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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김동열의 날마다묵상하며

겉보기엔 둘 다 크리스천..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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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의 매일묵상

마태복음 7장 21-29절 말씀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겉보기에는 둘 다 신실한 크리스챤이다.
주일이면 교회에 빠짐 없이 출석하고 경배도 드린다.
찬양에도 열정이 있고,  
주님! 주님! 간절한 소리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도 한다.

열 명의 신부가 있었다.
똑같이 신부 단장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신랑을 기다리고 있다.
손에는 모두 똑같은 등불을 들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조해지는 신부들이 있다.
준비한 기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조해 하는 그들의 마음을 지금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

천국 심판대 앞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얼마나 소란한지 그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한 사람이 아니다.
고함 지르며 소리 치며 애걸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주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주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주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마7:22).

그런데 잠시 후 조용해지면서 감히 누구도 항의할 수 없는
엄숙한 선언이 들려 온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 가라!"
(마7:23).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4-27).

심판주께서 왜...
"주님, 주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내쫓고 권능을 행한 자들을 "모르신다" 하시며 쫓아 내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참 이상하다.
요즈음의 설교는 [행함]이란 말을 극도로 무서워 하는 것 같다.
[행함]자만 들어 가면 무슨 신학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조심을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행함]이란 말만 나오면 인본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었으니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 대치되는
말로 곡해되어 [행함]이란 말을 설교에서 추방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것을 빼 버리면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들이기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예수 믿기 쉬운가!

그런데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신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

   "너희는 나를 불러 '주님, 주님!'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6:46).

우리 주님은 순종을 요구하신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했는가?
행실로 믿음을 나타내며 언제나 주께 순종할 것을 바라신다.

여기에 우리의 두렵고 떨림이 있다.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자신이 있는데
삶 가운데 행하는 것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이 진리를 받아 들이는데 두려운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상수훈을 처음 들은 사람들도 그랬다.
쉬운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좁은 길이 무슨 뜻인지, 협착하다는 것이 무엇이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는지 이제야 그들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우리는 어느 기초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그분을 따르며 순종하는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면
믿음대로 살게 하시는 이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 가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 은혜의 사역이다.

산상수훈의 고지를 향해서 믿음의 땀을 흘리며 오르자.
믿음의 창시자, 완성자이신 주님을 바라 보며,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