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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기타

'영성'의 독사과




수 년 만에 나와 본 한국은 나날이 잘 살고 있다.
어딜 가나 풍요가 넘친다. 구식 송/수화기가 귀족의 전유물이던 조선말로부터..이젠 사람마다 핸드폰(셀폰)을 들고 다니며 바쁜 시각에 '문자 메시지'들을 권하는 사회가 됐다. 좁은 땅에 자동차가 너무 많아 매일 도로가 막힌다. 거의 식사 때마다 먹을 것이 넘쳐 늘 남아 도는데 미국에서처럼 여분을 싸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은 지금이 중요하다!
특히 교회는 그렇다. 있는 사람,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 못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내 형제, 내 이웃부터 그렇다. 없던 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던 시대를 되돌아 보고 배워야 한다.

교회가 겉모습과 씀씀이가 풍요롭다 보니 정작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 진리도 소홀히 다루나 보다.

성경 진리는 그 무엇보다 귀하다. 그런데 사회와 교회가 풍요롭다 보니 성경을 갖고 '장난'질 한다. 독소를 진리와 맞바꾼다. 진리 이슈를 심각하게 다루지를 않는다. 흔해 빠진 교계의 책과 매거진을 보라. 진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과일 깎기 얘기를 해 보자.

한국도 미국을 닮아 요즘 사과처럼 껍질이 단단한 것은 두껍게 왝스를 먹인다. 왝스층 아래는 농약 따위가 묻어있기가 십상이라는 것-잘 알려진 얘기다. 왝스는 아예 사과가 썩지 않게 표피를 발라 버리니 한 마디로 숨통을 차단해 버리는 셈. 왝스 바른 사과보다는 썩은 사과가 더 자연스럽고 순수할 것은 당연하다.

왝스는 웬만한 세척제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사과는 껍질에 가장 중요한 영양이 들어있지만 왝스째 먹을 순 없다. 하는 수 없이 과도로 껍질을 깊이 벗겨낸다. 그나마도 껍질을 한 줄씩 벗겨낼 때 마다 껍질 속 과즙에다 과도를 문질러 씻어 가며 깎아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속살까지 상당량 희생된다.   
 
왝스를 먹인 사과의 모양은 그럴 듯 하고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아름답고 건강해 뵈지만 껍질째 먹으면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과라는 진리 위에 비진리의 독소가 묻었는데도 그 위를 그럴 듯한 포장으로 덮는다. 진리를 가려 버린 비진리를 진리 자체인 양 꾸민다.


요즘 왝스를 입힌 '사과'가 교계에 흔하다. 기독교 서점 서가에 널린 베스트셀러 또는 그에 준한 책들, 소위 '영성' 도서를 얼마 읽노라면 갑자기 골치가 지끈거린다. 명사 저자들은 영성 아닌 심성을 다루고도 영성이라고 우겨댄다. 심성 차원에서 억지 영성을 논하다가는 급기야 악령들과 만난다.

농약이 묻은 위에다 왝스를 먹인 사과처럼 겉은 그럴 듯해 뵈지만 그걸 먹다 보면, 실은 성령/성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접하게 된다. 진리인 양 가장했지만 명백한 비진리다!

기독교 사상 아니 유사 이래 전무후무하다 할 만한 미증유의 부흥을 이룬 한국 교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그럴 듯한 비진리 왝스로 포장된 독사과를 속아서 사 먹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이 동화 '백설공주'에서 요술할멈 여왕에게 속아 독사과를 얻어 먹고 죽음의 잠에 빠져 든 백설공주처럼.

독사과 표피의 왝스는 초강력 세제인 어린양 예수 크리스토의 보혈로만 세척될 수 있고, 그 아래 독은 진리로만 해독될 수 있다. 오직 믿음과 예수의 이름으로, 말씀 진리로만 벗겨질 수 있고 제독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맑 16:18). 


요즘 독사과는 모두 영성 아닌 심성의 독이 묻어 있다. 심리학의 독극물이 '영성'으로 둔갑해 유혹하고 있다. 내로라는 관상영성가/신비가로 알려진 헨리 나웬, 리처드 포스터, 브레넌 매닝 등 영성의 '대가'라며 한 가닥씩 하는 교계 명사들이 모두 심리학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신사도개혁운동(NAR) 인사들, 프리메이슨들 다수도 그렇다. 뉴에이지도 심리학을 잘 활용하고 있다. 모두 공통분모를 갖춘 셈이다.

이들은 교묘한 심리전을 통해 신자들에게 관상 영성과 종교다원주의 등, 이상(異常) 영성과 비진리의 '독사과'를 먹이고 있다. 


그러나 참 경건은 오로지 성경 말씀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심리적 영성일 수가 없다.
그들이 아무리 왝스로 그럴 듯하고 예쁘게 포장하더라도 그게 진리일 순 없다.

한국 교회는 이젠 더 외래 영성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새벽기도와 순교의 피로 지켜 온 우리 고유의 것, 거룩한 자존심을 지켜 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세계 최대급 교회들이 즐비할 만큼 사랑과 선물을 가득가득 퍼 내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성경 말씀의 진리를 지켜 나가야 한다.

기독교 서점 서가를 타고 물밀 듯 밀려 오는 외래 영성-이건 아니올시다(!) 이다. 
외국제 영성의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데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살 길은 말씀의 진리로 되돌아가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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