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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은강의 순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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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안 돼,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다.
대체 이래야 할 이유가 없다. 아니, 이유는 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이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은, 기대와는 늘 어긋난다. 내 마음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내 마음, 그것을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결혼에도 적성이라는 게 있어, 결혼하기 전에 적성검사를 해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는 사람만 결혼하게 하는 법이라도 제정해야 해.
결혼해 살면서 농담처럼 말해 왔었다. 그런 검사가 있었더라면 나는 몇 점이나 받았을까. 과목간 편차가 너무 크다고 혹 과락이라도 당했을지 모른다.

먼 빛으로 산이 보인다.
한 여름 무더위는 이제 지나가고 있건만, 아직도 바깥은 푹푹 찐다. 발코니의 새시 문을 열어 잠깐 바람이라도 맞아 볼까 하다가, 훅 들이치는 열기에 놀라 얼른 문을 닫아 버리고 돌아선다.  

커피 원두가 남은 게 있을까.. 있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으니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 거다.
조금 덜어내 블라인드에 넣는다. 위이잉, 모터 도는 소리, 짧은 사이에 콩이 가루로 변하며 살짝 쓴 내가 난다. 왜 쓴 내가 나지? 변했나? 맛은 써도 향은 구수한 게 커피잖아, 원두를 갈면 보통 어떤 냄새가 났더라? 모르겠다. 머리가 돌지 않는다.

기계에서 컵을 분리해 뚜껑을 연다. 살짝 나던 쓴내가 조금 진하게 올라온다.
호흡을 잠깐 멈추고 컵 속을 들여다 본다. 바로 전에는 콩이었던 것이 이젠 가루로 변해 있다.
콩이 가루가 되는 건 물리적 변화다. 가루에 물을 넣어 커피를 우려내면 그건 화학적 변화다.
나를 가라앉게 하는 지금 이 변화의 본질은, 물리력일까 화학력일까.
삶이란 것이 어차피 변화를 수반한다면, 둘 중 어느 것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나을까.  

진하게 끓이자. 에스프레소 마시는 기분으로 마시지 뭐.
밤에 잠 못 들면? 알 게 뭐야, 하루밤 못 잔다고 죽을 일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오후 커피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동반했다. 차를 좋아하니 굶을 수는 없고, 다른 차로 바꿔볼까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 보리라, 질 좋은 야생 녹차라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진한 커피로 오랫동안 탁해진 내 몸을, 연한 녹차로 우려내어 맑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이 들어가자 비로소 그럴 듯한 커피 향이 퍼진다.
아, 올 가을에는 어디라도 가서 프라타너스 이파리를 태워보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그런데 어디로 가서?
예전 살던 집에 가고 싶다. 결혼하면서 '친정'이라는 이름으로 호칭이 바뀐 곳, 물론 지금은 다들 떠나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집에는 프라타너스가 한 그루 있었다. 오래된 나무였다. 몸통은 굵지만 매년 가지를 잘라 주어 그리 크게 자라지는 않았다. 나는 깊어가는 가을이면 그 이파리를 태웠다. 바짝 마른 프라타너스 잎에서는 맡아도 맡아도 더 맡고 싶은 아주 좋은 냄새가 난다.

아버지는 가을이면 마당을 쓸었다.
한가한 날이 드문 아버지는 집안 일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는데 그래도 가을이면 가끔 마당을 쓸었다.
나무가 많은 마당은 쌓이는 낙엽들로 가을에서 겨울 초입까지는 매년 몸살을 앓았다.
그 프라타너스는 앞마당에 있었다. 대문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뒷쪽의 다른 나뭇잎들은 떨어진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 갔지만, 앞쪽에 있었기 때문인지 프라타너스 이파리만은 항상 모아져 있었다. 글쎄, 주로 누가 쓸었던가.
아버지는 그것을 태웠다. 나는 아버지 곁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 구수하고 달콤한 그 향내라니, 프라타너스 이파리 타는 냄새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낙엽진 프라타너스 이파리를 태울 때 나는 냄새가 바로 '갓볶아낸 커피향'이라는 건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그 시절에 커피라니, 엄마는 그런 취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걸 알게 해 준 사람은 이효석이었다.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을 배우면서 나는 알았다. 아, 그 냄새? 프라타너스 마른 이파리를 태울 때 나는 그 냄새? 그게 바로 갓볶아낸 커피콩의 냄새구나. 실제로 그것을 확인한 것은 또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 옆에서 낙엽 타는 냄새를 맡다가, 좀 큰 다음에는 내가 직접 태웠다. 늦가을 잘 마른 이파리들은 연기도 별로 피우지 않고 곱게 타들었다. 내 솜씨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숯처럼 타들어가는 이파리들을 보면서 나는 앉아 있었다. 커피향은 우리집 나무 울타리 틈새를 가볍게 빠져 온 동네로 번져 나갔다.

이젠 서로 바뀌었구나. 이것은 무슨 변화인가.
전에는 프라타너스 이파리에서 커피향을 맡았는데 지금은 커피향에서 프라타너스 이파리 태우던 때를 추억한다. 커피보다 프라타너스 이파리가 더 귀한 시절이 된 것인가.

조그만 커피 머신으로 끓여낸 커피는, 냄새만큼 훌륭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원두가 조금은 변했나 보다. 아쉽다. 두어 모금 마시고 내려 놓는다.
눈을 감는다.
요 근래, 모니터를 너무 많이 들여다 봤다. 눈이 피곤하다. lcd 화면이 그래도 눈에 낫겠지 바꿨지만, 막상 바꾸고 보니 별 차이 나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피로했다. 하긴 수험생인 아이를 위해 바꾼 거지, 나를 위해 바꾼 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바꿔 본 적이 언제였나. 넓게 보면 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은 얼핏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무엇인가를 그리 바꿔대는 성격도 아니지.

오빠가 생각난다.
프라타너스 이파리, 그 옛집, 그리고 내 오빠들.

그랬다. 오빠가 오는 날이면 집으로 가는 내 발길은 빨라졌다.
저녁 상 물리면서 시작되는 우리의 얘기판은 밤이 깊도록 그칠 줄 몰랐고 더러는 새벽까지도 이어졌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주 작은 소재로도 우리는 밤을 새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문장과 저 문장 사이에 접속어로 '그러나'가 낫냐 '하지만'이 낫냐 뭐 이런 걸로도 우리는 온갖 예를 다 들이대며 깔깔 즐거웠고, 당시 인기 있던 한 아나운서의 말투를 놓고도 신이 났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말이 결국에는 새끼를 쳐, 우리는 애국도 하고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했으며 가다가는 지구도 구했다.

나중에, 우리는 그걸 '아카데미'라고 불렀다.
아카데미는 일반명사지만 우리는 그걸 고유명사 취급을 했다. 우리가 '아카데미'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그 대화의 장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그 아카데미는 오래 지속되었다. 참여는 별반 못 하고 그저 귀동냥이나 할 뿐이던 내 십 대에 시작되어, 결혼하기까지 계속되었으니 적어도 십 년은 넘는 세월이었나 보다.
가족 중 누군가가 논문을 쓰는 동안에는 그 아카데미는 논문 토론의 장이 되었다. 나는 수업을 하고 오빠들은 강의를 하던 무렵에는,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따위 우습게 아는 교육의 대가들이 되어 백년대계를 논하느라 밤을 꼬박 밝히기도 했다.

화제가 궁했던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화제 앞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다. 어쩌다 올라오는 재미 없는 화제는 금방 사그라들었고 새로운 화제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모이는 기회가 많아야 일 년에 몇 번 정도였지만, 그 시절의 대화들은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많이 웃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얘기했다.

결혼과 함께 그 아카데미는 나를 떠났다. 내 삶에서 멀어졌다.
돌이켜 보면, 내 결혼 생활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 거다. 위트와 유머가 있고 해학적이면서도 지극히 진지한 대화를 긴 시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 더군다나 그것을 즐겼던 사람에게랴.
모든 여건들, 특히 시간이 마련되지 않았다. 오빠들과 나는 시간이 늘 엇갈렸다. 내가 가면 그들은 떠났고 그들이 있을 때면 나는 시댁에 있었다. 어쩌다 시간이 맞물려 만나더라도 나는 내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분주하기 일쑤였다.
시간이 많은 시댁에서는 입 열어 말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저그런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갔다. 시댁 식구들은 그런 취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던 시절도 있었지, 때로는 열변을 토하기도 했었지, 어쩌면 그것이 전생의 일인 양 되새기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자칫 현학적 면모도 다분한 그런 식의 대화에 이제 다시 낄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졌다고 그리움마저 사라졌으랴.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느 가난한 시인의 노래처럼, 난들 그 그리움을 차마 버렸겠는가.

다 식어버린 커피잔의 커피가 재탕 내린 한약인 듯 보기에 쓰다. 이상도 해라, 뜨거울 때는 구수해 보였는데.
아 맞다, 이 커피잔.
그래 이 커피잔은 나를 위해 샀다.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때, 어느 날 나갔다가 충동구매를 했다. 충동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그 날은 그 잔이 몹시도 나를 끌었다. 두 개를 샀지만 남편은 차를 별로 즐기지 않으니 나를 위해 산 거, 맞다.
그런데 참 오래도 갖고 있구나, 그 때가 대체 언제람.
지금 보니 그리 멋지지도 않은데 그 날은 왜 그리 근사해 보였을까.


어쩌면, 어쩌면 일종의 전이였었나.
그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의 위트와 유머, 해박하면서도 날카로운 언어들은 빠른 속도로 나를 과거로 보내 버렸다. 오빠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 때처럼 대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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