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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신사도운동

중세교회 닮은 신사도운동의 7대 영역 정복운동 (스데반)



중세교회 닮은 신사도운동의 7대 영역 정복운동 
 
- 초기교회들보다 중세 로마교회 더 닮아 ((스데반)


최근 한 티엘티 독자가, 세상에서 똑똑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주변 사람들이 “와, 저런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라니 나도 그가 믿는 예수님을 알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전도에 도움이 될 것 아니냐 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어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는 고린도전서 1장 27절 말씀처럼 정반대 경우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겪은 광야의 시험(누가복음 4:5-7)에서, 마귀는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은 자신에게 넘겨진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자, 곧 자신에게 절을 하는 자에게 주겠다면서 자신에게 절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한 것을 봅니다. 따라서 세상 만국의 권위와 영광은 마귀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넘겨받지 못한다는 결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신실한 믿음의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가게 된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더 큰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향력 발휘하기’=‘복음전도에 유익’이라는 매혹적인 등식을 가지고,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성도를 유혹하는 집단과 그들이 벌이는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양의 탈을 쓰고’ (기독교 내부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명분으로, 또한 그들의 진지함과 헌신적인 모범으로), 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로써 성도들의 옛 본성을 자극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미끼로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이르도록 성도들을 유인하여 (스스로 이러한 미끼를 던지고 있다고, 또는 미끼를 물고 있다고 자각하면서 하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미혹이 무서운 점인 듯합니다), 세상에 뛰어들도록 그들을 밀어 붙입니다. 결국, 만만치 않은 세상과 공중 권세 잡은 마귀는 두 마음을 품은 그들을 간단히 제압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러내어 구별하신 성도로서의 본분을 잊게 만듭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의 대표적인 운동으로 7대 영역 (Seven Spheres, 또는 7개의 산=Seven Mountains, 가족-종교-교육-문화-대중매체-경제-정부) 정복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운동은 주권운동 (Dominionism)이라는 신학적 사상이 극단적인 형태(아래 링크 참조)로 나타난 것이며, 바로 기독교인들이 7대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낼 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도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한때 7대 영역의 ‘회복’과 ‘부흥’을 바라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구하지 않았던 바도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께 이전의 잘못된 부분을 회개합니다.


참고: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주권운동-그-거대한-착각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주권운동Dominionism과-기독교-제국주의의-발흥-1-키레네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주권운동Dominionism과-기독교-제국주의의-발흥-2


이 운동은 비성경적 종말론 및 사회변혁운동으로 성도와 교회로 하여금 그릇된 승리주의를 가지게 하는 미혹입니다. 이 운동의 시작 역시 비성경적으로 YWAM (국제예수전도단)의 창설자인 로렌 커닝엄과 CCC 창설자인 빌 브라이트가 소위 ‘주님’으로부터 ‘동시에’ 받은 ‘사적 계시’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로는, ‘사적 계시’가 존재하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7개라는 인위적인 숫자도 그렇고, 그 7개 영역이라는 것이 세상의 모든 부분을 완전히 커버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비중도 많이 다르고, 굳이 대중매체와 문화가 다른 카테고리로 구분되어야 하는지도 애매한 등등, 그 자체가 허술해 보이는 설정입니다. 

저에게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7’의 사용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소위 ‘갖다 붙이기’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비성경적 측면과 허술한 설정에도, 위의 두 단체가 널리 알려진 파라처치(parachurch )들인 관계로, 이 운동은 주류 기독교 내에서도 별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고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또한 이 운동은 신사도운동의 핵심사상이기도 합니다. 신사도운동가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그들 자신이 주축이 되는 위대한 정복 (추수)군대가 일어나 대부흥과 대추수를 이루고 이 땅을 (물리적으로, 구체적으로는 7대 영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변혁(트랜스포메이션, transformation)시킨 후에 그리스도를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구호는 “킹덤나우 (Kingdom Now,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이 땅에)”이며, 이들은 스스로를 “킹덤빌더 (Kingdom Builder)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상당수의 국내 유명 목회자들이 이들의 ‘트랜스포메이션’ 운동(트랜스포메이션 2007)에 참여하여 신사도운동이 한국 교계 주류에 안착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은사주의권을 대표하는 조모 목사에게 복음주의권 중진의 동생이자 전직 장로교회 목사이며 현직 한국 신사도운동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홍모 목사가 그 동안 조모 목사를 비판했었던(장로교회 목사 시절에) 것을 눈물로 회개하는 감동적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후 홍모 목사는 세계 최대교회 집회의 강사로 여러 번 서게 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있지만요. 

http://www.duranno.com/moksin/detail.asp?CTS_ID=60124

http://www.davidcho.com/journal/jbody.asp?id=861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배도의-여정한-장로교-목사가-신사도운동에-합류하기까지


표현의 강약의 차이는 있어도 예수전도단, CCC와 신사도운동은 비슷한 비성경적 종말론 및 그에 따른 사회변혁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 땅(7대 영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만든다는 목표가 동일하며 그 방법은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도 그들 간에는 원활한 협력 관계와 사역이 존재합니다. 이는 신사도운동 단체 가운데 하나인 마이크 비클의 아이합(IHOP, 국제 기도의 집)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YWAM과 CCC 두 단체의 아래와 같은 성명서에 잘 나타납니다. 

   빌 브라잇, Campus Crusade for Christ(CCC): “지상 최대 명령(the Great Commission)은 끊임없이 불타는 기도와 금식으로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수백만의 영혼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기도와 금식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캔자스 시에서 마이크 비클이 하고 있는 기도 사역은 대추수를 완성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사역이다.”

   로렌 커닝엄, Youth With A Mission (예수전도단):  "대추수는 끊임없는 기도와 금식을 절대 요구한다. 캔자스 시에서 마이크 비클이 하고 있는 중보기도 사역은 지상 최대 명령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로렌 커닝엄의 다음 발언을 보시죠. 위에서 이야기한 바울 사도의 ‘세상의 미련한 것들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와 반대되지 않습니까?

   “기독교 교육은 이 사회에서 2등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등급이 되어야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베이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백 투 더 루트’(Back to the root)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로렌 커닝엄의 다음 발언을 보시죠. 이들의 목적(자발적이든, 또는 그들의 배후-꼭 프리메이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인 공중권세 잡은 자가 의도하는 것이든)이 세상에서 영향력 미치기 미혹을 통한 ‘성도의 실족’ 뿐만 아니라 ‘교회의 약화’라는, 결과적으로 공중권세 잡은 자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래와 같은 간교하게 매끈한 표현 가운데 드러납니다.


   “교회는 7가지 영역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교회는 빌딩이나 그룹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지요. 크리스천들은 매 순간 모자를 바꿔 씁니다. 교회와 직장, 공공장소, 미디어 영역 등을 지나칩니다. 

   각 장소마다 다른 모자를 쓰는 것 같지만, 정신은 동일합니다. 모자 속 머리에는 기독교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지요. 교회는 ‘우리만의 리그전’을 치러서는 안 됩니다. ‘교회 게토화 현상’을 타파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각 영역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부흥의 현상입니다.” 

“커닝엄은, 하나님이 ‘주일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든 요일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뛰어넘어 세상의 영역 속으로 들어갈 때에 역으로 교회의 부흥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


초대교회는 교회를 뛰어 넘어 세상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서 나날이 숫자를 더해갔나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들이 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성전에서 모이기에 힘쓰고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자기의 재물을 동료신자들과 나누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사도행전의 어떤 부분에서도 그들이 정계와 재계, 학계와 문화계에서 영향을 미치므로 사람들이 칭찬하고 따르더라 라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린도전서 1장 26절의 말씀과 같이 초대교회 중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초대교회와 같은 부흥이 없다면, 현재의 교회가 세상의 영역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도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말이죠. 우리가 초대교회처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기도하는 일과 성전에 모이는 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자기의 재물을 동료신자들과 나누는 일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대한 순종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히려, 중세로마교회는 사도들이 직접 지도하였던 교회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와는 달리 7대 영역을 이미 몇 백년간 정복/지배해온 바 있으나,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왜 신사도들과 주권운동권은 로마교회가 이미 성공하였으나 (7대 영역의 정복 측면에서) 동시에 실패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측면에서) 모델을 따라가라고 하는 걸까요? 신사도들은 그토록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를 강조하면서 ‘신사도개혁운동’임을 강조하는 신사도운동이 7대 영역의 정복이라는 이미 실패한 ‘옛 포도주와 옛 부대’를 강조하는지요?  

여기에서 신사도운동 측이 해 볼만 한 가장 강한 반론은 중세로마교회는 신학이 틀려서이고 우리(신사도운동)는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기에 똑 같은 방법이나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 텐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사도운동권을 포함한 주권운동권은 ‘하나님 왕국의 건설을 명분으로 한 세상의 물리적 지배’, ‘교리를 떠난 은사의 일치’, ‘현재에도 사도(로마교회의 경우 교황이 사도권을 계승)가 존재한다’라는 여러 측면에서 로마교회와 공유하는 점이 있고, 따라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연합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죠. 신사도 겸 자칭 선지자 ‘릭 조이너’의 가톨릭 조직의 일원인 ‘말타 기사단’ 가입이 단적인 예입니다. 아니면, 둘이 팀을 이루어서 7대 영역 정복의 패자 부활전이라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양의 탈을 쓰고 성도를 미혹하며 세상 권세를 가지게 되었을 때 교회를 핍박해 온 무리들의 면면한 흐름을 잇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보입니다.


그러면, 중세로마교회는 어느 정도로 7대 영역 정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까요? 아래 링크를 보시면 중세로마교회의 소위 7대 영역 정복이 거의 완벽히 이루어 졌는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user.chol.com/~simjy49/ritual/r4/r4_05.htm


위 링크와 기타 소스에 따르면 중세로마교회는..


   1) 정부 영역의 정복 – 교회는 ‘국가 위의 국가’로 당시의 국제사회의 조정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왕도 로마교회의 파문을 받으면 국민들에게 왕의 구실을 못하였습니다(‘카노사의 굴욕 사건’, 기억나시나요?).  

   2) 경제 영역의 정복 – ‘교회는 중세의 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황청과 수도원은 상당한 토지와 재산을 가지고 중세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교회 안의 모든 교구민은 마치 국가에 세금을 내듯이 교회에 헌금을 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재력을 바탕으로 세워진 각지의 수도원들은 광대한 장원을 보유하면서 그 경제력을 더욱 넓혀갔습니다.

   3) 문화 영역의 정복 – 중세의 철학/문학/미술/건축/음악이 대부분 로마교회에 의하여 주도되었습니다.  문화의 보전과 수용 역시 로마교회의 실용적 목적 아래에서 행해졌습니다.

  4) 교육 영역의 정복 – 로마교회 교육이 중세 교육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경우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출발하였으며, 교수들은 성직 록을 받고 있는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파리(Paris)대학, 영국의 옥스퍼드(Oxford)대학 등이 그렇습니다. 

  5) 가정 영역의 정복 – 중세 로마교회는 출생-결혼-장례를 포함한 일상 가정생활을 그들의 전통과 관습으로 통제하였습니다.

  6) 종교 영역의 정복 – 중세 사회에서 가톨릭 이외의 종교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발은 이단 사냥으로 잠재우곤 했습니다.

  7) 대중매체 영역의 정복 – 딱히 지금의 형태의 대중매체는 없었던 중세이나, 각 교구의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고 교회들은 모두 로마교회에 종속되어 통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전파의 역할과 아울러 세상과 구별된 본분을 지키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과 소위 7대 영역의 정복운동은 이와 같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초대교회의 뒤를 따라 ‘성도’로서 본분을 지키며 세상 가운데 구원 받는 이들을 나날이 더하게 하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미혹된 채 중세 로마교회의 뒤를 따라 7대 영역 정복운동의 ‘십자군 전사’로서 이 세상을 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넘치는 은혜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계시하신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