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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김동열의 날마다묵상하며

익숙하다는 것이 성숙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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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의 매일묵상 

마태복음 6장19-34절 말씀


신앙의 연륜이 쌓여만 갈 때 우리는 익숙함에 현혹될 수 있다.
주님과 친교가 깊어질수록 마음을 낮추고
더욱 주님의 뜻이 알고 싶고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잃어 버리면
여지없이 넘어질 수 있다.

우리는 간혹 익숙한 상태와 성숙한 상태를 혼동한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생활에 익숙하다.
성경말씀을 수도 없이 들어 왔기 때문에 말씀에도 익숙하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은 결코 성숙해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예배의식과 교회생활에 익숙한 정도가 우리의 신앙 수준과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시험을 치르고 나서 답안을 맞춰 볼 때
한숨을 쉬게 하는 아쉬운 문제들이 있었다.
너무나 많이 눈에 익었기에 안다고 생각하고 연습하지 않았던 문제들이다.
익숙해 있었기에 안다고 혼동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다.
너무나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다.
어려서 부터 성경을 암송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순종한다고 착각을 했다.
예배의식과 종교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 신앙인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실상은 외식과 형식주의 빠져 있었다.
마음은 없고 절차와 순서만 따르는 삶 속에 빠져 있었다.
종교인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병이다.

오늘 주님은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달라신다.
사람들이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둔다는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 보물 단지를 하나님께로 옮겨 놓는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 놓기 위해서 말이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20).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라도 세상의 염려와 근심 때문에 온통 세상에 마음을 쏟아 놓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한 쪽은 세상에, 그리고 다른 한 쪽은 주님께 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주님께 두고 있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주님께로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자!
늘 은밀히 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말이다.
믿음으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결단하자.
말씀을 대할 때마다 기꺼이 변화하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자.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쏟아부을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은혜를 쏟아 부으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