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분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을 찾는 사람들의 보상자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히브리서 11:6)
크고 작은 한국교회에서 많은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보'에서 느꼈던 한 가지는 과거에 비해 십일조가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우울한 징조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교회는 최근 현대적인 교회당을 신축했습니다. 그런데 헌금에 비해 십일조를 하는 교인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번듯한 새 건물에 비해서는 그 교회와 교우들 그리고 사역자들이 상대적으로 진 경제부담이 크다고 느낍니다. 십일조가 약한 교회는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한 목회자는 "한국교회를 잘 몰라서 그렇지, 예상 밖에 다들 십일조를 많이 한다"고 자랑 비슷이 제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 말대로 과연 실상이 그런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과거엔 오히려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더 알뜰히, 그리고 열심히 십일조를 하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목회자와 사역자를 위한 성미(쌀)를 일주일간 모아 정성껏 드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나날이 십일조 교인들이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이런 현상은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지만, 한 가지는 목회자들이 이젠 더 교인들에게 경제와 직결된 실질적인 교훈들을 해 주길 꺼린다는 숨은 사실입니다. 즉 교인들의 비위를 맞춰 가며 십일조를 적당히, 덜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1980년대에 미주한인교회 일각에서 발견되던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젠, (J.D.) 라커펠러가 훌륭한 십일조 교인이었다는 둥, 그의 어머니가 줬다는 나름의 '십계명'을 활용하는 등 간접시사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 그러나 라커펠러가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범적인 십일조 교인이었는지는 역사가 판단해 줍니다. 라커펠러는 비밀집단인 해골단(S&B) 단원이었습니다. 그가 지원해온 리버사이드 교회는 동성애자들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회의 하나입니다.
라커펠러 가문이 과연 대대로 굉장한 모범 십일조인이라면, 응당 온 미국 교계가 그 영향을 받았어야 할 터입니다. 그러나 십일조 감소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
아무튼.. 이런 현상은 뭘 말해 줄까요?
믿음이 모두의 것이 아니듯, 십일조도 모든 신자의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 대다수는 삶 속에서 사실상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아낍니다. 아울러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참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해 줍니다.
오늘날 십일조에 대하여 성경을 이용한 다양한 반론이 일어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복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일조는 복과 직결돼 있기에, 하나님께 복을 바라는 모든 믿음을 간단히 '기복주의'로만 치부해 버리면, 십일조의 중요성도 간단히 약화돼 버리기 때문이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두 가지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둘째는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대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 "미스타포도테스"란 낱말은 '보상자'라는 뜻으로, 일꾼이 성실히 해온 일에 대한 대가를 주는 주인이란 뜻이 내포돼 있지요.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주일마다 되뇌는, 이른 바 '신앙고백'과는 달리 전능하사 하늘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좀체 믿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따이를 믿는다면, 그 믿음에 합치하는 행동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선 "믿음 따로, 행동 따로"의 악습이 자주 발견됩니다.
이런 요소들은 하나님을 매우 섭섭하게 하며..사실상 교회나 신자가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십일조도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분이 우리 믿음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강력한 믿음을 설파하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은 서글픔을 느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십일조를 무시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다수 신자들이 흔히 상투적으로 외치는, 이른 바 "바닥에 불과한 십일조 이상의 것을 바치는 신앙"은 기실, 바닥인 십일조조차 무시하는 신앙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십일조를 놓고 한 분과 댓글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율법'으로만 보는 분입니다. 본 필자와는 달리, "십일조는 결코 복음일 수 없다. 넌센스다"고 그는 반박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자신있는(?) 신앙생활과 물질과는 별개의 것처럼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수많은 비유들만 해도 대다수가 재정과 연계된 사실은 뭘 말해 줍니까..?
복음이란 게 뭡니까.. 메시아가 가져오신 모든 복된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모든 일이 복음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만 위해 돌아가시진 않았습니다. 인류가 받아 온 모든 저주를 도말하셔서 아브라함의 법적 후손들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상속하게끔 만들어 놓으신 분이 바로 메시아, 곧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인류가 받아 온 온갖 저주엔 병과 가난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오늘날 관상영성의 영향을 받는 현대 교회는 성경과는 정반대로 "병도 가난도 복"이라는 말을 태연히 뇌까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주도, 저주를 몰고 온 죄도 다 복이란 말인가요............................?
아브라함은 일찍이 '아브람'일 당시에 이미 엘리온(가장 높으신 하나님, 지존자)의 사제인 멜키쩨뎈, 즉 샬렘(=평화)왕, 의의 왕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바친 바 있습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로부터 복 빔을 받습니다.
멜키쩨뎈은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를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7:8에 따르면, 오늘날도 주님은 옛 멜키쩨뎈처럼 십일조를 받으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말라키 3:10 말씀 그대로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복의 채널의 일부인 십일조는 율법이 아닌 초율법입니다.
주님은 복 주시는 분임을 기억합니까? 백성들이 먹는 빵을 축사하시고, 어린이들을 축복하셨고 지상을 떠나는 마당에서도 온 신자들을 축복하셨음을..?
주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길 안타깝게 열망하시는 분임을 믿습니까?
아브람에게 상급이 되시고 그를 그처럼 복 주시길 원하셨던 야웨 주님은 바로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야웨 이레(공급자, 미리 마련하시는 분)가 그 분이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온 지상을 두루 살펴 보시면서 복 받을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요즘은 어떻게 된 건지, '복'이라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그러면서도 '만복의 근원 하나님', '복의 근원 강림하사'란 찬송은 여전히 입버릇처럼 부릅니다.
한국 목회자들은 과거처럼 교우들의 십일조 생활을 다시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발적이어야지, 율법적으로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이 성도가 재정적, 육신적으로 복 받을 길입니다. 그리고 헌금처럼 십일조도 올바른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대형화와 치부의 도구가 돼선 안됩니다. 나누고 뿌려야 합니다.
반십일조주의자들, 반복(反福)주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님의 복을 빼앗는 사람들입니다.
히7:8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하늘 대사제이신 주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들에겐 그 믿음의 대가를 주신다는 뜻이지요.
티엘티의 모든 독자들에게
십일조와 복의 은총이 넘치길!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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