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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막 16:9-20] 이 부분은 성경이 아니다?[1]







알렉산드리아사본(코덱스알렉산드리누스)의 해당 부분. 윗 사진은 마르코스복음서(맑) 15:37-16:16, 아랫 사진은 맨 끝인 16.17-20절 부분.  


이 부분은 성경이 아니다?[1]
- 맑 16:9-20절의 진정성 이슈

[ 본문 군데군데 작은 주황색 숫자에 마우스를 대시면 각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신약성경 마르코스 복음서 [각주:1] ('마가복음'. 이하 '맑')의 맨 뒷 부분을 읽는 사람들은 16장 9절부터 끝 절인 20절까지 모두 12개 절이 꺽쇠기호-[ ]로 묶여 있음을 발견한다. 또 "어떤 사본(또는 일부 고대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이라고 한 각주(아랫주)를 보게 된다.

이 성구들엔 주님의 대 위임령(일명 지상명령/대사명)의 일부인 16:15-18이 들어 있고, 특히 16:17,18은 신자들에게 따르는 (5대) 표징들이 예수님의 예언 형식으로 나열돼 있어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16:16까지만 믿을 뿐 16:17,18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성령님의 초자연적 나타나심 특히 영언(방언)을 부정하는 신자들은 더 그렇다.
이들의 상투적인 변명 한 가지는 전술한 것처럼 16:9-20절이 본래 초기 사본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다수의 설교자들도 그렇게 공공연히 그렇게 강조하면서 주님의 이 말씀의 신빙성/진정성을 절감하려고 애쓴다. 

과연 맑 16:9-20은 성경의 최초 원본엔 없었을까? 성령님께 영감 받은 구절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본래 성경의 일부가 아니란 말일까?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독자들 대다수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문제의 두 주요 사본

먼저 가장 궁금한 이슈는 과연 맑 16:9-20이 일부 초기 사본엔 없냐는 것.

현재까지 발견된 신약 성경 사본들 중 가장 초기(4세기) 것으로 알려진 두 대문자사본[각주:2]2 이자 코덱스[각주:3] 사본인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과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본들이 그렇다. 
그러나 9-20절 부분의 정격성을 의혹시해 온 학자들도 이 부분을 성경에서 감히 삭제하진 못하고 있다. 현재까진 그렇다. 왜 배제/삭제하지 못하고 있을까?

훨씬 더 많은 고대 사본엔 9-20절 부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주요 사본에 비해 연대적으로 과히 늦지 않은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엔 이 부분이 들어 있다(위 사진 참조). 

그런데도 대다수 진보계 학자들, 심지어 일부 보수적 학자들조차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경시하며, 일부 인사들은 아예 성경 사본이 아닌 양 거의 논외 대상으로 치기까지 한다. 9-20절의 기자가 마르코스(마가)가 "아니다"란 견지에서다. 과연 그럴까?

그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이 부분의 실질적 저자가 성령님이 아니시냐는 것. 더 나아가 그럼 성령의 영감을 전혀 안 받은 것이겠냐는 것.
혹시 마르코스가 실제 기자가 아님이 완전 입증된다 한들, 9-20절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아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 까닭을 성경 자체가 반증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쉐 5경[각주:4] 뒷 부분엔 모쉐가 죽은 이후의 부분도 추가돼 있다. 그럼 그 부분의 실 저자가 모쉐가 아니라고 해서 성령께 영감된 것이 아닌가? 성경이 아니라는 말인가?
슈무엘B(사무엘하)서도 마찬가지. 슈무엘의 이름으로 된 성경이지만 후반부는 원 기자인 슈무엘의 사후 기록이다. 본인이 실제로 쓴 것이 아니므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성경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더 나아가, 구/신약 성경 권서들 일부는 실 저자가 누군지조차 제대로 모른다. 예를 들면 구약의 시편의 일부나 신약의 히브리서가 그렇다. 그래서..성경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쓴 히브리서는 가장 권위 있는 성경의 하나다.

그러므로 9-20절이 마르코스가 실 기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권위가 떨어진다거나 성경이 아니라거나 영감을 못 받은 양 주장함은 힘을 잃는다. 이것은 성경이 아니면서 성경인 양 주장하는 다른 기록 '계시'를 권위 있게 봐 주냐 못 봐 주냐의 이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짧은맺음, 긴맺음


본문비평학자들은 본 구절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검증을 크게 외증과 내증-두 가지 범주에서 실행한다. 외증은 사본들의 기록연대와 지리적 이슈, 연계성 등. 내증은 대체로 짧은 맺음 사본이 "오리지널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견해와 낱말/문맥/문체 등의 이슈다. [각주:5]

9-20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원문학자/본문비평학자는 브루스 메츠거 교수(Bruce Metzger)[각주:6]이다. 메츠거에 따르면, 마르코스 복음 끝 부분의 사본 종류엔 네 가지가 있다.

1. 16:9-20 부분이 없는 사본. 흔히 '짧은맺음'(Shorter Ending)으로 불린다.
2. 16:9-20이 있는 사본. '긴맺음'(Longer Ending)으로 불림.
3. 16:9-20이 있으면서 (현) 8,9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4. 16:9-20이 있으면서 (현) 14,15절 사이에 딴 절이 포함된 것.

위의 4는 그리스어 사본인 '워싱턴 사본'(Codex Washingtonian)[각주:7] 하나만 그렇다. 3,4에 대한 논의까지 한다면 너무 복잡하고, 여기선 그다지 중시되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3,4도 1보다는 2를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결국, 과연 1과 2 - '짧은맺음'과 '긴맺음' - 둘 중 어느 것이 더 진정성이 있겠나로 귀추가 집약된다.

쟄 루이스는 "짧은맺음(위의 1)에 대한 사본들의 지지도는 너무 박약해 (기자) 마르코스가 그렇게 끝냈다고 믿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고까지 말한다. 심지어 메츠거까지도 그런 학자이다!  

    '짧은맺음'을 지지해온 주요 학자들: 
       홀트(F.J.A. Hort), 스트리터(B.H. Streeter), 엘리엍(J.K. Elliott), 메츠거 등. 

    '긴맺음' 지지측:
       버곤(John W. Burgon), 스크립너(F.H.A. Scrivener), 샐먼(George Salmon), 모리슨(James Morison), 새뮤얼 즈위머(Samuel Zwemer), 렌스키(R.C.H. Lenski) 등.

가장 초기 사본인 바티칸/시나이 두 사본들이 1을 지지해 줌에 따라 ASV 성경은 "두 개의 최고 그리스어 사본들과 여타의 몇몇 권위사본엔 9절에서 끝절까지가 없다. 기타 몇몇 권위사본들은 다른 맺음을 해 놓았다"고, NIV는 "두 개의 가장 신빙성 있는 초기 사본들은 맑 16:9-20이 없다"고 난외주를 달았다.

1을 뒷받침하는 기타 사본들은 '시나이-쉬리아 사본', 약 100개의 아르메니아 사본들, 9-10세기의 그루지야 사본들 중 가장 오랜 2개 등이 있다. [각주:8]

'교부시대'의 주요 학자들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오리겐(3세기)이 9-20절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카이사리아의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딴 발음 '에우제비우스', 4세기)와 라틴어 성경 '불가타'의 역자 히에로니무스(=제롬. 5세기)도 그들이 아는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에 9-20절이 없는 것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마리누스가 제기한 마태복음서 28:1과 맑 16:9 둘 사이의 '모순'에 대한 가능한 해법 두 가지를 언급한 바 있는데 '모순'과 해법을 논한 것 자체가 16:9 이후에 이어져야 할 구절이 빠져 있음을 반증한 셈이 된다.
대다수 학자들은 16:9로만 끝내는 것이 마르코스의 원 의도가 아니었다고 믿는다!

히에로니무스는 갈리아 지방의 여성신자 헤디비아(=에디비아. 본래 이교도 여사제였다가 열렬한 성경학도가 됨)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유세비우스-마리누스 사이의 그리스어 논쟁 내용을 단순히 라틴어로 옮기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맑 16:9-20의 진정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때 내놓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대 라틴어 역 '불가타'에다 맑 16:9-20을 포함시켰다! 게다가 대(對) 펠라기우스 논쟁 때 이 부분에서 인용까지 했다!

1에 대한 다른 하나의 방증은 암모니우스가 만든 '유세비우스 정경'에서 8절 이후가 절수를 위한 숫자가 빠져 있다는 주장. 그러나 151개의 그리스 유앙겔리아 코덱스를 보면 114개는 나머지 12절을 위한 구획구분(즉 공간 마련)을 했다. 
일부 사본들은 9-20절을 포함시키되 별표/단검표를 하여 진정성에 의문을 표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표기가 전례적 낭송의 단락 표기를 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메츠거조차도 그런 표기는 본래 원고에 추가물이 있음을 명기한 것이라고 동의한다.


내증(內證)

9-20절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내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1. 어휘/문체가 마르코스적이 아니다.
2. 8절과의 연결이 어색하고 제3자가 덧붙인 인상을 준다.

여기에 관해서는 나중 아래서 논급된다.


반증: 9-20절의 진정성!

9-20절을 포함시킨 '긴맺음' 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 사본(CA) 외에도 매우 많다. 그리스어 사본들의 99%가 그렇다! 4번째로 중요한 초기 대문자 사본인 에프라임사본(CER, 5세기), 전술한 워싱턴사본, 베자-케임브리지('BC') 사본(6세기), 파리사본, 뮌헨사본, 갈렌(=갈루스)사본, 티플리스사본(그루지아), 레닌그라드사본 등 주요 사본들외에도 부분적으로 다른 절을 더 추가한 사본들도 상당수 된다.
9,10세기의 4개 주요사본들, '패밀리 13'의 10여 소문자 사본들도 그렇다.


교부들의 지지

맑 16:9-20을 포함시킨 '긴맺음'을 입증한 교부들은 더 많고 연대적으로도 더 이르다.
2세기 교부 이레니우스(202년 별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본 구절들의 내용을 기재했다. 그의 글 '이단에 대응하여'에서도 마르코스 복음서의 일부로서 인용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2세기)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제자 타티아누스(2세기)가 그리스어로 4복음서를 종합한 '디아테싸사론'에서 이 구절들을 포함시켰기 때문. 테르툴리아누스(3세기, 220년 이후 별세)도 3권의 저술물에서 이 성구들을 인용했고, 퀴프리아누스(258년 별세)도 17-18절을 사용했다. 익명작가 또는 퀴프리아누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글 '데 레밮티스마테'에도 역시 이 구절들이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교부시대의 이 모두가 바티칸/시나이 사본보다 연대상 앞섰다는 것! 즉 바티칸/시나이 사본은 단지 코덱스로서 알렉산드리아사본을 앞선다는 것 밖엔 연대적으로 앞설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후 4세기에는..아프라아테스가 그의 '논증' 중 '신앙론'에서 맑 16:16-18을 인용한 바 있다. 또한 '사도관례'(380년경)도 그렇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 암브로시우스(397년 별세)는 그의 '성령론', '기독교신앙론', '회개론' 등에서 이 부분을 인용했다.
디뒤무스(398년 별세)와 아스테리우스(341년 이후)도 이 부분에 대한 증인들이다. 

5세기엔 전술한 히에로니무스 외에 레오(461년 별세), 크리소스토무스(407년 별세) 등 주요 인사들 외에 세베리아누스, 마르쿠스-에레미타,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으며 네스토리우스(기독교 일파인 경교/景敎의 창시자)도 한 명이다. 
 
물론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압도적 숫자가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성을 덜 할 만큼 만만치 않은 것 이상의 반증이다. 

그밖에도 옛 시리아 사본(쿠레토니안), 페쉬타(아람어 사본), 후대 시리아 사본(팔레스타인-하르클레안) 등이 있다. 콮틱 사본들 중 9-20절 부분을 포함시킨 것은 사히딬/보하이맄/파이유밐(이상 3-6세기) 등. 4세기의 고틱 사본은 9-11절만 있다. 또 아르메니아(일부)사본/그루지아사본, 옛교회슬로보사본들 중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사본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본 숫자로나 연대적으로 봐도 9-20절 배제설이 '정설'이라고 할 건덕지가 없는 셈이다.

이제 9-20절 부정 측이 가장 '강력'한 증거물로 내세우는 바티칸/시나이 두 사본들에 관해 반증해 본다.
본문비평학자들의 입장과는 달리 "3대(Big Three) 대문자 사본"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사본은 바티칸사본/시내사본들과 맞먹는 정확성과 연대적 초기성을 갖는다. 기껏 50년 정도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전자가 더 우세할 까닭이 뭔가?

만약 2:1로 숫자적으로 우세해서 그렇다면 9-20절을 뒷받침하는 여타 99%의 사본들의 우세성은 어쩔 것인가? 단지 바티칸/시나이 사본이 연대적으로 알렉산드리아사본보다 50년 앞섰기에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더 앞선 교부들의 증언과 여타 증거들은 어쩔 것인가?


바티칸 사본의 실상

바티칸사본은 9-20 부분이 빠져 있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 이 부분을 추가하려던 흔적인 여백이 남아 있다! 9-20절 부분을 대문자로 추가하면 딱 맞을 여백이다. 즉 추가할 생각을 하다가 어쩌다가 또는 형편 상 생략해 버린 것이다.
바티칸사본 전체에서 이런 여백은 유일하게 마르코스복음의 뒷 부분 이곳 뿐이다!

바티칸사본은 더욱이 신약의 다른 부분 수십 장을 빠트린 반면 구약 외경 여럿을 집어 넣었다. 이 점에서는 시나이 사본도 마찬가지: 헤르마스 목자서, 바르나바스복음서 등 외경을 삽입했다.

더 나아가 9-20절 회의론자들의 입장과는 달리, 이 두 사본들은 서로 합치하지 않고 오히려 각각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합치하는 부분들이 잦다. 예컨대, 주님의 겥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천사가 예수님을 도왔다는 사실과 주님의 이마에서 피땀 방울이 흐른 장면(루카복음서 22:43,44)이 바티칸 사본엔 빠져 있으나 알렉산드리아/시나이 두 사본엔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맹인이 믿음을 고백하면서 주님을 경배한 사실(요한복음서 9:38)은 시나이사본엔 빠져 있어도 바티칸/알렉산드리아 두 사본엔 함께 기록돼 있다.

이같은 두 사본의 잦은 불일치(약 8군데 이상)는 맑 16:9-20 진정성 거부의 발판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더욱이 바티칸사본 마르코스복음 끝 부분의 의문의 '공백'은 필사자가 최후까지 삭제/포함의 갈림길에서 헤맸다는 암시이다.
UBS(연합성서공회)는 쿠르트 알란드, 매튜 블랰, 브루스 메츠거, 앨런 윜그렌 등 4 학자들이 공동 번역/편집한 원문 신약전서를 내면서 일부 용어는 바티칸/시나이 사본 대신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리아사본이 단순히 바티칸/시나이 사본보다 신빙성이 적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비(非) 마르코스 스타일? (부정을 위한 내증)

9-20절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부정/회의론자들은 사실상 대다수가 외증보다 내증을 더 중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 표명은 묘하게 애매하고 혼동스럽다. 9-20절 반대측의 대표급 학자인 메츠거의 경우, '긴맺음'의 지지 증거들이 일부는 고대 것이기도 하면서 다양하지만, 부차적으로는 내증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이 구절에 대한 반대 외증들이 단지 "좋다"는 반면, 내증은 "강하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사실, 외증만으로도 충분히 9-20절의 진정성은 입증되고도 남는다. 구태여 반대 내증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메츠거는 그 '내증'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1). 9-20절의 어휘와 문체가 마르코스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2). 8절과 9-20절 사이의 연결이 어색하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밀러의 지적대로 객관적이기보다는 매우 주관적인 사견에 불과하다. 단지 '어색하다'는 것으로 마르쿠스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것은 섣부르다.

메츠거는 9-20절의 신빙성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서도 8절로만 끝났다고 믿지도 않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밀러의 지적대로, 8절 후 "뭔가" 빠진 듯한 메츠거의 느낌은 곧 9-20절이 그 '뭔가'임을 반증한다.

메츠거는 8절로 갑작스레 "맺은" 것을 갖고, a. 본래 마르코스의 의도였거나 b. 이 복음서가 미완성이거나 c. 마지막 쪽이 분실됐거나 등 세 가지 가능성을 말하면서 b.에 가장 무게를 둔다. 그러면서도 9-20절을 신빙성 있는 뒷 부분으로는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것.

그렇다면 압도적 다수의 고대 사본들과 연대적으로 우세한 교부들의 증언은 메츠거의 사견보다 가치가 덜 하다는 뜻인가? 그런 의식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심각하게 편파적이다.
 
메츠거는 또, 9-20절 부분에서 최소 17개 낱말과 구절이 마르코스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어서 '비 마르코스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주장은 1세기도 더 전에 앨포드(1844년)가 이미 했던 것이다.

끝 부분에 나온 단어가 동일 복음서 앞 부분에서 쓰여진 적이 없다고 언제나 본 기자의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를 받아 들여야 하는가?
그런데 실험에 의해 이 논리도 허술하게 금방 무너져 버렸다!

왜냐하면 1869년 존 브로더스는 바로 문제 부분의 앞인 15:44-16:8의 12개 절을 갖고 분석해 본 결과, 거기서도 앞의 다른 부분에서 마르코스가 쓰지 않은 17개의 낱말/어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츠거의 주장은 학자로서 설득력이 박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J.W. 맥가비는 브로더스의 실험 몇 년 뒤 루카복음서에도 비슷한 실험을 해 봤다. 즉 마지막 12개 절에서 앞 부분에서 쓰이지 않은 새 낱말이 있냐 없냐는 것. 9개나 발견됐고 그 중 4개는 신약 전체에서 전혀 쓰이지 않은 단어였다! 그런데도 이 때문에 루카복음서 뒷 부분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비평학자들은 여태 없었다.


결론


반대자들은 순전히 바티칸 사본과 시나이 사본 등 일부 소수 사본에 빠져 있다는 것만으로 9-20절의 진정성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맑 16:9-20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오리지널한 마르코스의 기록이라는 진리를 마음 놓고 믿어도 좋다!


  1. 주1: 한글 성경에서의 '마가'에 해당하는 마르코스는 그리스어식 표기음이며, 라틴어로는 '마르쿠스'이다. 한글성경들은 1세 중심의 현 교계 대중을 의식해서 한자에서 온 '마가'라는 표기 곧 '마가' 복음이나 '마가' 요한의 다락방 등을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주2: '엉셜'/uncials'. 그리스어 알파벹 대문자로만 된 사본 [본문으로]
  3. 코덱스(codex): 양피지(羊皮紙) 두루마리와는 달리 책으로 묶인 성경 사본. [본문으로]
  4. 창세기, 미쯔라임출국(한글성경: '출애굽기', 레빝 서(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모쉐가 쓴 5개 구약 권서들. [본문으로]
  5. 이하 부분은 필자와 견해가 거의 같은 데이브 밀러 박사의 논단을 상당량 간추렸다. 필자의 견해도 곧 추가된다. [본문으로]
  6. 20세기의 유명 신약학자들 중 한 명. 다년간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본문으로]
  7. 미국 철도공학자/수집가/박애가인 찰스 랭 프리어가 발견한 성경사본. 4복음서만 있으며, '워싱턴 복음서들' 또는 '프리어 사본'이라고도 불린다. 훗날 스밑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돼 현재 스밑소니언 산하 프리어하우스에 소장돼 있다. 워싱턴 사본엔 맑 16:9-20에 소위 '프리어 문구'(Freer Logion)라고 불리는 성구가 14-15사이에 삽입돼 있다. 이 문구는 현행 성경 역본에서는 채택하고 있지 않다. [본문으로]
  8. 상당수 학자들은 라틴어 고문체 사본 '보비엔시스'를 1의 증거의 하나로 삼지만 필사자는 뭔가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짧은맺음으로 귀결한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