 선불교식 대금과도 같은 대나무 피리인 샤쿠하치의 대가, 수이젠의 제자이다. 조너스는 티베트 불교/정치 지도자 달라이 라마 초청 수련회에서 3회 연주한 바 있다. 인도의 싣다르타 가우타마 붇다 샤카무니(=석가모니)가 도를 닦았다는 보디 나무(보리수) 아래서 연주회를 가진 바도 있다.  
    
조너스가 현직 성공회 사제/지도자인 아내 마거릿 불맅 조너스 여신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걸 보면, 부부가 나란히 함께 다원종교 비지니스(?)를 잘 해 나가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한 말은 패커가 존중해오던 나웬이 그만큼 혼합종교인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나웬 만큼이나 패커 자신 또는 패커 독자들까지도 영적 분별이 부족하거나 결핍됐음을 시사한다. 특히 패커를 열찬하는 한국 교계 지도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나웬은 일종의 동성애자

나웬은 독신사제여선지, 평생 동성애 욕구를 못견디리만큼 속깊이 내재시킨 채, 육체적으로는 표출하지 않고 지냈단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가 좋아하는 남성에게 한밤중 장미 꽃다발을 선사하여 상대방을 당황시킬 정도였다. 그는 이런 자신의 내성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말년에 '봉직'했던 (장 바니에 신부의) 캐나다 천주교 국제 장애인 기관 '라르슈'에서 소년 '아담'을 유독 가까이 했던 점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바니에가 연전에 죽고 나자, 생시에 그에게 성추행/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무더기 '미투(#MeToo)' 운동의 대상으로 사후에 난고를 겪기도 한다. [ 바니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으면 평생 입을 다물고 있다가 사후에야 비로소 신고할까?! 아무튼 이들이 뒤늦게 받아내려는 보상금 액수도 '어마무시'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천주교 본부인 바티칸이 가장 많이 쓰는 돈이 이런 미투 피해자들에게 뒤늦게 갚는 배상금일 것이다. 세계 천주교인들의 헌금이 그리로 몰수히 들어가는 건 물론이겠다. ] 

아무튼 나웬이 유부남인 조너스와 어떤 깊은 사이였는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연설/교육 모임에 남성 샤쿠하치 연주자를 거느리고 다닌 점 등은 되도록 남자들을 가까이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패커는 과연 나웬의 이런 면모까지 알고서도 열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알았든 몰랐든, 교계명사주의에 따라 영적 분별이 모잘랐던 생시의 전력을 부인할 수 없겠다. 패커 자신, 위에 열거한 인사들과도 대동소이한 영성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패커 자신의 삶과 사상 비평을 다음 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