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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선지서

[겔 18] 아버지가 먹은 신 포도가..




죽을 사람의 죽음도 나는 달갑지 않단다.
주 야웨(예호바)의 말이다.
돌이켜서 살아라!
(에제키엘=에스겔 18:32. 이하 성구는 사역)



고대 이스라엘엔 이런 속담이 나돌았습니다.

    "아버지들이 신 포도를 먹으니 자식들의 이가 얼얼하다."

그래서 구약 유다 왕국 말기 무렵을 살아간 동시대의 두 대언자가 이 속담을 예언 속에서 인용했습니다(예레미야 31:29, 에제키엘 18:2).

풍자적인 이 속담은..그러니까 아버지들이 율법을 어겨 범죄하면 그 자녀들도 덩달아 피를 본다는 의미였습니다.

배경은 사뭇 다르지만, 우리네 속담에도 약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잘못 되면 조상 탓, 잘 되면 내 탓."이란 말이지요.

아무튼 썩 좋은 말도 아니고 실은..바른 말도 아닙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속담 하나를 갖고 에제키엘 18장 전체를 할애하셔서 이 속담의 잘못을 분석하시고 지적하시고 고쳐 주십니다. (참고: 성경의 장/절 구분은 후대에 생겼음) 

즉, 사람은 자기 죄로 죽지 조상 죄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범죄한 그 자신이 죽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늬네들은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으시면서 "두 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예레미야서에서도 역시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이 속담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 오랜 옛적 율법 말씀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수 천 대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 그러나 범죄자들을 벌 없이 넘기진 못한다. 아버지들의 죄는 그 자식들과 후손들 3,4대까지 벌을 줄 테다." (미쯔라임출국=출애굽기 34:7)

    "너는 그것(우상)들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마라. 나-주/야웨,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은 아버지들의 죄를 자녀들에게 3,4대까지 벌하련다." (출 20:5, 비교:신명기 5:9)

바로 이 율법 말씀에 바탕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속담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예, 과거 오랜 옛적엔 그렇게 말씀하셔 놓고, 말기에 와서는 다르게 말씀하시는 듯 할까요?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경고와 본심을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위와 같은 무서운 경고를 하신 때는 미쯔라임을 떠나 광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말을 듣지 않고 강퍅한 죄인들인지를 그 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번연히 보고 느끼고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자주 하나님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들에겐 초기부터 강력한 경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것도 주님은 아셨습니다.
율법은 어떤 의미에서 지키게 하기보다 인간의 힘으로는 지키지 못한다는 실상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오직 메시아를 통해서만 의인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시려고 보내신 초등학문 교사였던 셈입니다. '몽학선생'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므로 아버지의 죄를 3,4대 후손에까지 묻겠다는 주님의 뜻은 그들을 혼내시기 위함이 아니라..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함을 깨달아서, 죄를 뉘우치고 돌이켜라-곧 회개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바꿔 말하면..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이키면 옛 죄를 다시 묻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죄를 뉘우쳐 돌이키지도 않고 그저 율법에 집착하여 위의 속담만 되뇌고 있다면..그건 하나님 앞에 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또는 유대인들이 저런 속담을 계속 뇌까린 것은 결국, 하나님은 어차피 공의와 진노와 형벌과 응징의 신이시니, 뉘우쳐도 벌은 받게 돼 있다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포기요, 도전이며 아울러 자기쇠망의 지름길입니다.

주님 말씀은, 아버지가 설령 신포도를 먹었더라도 자녀들의 이까지 시리고 시큼거리진 않으리란 것입니다


자..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자신의 모습과 잘못과 한계를 깨달아, 공의(정의)와 사랑의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솔직히 자기 죄를 시인하고 두 손 들어 그 분의 도움과 긍휼을 요청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곧 하나님의 "온정 샘"을 자극하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사악하고 잘못했더라도,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부모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고 스스로 올바른 길을 걸어간다면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심경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악인이라도 하나님 말씀 곧 복음 앞에서 자기 행위를 헤아려 잘못과 죄악을 떠나서 말씀대로 살면, 그에겐 소망과 영생과 천국이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죽음을 내가 기뻐하기라도 하느냐? 주 야웨의 말이다. 오히려 그가 그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느냐?" (에제키엘 18:23)
 

그런데 말입니다..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과 구속, 영원히 살 생명의 길을 제시하시고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땅에 보내심으로써 예수 크리스토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삶의 길이 뚫리는 새 시대를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새 시대는..껍데기만 달라 뵈는 현대의 소위 '뉴에이지'가 아니라..바로 예수님이 여신 오순절 이후의 성령 시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새 일이요 새 역사입니다.
바꿔 말해서..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조상이든지 누구든지의 죄를 묻지 않고 의인으로 삼으시고 새 삶을 살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은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그 분의 말씀 속에 머물고 지내는 길입니다.

    "곧 하나님이 크리스토 안에서 세상과 화목하시어 그들의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화목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코린토B=고후 5:19)
 
예수님을 믿기가 싫어, 나름의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은총이라는 것을 모르며..모든 은총을 빚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선행을 하고 율법을 지키는 대신 불경건한 사람조차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 그 분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곧 하나님께 의로움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것을 다빋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자기 불법을 용서 받고 자기 죄가 가려진 사람들! 
    행복하여라, 주님이 죄를 묻지 않으실 사람!"(로마서 4:7,8 참고: 시 32:1,2)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겐 내 육신의 아버지의 죄를 우리에게 물으시는 그런 일은 전혀, 영원히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복음을 받고도 끝끝내 그 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죄를 스스로 책임지고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구세주를 거부하는 한, 그의 죄악은 누가 대신 떠맡아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분의 아들을 믿지 않는데도 기꺼이 달갑게 용서하시고 모두 구별없이 받아 주실, 진리와 공의가 빠져버린 그런 터무니 없는 사랑의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크리스토 안에서 차별이 없을 뿐입니다.

    "죄 짓는 사람, 그가 죽으리.." (에제키엘 18:20a)

여기서 죄 짓는 사람은 오늘날은 곧 예수 크리스토를 믿지 않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그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의 선조가 어떤 죄를 지었든 말입니다. 
 
우리가 잘 살고 못 살기, 아니, 살고 죽기는
죽은 선조를 얼마나 잘 섬기냐에 달려 있지 않고,
바로 예수 크리스토를 믿고 사느냐 그렇지 않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과 죽음의 갈랫길, 이정표이고 바로미터입니다.
나의 선조들이 아닙니다.

 

티엘티의 모든 독자들은
흔들림 없이 영원한 행복의 길을
걸어가시길~

전능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