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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은강의 순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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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인 그녀가 숙제를 내 놓으며 도움을 청했을 때, 나는 난감했다.
 
"뭐야, 함정이지?"
 
내 말에 그녀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렇다고 내 난감함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진짜 데려갈 사람이 없다니까?"
 
그녀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녀의 집에 가 보면 거실 테이블 위에 항상 성경책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 그녀는 거의 매번 주섬주섬 성경책에 책갈피를 끼우면서 나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했다.
몇 번 교회에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지만 나는 그냥 웃어 넘겼었다. 그녀도 그리 집요하게 권해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 앞에서 하나님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이 걸핏하면 입에 달고 사는 '이게 다 하나님 은혜' 소리를,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 소리를, 그녀는 나 듣는 데서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기독교인 중의 하나가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부탁이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새로운 사람 한 명씩을 데리고 가는 게 숙제라는 거였다. 자기가 구역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인데 여태 그 숙제를 못 한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날이 부흥회의 마지막 날이라는 거였다.
교회라니, 더구나 부흥회라니, 소리 소리 지르며 울고 불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그 부흥회?
 
"그거... 막 울고 난리치고 그러잖아.."
"에이 아냐. 우린 별로 안 그래."
 
그냥 예배도 아니고 부흥회라니,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의 청을 거절하자니 그 또한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탁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먼저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엘 갔다.
얼마 만이었던가.
어린 시절 이후로는 예배는커녕 교회에 들어가 본 적도 없었으니.  
 
그 날, 나는 좀 심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시간 이후 교회에 다시 나올 일은 없었다. 오로지 그녀의 숙제를 위해 이 한 번만 앉아 있는 거였다.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나는 거의 구경꾼의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교회에서 밴드를 쓰는구나..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오르간이 다였다. 젊은 애들이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이끄는 모습은 신선해 보였고 그들의 노래 소리는 기분을 좀 띄워 주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 몫은 아니었다.  

시간아 가라.. 그녀가 건네준 성경책에 코를 박고, 그야말로 그 책이 나를 '구원'이라도 해 줄 것처럼 옆도 앞도 안 돌아보고 앉아 있었다. 귀에 들려오는 베이스 소리에 속으로 박자나 끄덕끄덕 따라 가면서.
사실 찬송가 정도는 곡들이 귀에 익숙해 가사 있으니 따라 부를 만도 했건만, 그렇게 했다가는 그녀에게 당장 내일부터 시달릴 거 같은 노파심에, 입 꾹 닫고 한 마디도 따라 하지 않았다. 내 온 몸에, 지금 이것은 숙제임, 꼬리표라도 붙어 있기를 바랬다. 그녀에게 미안하기야 했지만, 그 자리는 나에게 그저 쑥스럽고 어색했다. 가만히 앉아는 있었어도 마음은 마냥 불편해 좌불안석이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교회에 가자고 더 이상 권해 오지 않았다.

그 때가 언제였더라, 십 년도 더 전인가 보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세월 가는 거 참 우습다.
그녀는 이제 나의 이웃이 아니다.
그녀는 얼마 전에 다른 동네로 떠났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산다.
그녀 이후에도 그녀 이전에도, 물론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교회를 권해 왔다. 나는 번번이 그냥 웃었다. 웃는 걸로 사양을 표했다.  
신에게 의탁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건방졌다. 신에게 맡겨 놓고 내 삶을 살기엔 자의식이 아직 너무 싱싱했다.
십여 년 전 그 부흥회가, 나로서는 가장 가까운 교회 기억이었다.  
 

그는 왜 나에게 성경공부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했을까.
교회에 나가 보라고 하지 않고, 왜 성경을 공부해 보자고 했을까.
 
성경공부를 해 보지 않겠냐고 그가 메일로 권해 왔을 때, 나는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교회에 다니라는 것도 아니잖아, 공부만 좀 해 보지 뭐.  
인류 최고의 저서라는 성경을 그때까지도 읽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살면서 은근히 나의 약점이었다. 책 하나 읽고 아니 읽고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만, 그래도 그 전지구적 베스트 셀러를 모른다니 이건 영 지성은커녕 그 흉내도 못 내겠다 싶었다. 성경과 함께 인류 저서의 양대 산맥이라는 그리이스 로마 신화야 유명세에 재미까지 있으니 올림푸스 신들의 이름을 줄줄 꿰는 치기도 한때는 부려 봤건만, 성경은 어찌 쉽사리 접해지지가 않았었다.

성경공부?
뜻밖이었지만 그 권유는 내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오빠까지.

아아, 그 은행잎 하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오빠는 대학생이었다.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었고 오빠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가을 어느 날, 나는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하나 받았다.
편지라니, 내 이름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편지가 그것도 학교로 오다니,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전달 받다니, 이미 그 사실 만으로도 나와 주변의 아이들은 뭐야 뭐야? 흥분했는데, 세상에 받고 보니 그것은 그야말로 연서 같은 편지였다.
 
하얀 봉투 안에서 꺼내든 하얀 편지지엔 대학의 로고가 무늬처럼 근사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백에, 멋진 세로 쓰기로 오빠는 나에게 간단한 인사를 해 왔다. 오빠의 글씨는 매혹적이었다. 어찌나 세련되었던지, 편지지가 통째로 한 장의 그림 같았다. 그리고는 글씨 아래 쪽 공백에 숨이 턱, 막히게 이쁜 샛노오란 은행잎 한 장을 붙여 보내 주었던 거다. 학교 뒤에서 주워 너 주려고 말렸다는 말과 함께.

흠 하나 없이 곱게 물들어 흠 하나 없이 말갛게 말려진 가을 은행잎.  
당시 동숭동에 있던 오빠의 학교 이름에 은행잎이 더해져, 우리 반 아이들은 부러워 죽었다.
그 날, 그림처럼 멋진 그 편지는 우리 교실을 한 바퀴 도는 걸로 모자라 옆 교실에 원정까지 갔다 왔다. 
 
사춘기 여동생에게 그런 낭만을 선물해 줄 줄 알았던 오빠, 그 오빠가 얼마 전에 교회엘 다니기 시작했다고 다들 모인 자리에서 얘기했을 때 나는 내심 적잖이 놀랐다. 이 오빠가 교회를? 설마.
세 오빠 중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보고 또 봐도 교회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타입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쩌다가?
어떤 사람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그 사람이 말하는 예수 이야기가 믿을 만해서 다니게 되었다는 거였다. 다녀 보니 좋더라, 오빠는 쑥스러워 하지도 않고 쉽게 말했다. 
 
그의 권유, 내 지적 호기심, 최근에 기독교인이 된 오빠.

나는 제안을 받아 들였다.
교회엘 가자는 것이 아니었으니 딱히 부담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마침, 시간은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우연으로 가장된 예정이었을까.
그렇게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계절은 본격적인 여름으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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