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사이에 인근 동네의 몇몇 친구들을 사귀었다.
다들 뉴욬시 같은 지역의 인근 동네라곤 하나, 피차 차로 몇 십 분씩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거리다.
두 사람의 한국인, 한 명의 중국인, 두 명의 백인 등. 모두들 본 받을 점이 저마다 많고, 한결같이 친절하고 점잖은 신사/숙녀들인데..대부분은 현재 비신자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한인인 '마이클'은 얼마 전 갓 사귄 부동산 브로커. 나보다 두 살 위인 '데이빋'은, 가족은 모두 크리스천이지만 혼자 자칭 '날나리' 반(半) 신자로, 줄담배를 즐기는 컴퓨터 기업인이다.
전형적인 한국계 미국인답게 둘 다 매우 자상하고 친절하다. 미국 생활을 수 십 년 간 해 왔고,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 능통하며, 한 명은 과거 멕시코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스페인어를 영어보다 더 잘한다. 자녀들이 다들 2세로 비교적 잘 자랐다.
백인 여성인 '린'은 나보다 몇 살 아래인데도 벌써 손자/손녀 여럿을 거느린 할머니이면서, 현재 뉴욬주 연안경비대에 근무하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다 하얀 제복, 두 칼라 위에 반짝이는 은빛 배지 등과 더불어 깔깔대는 웃음과 빠른 말투가 그녀 자신과 주변을 늘 환하게 한다. 풀이 죽어 있거나 성내는 모습을 여태 본 일이 없다.
소식이 궁금하면 바쁜데도 숨가쁘게 전화를 여러 차례 걸어 도대체 뭔 일인가 초조하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만나면 별 일 없다며 큰 소리로 웃는다. 린은 말 빠르기가 보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영어가 쏙쏙 내 귀에 들어오는 게 신기한데, 아마도 소프라노의 진동수 때문이지 않나 싶다.
현재 대학원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는 백인 청년인 조너턴은 나이로 치자면 아들 뻘이지만, 흔히 미국인들이 그렇듯 편하게 서로 '친구'로서 지낸다. 동생이랑 형제가 둘 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팍이 바위처럼 단단한, 소위 "well-built"형인데, 앞으로 어린이 교육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순박한 꿈을 갖고 있다.
옛날 나의 학창 시절 역도반에 있던 친구가 그랬듯, 근육미가 돋보이는 청년들은 대체로 행동이 좀 느리고 성격은 유순한 편이다. 때로는 내가 귀찮게 굴어도 마냥 웃으며 아무 불만도 없다는 표정이다.
얼마 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여친과 함께 신나게 휴가를 보내고 왔단다. 요즘 청년청녀들은 혼전 동거를 예사로 여긴다. 조너턴의 아버지도 만나봤는데, 처음 보는데도 오랜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라이언은 조너턴과 비슷한 또래의 중국 청년인데, 나를 한참 어른으로서 존대해 주면서도 따질 사리는 따지고 보는 스타일. 웃음이 별로 없고, 검고 짙은 눈썹이 한데 가까이 모아져 눈이 날카롭게 보이지만, 마음이 따스하다. 며칠 전 던킨 도넡에서 둘이 만난 자리에서, 흔한 한국인 성씨를 여럿 나열해 보이면서도 정작 김씨를 정확하게 몰라 나를 웃겼다.
물론 이들 모두가 기도와 전도 대상이다. 사귀기 시작하면서 다짜고짜 처음부터 복음을 대 놓고 말해 주기가 작전상 좀 '머시기거시기' 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미 복음을 들었거나 냄새를 맡은 사람도 있지만, 긴가민가 하는 상태다.
집에서 불과 몇 블랔 떨어진 동네의 '조이'라는 이탈리안계 백인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로, 올해 탄생 1세기를 맞았다. 어릴 때부터 모아 놓았다는 온갖 장식품들이며 가구들이 지금은 모두 값비싼 골동품이 되어 아래위층이 흡사 자그마한 박물관 같다.
눈빛에 아직 총기가 어려 있고, 층계가 꽤 가파른데도 난간도 붙잡지 않은 채, 내 눈엔 "펄펄 날아 다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방금 한 얘기나 질문을 너덧 번 되풀이 하는 걸 보면, "음, 역시나.." 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기억력은 대단하다.
장수의 비결을 물으니, 간식을 삼가고 규칙적인 식사를 늘 조리 음식을 중심으로 하며, 바지런하게 항상 모든 것을 잘 돌본다고 답한다. 손자 같은 나더러도 시시때때로 "뭐든 잘 돌봐라!"고 다짐을 놓곤 한다.
약 70년 전 단돈 40달러에 장만했다는 그녀의 아담한 집은 길쭉한 뒤뜰에 빈틈 없이 파란 잔디가 깔리고, 한 가운데 굵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모습이 비밀의 정원인 양 차밍하다. 성당을 얼마 전까지도 매주 다녔는데, 차 운행이 중단된 뒤로는 못 다닌다고 했다.
아직은 늘 건강해 뵈지만, 언젠가 홀연히 떠나기 전..꼭 거듭남과 천국행을 확인해야겠다.
그밖에도 근래 사귄 사람들 중엔 신자도 있다. 친근 한인 목회자들 가운데 사귄 지 오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지난 해 세밑 무렵 처음 만나 친교해온 타이완(대만)계 사람 '써니'는 나의 안수동기생인 한인 N 목사의 제자로, 부부가 정말 잘 생긴 '꽃미남미녀' 사역자들이다. 내게 가끔 이런저런 성경/신앙 관련 질문을 해 오는데, 서로 견해가 다를 때도 있지만 성경관/인생관이 뚜렷한, 참 기특한 목회자감이다.
이들 모두가 만나면 반갑고 대화도 즐거운 대상들이지만, 신(信)/비신(非信)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때때로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세상에서는 다들 그럭저럭 "제 잘난 맛"에 살지만, 그 영혼들이 가엽다.
때로는 어깨를 토닥여 주고, 껴안아 주기도 하고, 감기로라도 아플 때는 진심으로 안수기도를 해 주고 싶다. 하지만 함부로 안수하지 말라는 교훈도 있거니와, 개인이 받아 들이는 정도가 달라 조심하게 된다.
[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얼마간 알고 지내던 모 부흥강사는 방미 길에 어쩌다 할리우드의 옛 명여우 아무개의 집에 초대 받아 가 안수기도까지 해 줬다는데, 과연 무슨 깊은 의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
바쁘고 각박한 삶 속에서 친구를 갓 만나기도 사귀기도 쉽지 않지만, 일단 쌓은 우정을 문제 없이 지속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 믿음과 무신(無信)의 괴리 속에 민감한 화제를 기웃거리다간 허물 없어 뵈던 사이를 혹여 괜스레(?) 나눠 놓기도 하므로, 홀가분하지 못한, 예측 불허의 다음 순간을 불안해 하기도 한다.
잃어진 영혼들을 향한 부담은 삶의 자세가 진지한 크리스천 누구나의 가슴을 누르리라. 지긋이..또는 무겁게.
제 아무리 가까운 친구, 즐거운 우정이라 한들 믿음을 서로 공유하지 못할 때, 너와 내가 선 곳이 다른, 서글프고 슬픈 투명벽 너머의 현실에 직면하고 만다.
그러나 믿음으로 씨를 뿌리고 그 뒤는 성령님께 맡기는 자가 결국 승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문득문득 자각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대기도 한다.
눈을 들어 먼 들을 바라 보자.
곡식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
주님 말씀마따나 "불의한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자(루카복음서/눅 16'9).
그리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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