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마15:29-39
성도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성도는 세상을 미워해야 하지만 또한 세상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갖는 동시에 세상을 향한 책임을 가진다.
주님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대사명을 주시면서도 이 마음을 분명히 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20).
사도 바울도 선교사명을 감당하면서 이 주님의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헬라인에나 야만이나 지혜있는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이 있다면 이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옳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은 선택받은 민족이요 그 외는 이방인으로 철저히 구분하며 업신여겼다. 이방인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들이었다.
선택과 비선택의 문제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주된 독자를 삼고 있는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그것을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야가 됨을
밝히 드러낸다.
이방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사건(마15:21-28)과 오늘 본문 말씀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의 논쟁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서 이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주님 자신이 이방 땅에서 기적과 역사를 베푸심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구세주가 되심을 선포하신다.
마치 보여 주시기라도 하듯이 유대땅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면 이방 땅에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다. 구약에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을 유대땅에서 성취하셨다면 오늘 주님은 이방의 땅에서 동일한 사역을 이루신다.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마15:30-31).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마15:36-37).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메시야 사역에 대상으로 삼으셨다.
모든 세상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전도대상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방인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본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15:32).
세상을 향한 이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몇 년 전 인도양 연안 나라들을 휩쓸고 간 쓰나미 사건을 보면서, 연전의 뉴올리안즈의 카트리나 재앙, 얼마 전 있었던 필리핀의 산사태를 보면서, 그들이 선택받지 못했다고 신학적으로 결론을 내리며 그들의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했다 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을 먼저 통회해야 하지 않을까?
"거기서 나가사(유대땅)"(마15:21) 이방인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셨던 주님의 메세지는 복음의 빚진 자 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발길로 강력하게 이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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